안병수 경희대 동서의학과 박사, 대한약침학회 회장, 한의사협회 이사 / 안병수 산수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프리미엄 탁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안병수
경희대 동서의학과 박사, 대한약침학회 회장, 한의사협회 이사 / 안병수 산수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프리미엄 탁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 마포구에서 2대째 진료 중인 안중한의원의 안병수 원장은 매주 수요일은 한의사 가운을 벗고 전통술 양조인으로 변신한다. 2012년에 세운 양조장은 강원도 홍천에 있다. 한의원 원장, 고급 막걸리 제조 농업법인인 산수 대표, 이 두 가지 일을 9년째 하고 있다.

‘호모루덴스’, 술을 빚기 시작한 후 4년 만인 2015년에 안 대표가 내놓은 첫 번째 술이다. 유희의 인간. 호모루덴스의 뜻이다. 안 대표는 “기존의 전통주 이름들이 대부분 좀 고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색다르게 지었다”며 “호모루덴스라는 이름 그대로 이 술을 마시면서 우리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프리미엄 탁주만 고집스레 만들어오고 있다. 호모루덴스 이후 안 대표가 만든 술은 동정춘, 백자주. 옛 문헌에서 레시피(주방문)를 찾아 만들고, 술 이름도 옛 기록에서 따왔다.

한의학을 전공한 그가 자연스레 부친의 한의원에서 일하면서 발효 한약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전통주 제조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발효 한약에서 발효 자체에 관심을 두면서 발효효모의 일종인 누룩으로 만드는 전통 술을 빚기 시작했다. “일본 청주 사케를 만드는 효모(입국)는 특정 균을 배양해서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해 술맛의 균질화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 효모인 누룩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다양한 균이 생기기 때문에 그때마다 술맛이 달라집니다. 균이 다양하니까 그만큼 술맛이 풍성해집니다.”

2012년 안 원장은 강원도 홍천에 대지를 매입해 양조장을 차렸다. ‘산수’라는 이름의 농업법인도 만들었다. 상주하는 직원 한 명 없이 양조장 이웃 주민들이 필요할 때 아르바이트로 일을 도와주는 소규모 양조장이다.


안병수(왼쪽) 산수 대표가 강원도 홍천 양조장에서 식당 ‘화수목’을 운영하는 전권표 셰프와 호모루덴스를 시음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안병수(왼쪽) 산수 대표가 강원도 홍천 양조장에서 식당 ‘화수목’을 운영하는 전권표 셰프와 호모루덴스를 시음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한국 전통 누룩과 일본의 개량 누룩인 입국의 장단점을 얘기해달라.
“단조롭지 않은, 다양한 맛의 술을 만드는데 전통 누룩만 한 발효제가 없다. 와인으로 치면 풀보디 느낌,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주로 쓰는 입국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일본 입국의 특징은 한 가지 균을 집중적으로 배양하고 그걸 잘 유지하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술맛을 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맛 자체가 좀 단조롭다. 한국 누룩은 풍미가 좋지만, 맛의 균일화가 어렵다. 일반 양조장에서 쓰기 어려운 이유다. 술맛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과 접촉하는 누룩은 품질이 항상 일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변화를 예측해서 대응하는 것이 아직은 힘들다. 술을 만들 때 효소가 작용해 곡물이 당화하고 효모가 활동해서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뱉어내는데, 입국은 효모를 따로 넣어줘야 한다. 입국은 효소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전통 누룩은 효소 역할도 하고 효모 역할도 한다. 하지만 누룩도 곡물을 상업적으로 완전 발효시키기 위해서는 효모를 일부 투입해야 한다. 호모루덴스는 누룩 외에 효모를 약간 넣는다. 동정춘과 백자주는 누룩만 넣는다.”

호모루덴스는 어떤 술인가.
“현재 막걸리 시장이 저가 막걸리 시장과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저가 막걸리들은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를 넣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프리미엄 막걸리는 아예 이런 첨가물을 넣지 않으려고 한다. 저가 막걸리든 고급 전통주든 공통된 단점이 달다는 것인데, 호모루덴스는 달지 않은 술로 개발했다. 흔히 호모루덴스를 남자의 술, 술꾼들의 술이라고 한다. 술 좀 하는 사람 중 호모루덴스를 최고의 술로 치는 이가 많다. 달지 않기 때문에 음식과도 잘 맞는 편이다. 알코올 도수는 12도로 꽤 높은 편이다. 드라이한 맛을 내기 위해 멥쌀만 사용한다.”

동정춘은 소동파가 좋아했다는데.
“동정춘은 알코올 도수(8도)가 낮은 편이지만, 워낙 쌀이 많이 들어가 술의 풍미가 일품이다. 중국 시인 동파 소식은 동정춘의 향을 극찬했다. “병 속의 향기는 방에 가득하고 술잔의 빛은 문창에 비친다/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을 뿐 술의 양은 묻고 싶지 않네”라고 시로 읊었다. 동파가 말년에 동정호(호수)에서 지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동정춘과는 인연이 깊다. 동정춘은 ‘임원경제지’ 등 옛 문헌에서는 청주로 돼 있는데 덜 달게 만들려면 탁주가 낫겠다 싶어 탁주로 만들었다.”

백자주는 잣 향이 풍성하다.
“양조장이 있는 홍천의 특산품인 잣이 부재료로 들어간 술이다. 국내 잣술 중 잣 함유량이 가장 많다. 화학 첨가물을 쓰지 않고 잣 향을 내려고 잣을 그만큼 많이 넣었다. 잣을 가루로 만들 때 생기는 지방 성분을 이용해 특유의 고소한 맛을 끌어냈다. 술을 따르면 잣 기름이 술 위에 동동 뜬다. 술을 마시고 나면 잣 향이 은은하게 남는다. 고려 시대 명종도 즐겼다고 한다. 몸이 약했는데도 잣이 들어간 백자주는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잣 같은 견과류는 몸을 보호하는 약효가 있다.”

한약을 활용한 술 개발 현황은.
“산양산삼을 주재료로 한 증류식 소주를 개발했고,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국세청 제조 허가는 2013년에 받았다. 현재 숙성 중이다. 7년째 숙성하고 있다. 호모루덴스 소주도 만들고 있다. 호모루덴스는 탁주, 약주, 증류주 셋으로 라인업을 만들고 싶었다. 한의원을 계속 운영해야 하니까 양조장에 주력할 수 없어 상품군을 쉽게 늘리지 못하고 있다.”

프리미엄 탁주는 음식 페어링(pairing·어울림)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술 만드는 사람들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프리미엄 탁주가 유행한 게 불과 5~6년 됐다. 프리미엄 탁주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옛 문헌에서 기록으로만 흔적이 남아 있던 술이 양조인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온 게 프리미엄 탁주다. 불과 몇 년 전이다. 이러니 프리미엄 탁주를 만드는 문화가 아직 생소할 수밖에 없다. 양조인들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만든 프리미엄 탁주가 어떤 음식과 매칭이 잘될까 고민하는데, 그 한계(프리미엄 탁주는 음식 페어링이 어렵다)가 여전하다. 하지만 전통술과 음식의 궁합은 단시일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양조인의 노력만으로 극복될 문제도 아니다. 꾸준히 프리미엄 탁주 신상품이 세상에 나온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연스럽게 음식 페어링 문제도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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