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로3가의 ‘남의집’에서 집주인 전영우(가운데 왼쪽)씨와 김아나(가운데 오른쪽)씨, 손님 7명이 식사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이소연 기자
서울 한강로3가의 ‘남의집’에서 집주인 전영우(가운데 왼쪽)씨와 김아나(가운데 오른쪽)씨, 손님 7명이 식사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이소연 기자

7월 17일 오후 6시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용산역 인근 한강로3가. 고층 아파트 수십 동과 대형 쇼핑몰 사이에 지어진 지 40년은 족히 넘은 허름한 1층 노후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1980년대 주택가가 연상됐다. 이 생경한 오래된 주택들 사이 기자가 초대받은 ‘남의집’이 자리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집이었지만, 대문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럽풍과 한국풍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8년 차 커플 전영우(29)씨와 김아나(27)씨가 창고처럼 쓰이던 버려진 집을 월세 몇십만원에 얻어 ‘내 집’처럼 꾸민 이곳이 이날 기자를 포함한 8명의 ‘거실여행지’가 됐다.

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김씨와 중고 물건 수집가인 전씨가 함께 만든 이 집을 보니, 마치 해외 어딘가의 오래된 저택에 여행 온 것 같았다. 수백 년 풍파를 이겨낸 절 천장의 연꽃 단청 문양을 복원하는 법을 대학에서 배운 김씨는 이 집에도 각종 불교풍 미술품과 장식을 들여놨다. 남의집에서 손님이 방문할 수 있는 ‘집’은 세간살이가 있는 실제 잠을 자는 집뿐만 아니라 집주인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작업실이나 아지트도 포함된다. 이 커플이 일주일에 세 번씩 퇴근 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말마다 친구와 가족들을 데려와 놀고 손님을 초대하는 사랑방인 이곳 역시 거실여행이 가능한 ‘집’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손님 8명과 집주인 2명이 모인 이날 남의집 모임의 이름은 ‘퇴근 후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이 집을 이탈리아처럼 꾸미고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면서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라도 하며 방구석에서 여행을 하자는 것이다. 이날 식사로는 김씨가 직접 요리한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 리소토, 이탈리안 샐러드가 나왔다. 와인도 곁들여 먹었고 후식으로는 달콤한 티라미수도 서빙됐다. 함께 커다란 식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모두 한 장씩 준비해 온 이탈리아 여행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남의집 프로젝트(이하 남의집)’는 집주인의 취향이 담긴, 타인의 공간을 여행하는 ‘취향 기반 거실여행 서비스 플랫폼’이다. 여러 사람을 하나의 주제로 한 공간에 모이게 하는 플랫폼은 독서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 취미공유 스타트업 ‘프립’ 등이 있다. 여러 스타트업이 사무 공간이나 부엌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처음으로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까지도 공유 대상으로 포함한 것이다. 남의집 측은 사업을 여행 비즈니스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형식의 여행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한국판 에어비앤비로 불리지만 숙박은 제공하지 않는다. 남의집을 방문한 손님은 집주인이 제공하는 식사나 간단한 활동을 즐기고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떠난다.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약 500명의 호스트가 자신의 집을 총 700번 공유했고, 약 3500명이 손님으로 방문했다. 남의집은 지난해 카카오벤처스와 MYSC 등을 통해 3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멀리 여행 떠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대안으로 짧은 거실여행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남의집을 찾는 소비자가 최근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남의집’의 한 손님이 직접 인화해온 이탈리아 여행 사진을 다른 손님과 공유했다. 사진 이소연 기자
‘남의집’의 한 손님이 직접 인화해온 이탈리아 여행 사진을 다른 손님과 공유했다. 사진 이소연 기자

여러 취향 반영한 다양한 남의집

남의집에는 이처럼 집주인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해 최근 2달 사이에만 200여 곳의 남의집이 전국에서 열렸다. 예컨대 저 멀리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작은 시골 주택에도 남의집은 있다. 이 집 주인은 서울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귀촌한 부부로, 3년째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양파 등 작물을 키우고 있다.

이 부부는 손님과 함께 직접 텃밭에서 완두콩을 수확해 삶은 완두콩을 맛보며 대화한다. 또한 서울시 문래동에서 다섯 살 아이와 사는 부부는 육아에 관심 있는 손님에게 자신의 가정집을 공개하고 있다. 놀이 중심의 육아를 지향하는 부부들은 아이를 데리고 이 집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집주인의 취향이 폭넓게 잘 드러나는 공간이라면 모두 남의집에서 ‘집’이 된다. 남의집이 호스트 수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집의 개념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인 집주인이 그림을 주제로 '남의집'을 열 때 자신의 작업실이 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집은 가장 안전하고 내밀한 집을 공유하는 서비스인 만큼 서비스 운영에 있어서 안전을 주요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집을 방문하는 소비자뿐 아니라 집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호스트 역시 또 다른 소비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소비자에 대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2만원에서 5만원 사이의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고객은 호스트에게 자신의 직업과 신청 계기, 필요하다면 신원을 보여줄 수 있는 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적어내 방문을 ‘신청’해야 한다. 신청이 완료되면 호스트가 확인 후 초대 여부를 결정해 다음 날까지 알려주고, 참가 바로 전날에야 집 주소와 호스트의 연락처가 카카오톡으로 손님에게 전송된다.


plus point

[Interview] 김성용 남의집 대표
“사적인 공간에서 여행 가치 발견”

김성용 서강대 신문방송학, 카카오모빌리티 사업운영팀 차장
김성용
서강대 신문방송학, 카카오모빌리티 사업운영팀 차장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책이 쌓인 제 집에 손님을 초대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모임에서 시작해서 지금 사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7월 21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김성용 남의집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김 대표는 카카오모빌리티에서 근무하던 시절 택시기사들에게 ‘공유경제’라는 개념을 교육하는 일을 하다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남의집 거실여행’ 서비스에 지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여행은커녕 놀이공원, 관광지 등 불특정 다수가 밀집하는 여러 시설로 나들이 가는 것조차도 많이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소규모로 안전하게 집에서 노는 ‘집콕(집에서 콕 박혀서 지내기)’ 놀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남의집을 찾아주는 고객들은 여행을 갈 수 없어 대안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형식의 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여행 사업은 평소에 소비자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데려다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사업 아닌가. 그 장소의 범주가 좁아진 지금, 새로운 형태의 여행이 주목받는 것이다. ”

왜 꼭 집으로 가야 하나.
“자유로운 대화가 가장 편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다른 소셜 살롱 서비스에서도 소규모로 사람을 만나 대화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처음 와보는 낯선 공간에서 무턱대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보단, 그중 한 사람에겐 추억과 애정이 담긴 공간으로 초대받는다면 무장해제로 허물없이 만날 수 있다. 나의 ‘홈그라운드’를 모두 보여주겠다는 집주인의 마음이 손님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공간 외, 다른 소셜 플랫폼과 차별성은.
“대부분의 소셜 플랫폼은 느슨한 관계, 일회성 관계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의무와 끈끈한 관계를 요구한다. 대부분 3~6개월의 멤버십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나. 카카오톡방이 만들어지고 같은 사람들과 오래 함께 보면서 소통해야 한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떠나고 싶은 소비자에게 이는 맞지 않는다. 남의집은 일회성의 만남에 기초해 자유롭고 허물없는 대화와 편안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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