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 중고차 시장.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사실상 공식화하고 나서면서 중고차 판매 업계와의 갈등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10월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 중고차 시장.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사실상 공식화하고 나서면서 중고차 판매 업계와의 갈등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현대차가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10월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70~80%는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 품질 평가, 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반드시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완성차 업계도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현대차가 직접 공식 석상에서 해당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고차 업계는 생계를 위협한다며 맞서고 있다.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연간 최대 230만 대, 약 27조원 규모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신규 진출과 확장이 제한됐다. SK그룹도 이런 이유로 SK엔카를 매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기한이 만료됐다. 그러자 전국·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진출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와중에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중소기업만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부적합해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중기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핵심 쟁점을 살펴본다.


쟁점 1│현대차 “소비자 보호 차원”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6년간 사고이력을 속이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등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과 불신이 줄어들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경기도는 지난 7월 말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 31곳의 판매 상품을 표본 조사한 결과, 95%가 실제로 구입할 수 없는 허위 매물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 또한 소비자 후생을 내세우며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차는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경우 중고차 인증제도를 활용한 오픈플랫폼을 만들어 품질 평가와 가격 산정의 투명성을 높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반발이 이어지자 현대차는 중고차 매매 사업 범위를 연식이 최대 4~5년인 차량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차가 지난해 말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 생산과 서비스’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차량 구독 서비스에 힘을 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기간으로 보인다. 구독 서비스 차량의 경우 통상 5년 내 중고차로 매각된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사업을 운영 중인 BMW·벤츠·폴크스바겐·아우디 등 수입차 업계는 대부분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는데, 국내 완성차 업계만 해당 사업을 못 하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인증 중고차란 완성차 업체가 연식, 주행 거리 등 일정 기준에 맞는 자사 중고차만 가려내 매입한 뒤 소비자에게 되파는 차량이다.


쟁점 2│팽창하는 중고차 시장…경영권 승계 연결 시각도

물론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소비자 후생만을 이유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고차 시장 성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은 지난해 중고차 거래가 4081만 대로 신차 구입(1706만 대)의 2.4배에 육박한다. 독일도 중고차 시장 규모가 719만 대로 신차(360만 대)의 두배에 달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중고차 판매 대수가 224만 대로 신차 판매 대수 178만 대의 1.2배에 불과하다. 외국의 경우 신차와 중고차를 같이 판매하는 대규모 판매업자가 있고, 중고차 중개상 등도 있어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다. 완성차 업계는 시장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도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가 중고차 매매 사업을 시작하면 이를 중고차 경매 사업 등을 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할 가능성이 큰데, 현대글로비스의 1대 주주는 지분 23.29%를 보유한 정의선 회장이다. 정 회장의 현대차(2.62%), 기아차(1.74%), 현대모비스(0.32%) 지분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대비 현저히 낮은 점을 고려하면,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를 키워 승계를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창지우그룹과 중국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해 합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고급차의 경우 라이프사이클이 짧은데, 현대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할 경우 제네시스 중고차 가격을 제대로 평가받아 신차 판매가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국내 중고차 시장서 2017년식 제네시스 G80 가격은 신차 대비 30.7% 떨어졌지만,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벤츠 E클래스의 가격은 신차대비 25.5%, GLC는 20.6% 낮은 것으로 조사된다.


쟁점 3│조건부 허용 가닥…“상생 모델로”

현대차는 업계와 상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여전히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대기업이 진출하면 상생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전국 중소 중고차 매매 업체 6000여 곳과 종사 인원 5만5000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완성차가 신차 가격을 올리려고 중고차 가격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기아차가 국내 신차 시장 판매 점유율 70~80%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고차 시장까지 독점하면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빠진 현 상황에서 대기업은 이론적으로 중고차 매매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해당 산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사업 확장이 어렵게 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현대차도 중기부, 관련 업계와 소통해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정 여부를 심의하기 전에 소상공인 단체, 완성차 업계 등을 만나 의견을 듣고 상생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중기부가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조건부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국감에서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 중고차를 관리하게 하면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도 차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뢰할 수 있어 좋고, 중고차판매업도 그동안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대·기아차가 중고차 판매업에 진입해 이익을 낸다고 하면 이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6년간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제한했지만, 소비자 불만은 커졌다”며 “중고차 시장에서 아직도 소비자 만족도가 낮다는 것은 투명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이어 “대기업이 기업의 기본 목표인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영세 업체들의 피해를 최소화해 기존 기업과 공존하는 상생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며 “중고차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패러다임 변화를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