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서점가의 트렌드는 ‘대형 서점의 동네 독립서점화’다. 2020년 12월 미국 전역에 600여 개의 매장을 가진 미국 최대 서점 체인인 반스앤드노블의 새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던트는 대형 출판사와 수십 년간 이어온 대량 계약을 폐기했다. 대신 각 서점 매니저에게 작은 개인 동네 서점처럼 소규모로 책을 구매하고 지역 독자의 취향에 맞게 직접 ‘큐레이션(성격과 취미, 독서 성향 등을 파악해 책을 골라주는 것)’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독립서점이 대거 생겨나며, 전국에 3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경주 황리단길에 있는 ‘어서어서 서점’은 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 독립서점 중 하나다. 2017년 생긴 이 서점은 대부분 서점의 책 판매량을 좌지우지하는 참고서, 문제집, 금융·경제 서적 없이도 월 최대 6000만원의 매출을 낸다. 다른 독립서점처럼 서점 안에 카페를 함께 운영하거나 굿즈(상품)를 팔지도 않는 29.7㎡(9평) 남짓한 소규모 서점이지만, 주말에는 약 500권의 책이 팔린다. 허밍버드 등 일부 직거래를 하는 출판사의 신간 몇 권은 교보문고 일부 지점보다도 더 많은 책이 팔리기도 한다. ‘이코노미조선’은 2020년 12월 28일 경주 황남동의 어서어서 서점을 방문해 양상규 사장으로부터 동네 서점의 성공 요인에 대해 들었다.


서점에서 구매한 책은 손님의 이름과 날짜, 복용법이 적힌 ‘읽는 약’ 봉투에 넣어준다.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서점에서 구매한 책은 손님의 이름과 날짜, 복용법이 적힌 ‘읽는 약’ 봉투에 넣어준다.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서점을 열기 전, 웨딩 사진 작가, 새마을금고 직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촬영 때마다 한 커플, 창구 근무시간마다 어르신 한 분 한 분 기억하고 반기던 습관이 결국 어서어서 서점만의 특화된 손님 응대 서비스를 만들었다. 웨딩숍도 새마을금고도, 서점처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지만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단 한 손님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웨딩숍 손님에겐 생애 단 한 번뿐인 결혼사진이다. 직원이 매일 보는 통장도 어르신들에겐 평생을 바쳐 얻은 보물 같은 목돈이다. 그래서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웃겨 드리고, 한 마디로 ‘대접’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서점을 유명하게 만든 마스코트 ‘읽는 약 책 봉투’가 탄생한 배경도 여기 있을까.
“그렇다. 책을 사는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케어’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 서점에서 책을 사면, 황색 갱지로 만든, 약국 약 봉투처럼 생긴 봉지에 ‘000 귀하’라고 손님의 이름을 직접 써서 책을 넣어 드린다. 몸이 아프면 약을 처방받듯, 이 서점에서 만난 책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낫게 해주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만들었고, 소셜미디어(SNS)에서 주목을 받으며 어서어서 서점의 흥행을 이끈 일등 공신이 됐다. 아래에는 날짜와 취침 전후 시간마다 읽으라는 복용법까지 적혀 있어 손님들이 좋아한다.”

‘처방전’을 써주면서 어떤 대화를 하나.
“일단 이름을 물어보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면, 그다음부턴 일사천리다. 서로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책방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다만 아이러니한 점은 서점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손님이 많아져 이 시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기계처럼 정신없이 이름만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책방 사장에게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어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손님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하나.
“당연하다. 책 추천과 큐레이션이 오프라인 동네 책방과 온라인 서점, 대형 서점을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교보문고에서 직원에게 ‘책을 찾아달라’는 요청은 할 수 있지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나는 한 달에도 시집을 수십 권씩 탐독하는 지독한 애서가이자 시·문학 ‘덕후’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좋아하는 작가’ 등 몇 가지 질문을 거치면 손님의 취향을 비교적 쉽게 파악해 책을 추천할 수 있다. 모든 책을 직접 읽고 고심해서 고른 것이기에 자신 있다. 반대로 서점 주인의 취향을 반영해 큐레이션된 시집과 문학 등 책 취향이 맞아 서점을 재방문하는 고정 고객도 있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책 중 입고할 책을 어떻게 고르나.
“어서어서 서점과 고정 마니아 손님의 취향 그리고 일반 대중이자 다수 손님의 취향,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반반으로 섞는다. 서점의 양쪽을 차지하는 책장에 꽂힌 책들 그리고 벽면에 디스플레이된 책들은 서점과 사장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시집과 소설로 가득 메웠다. 그러나 서점 중앙에 있는 긴 테이블에 꽂혀 있는 책은 다수 손님이 여러 번 요청한 책으로,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 취향이다. 처음에는 문학전문서점으로 시작했다. 많은 동네 서점이 문학·사회과학·역사·페미니즘·그림책 등 서점과 특정 독자층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큐레이션을 유지한다. 나 또한 처음엔 그랬으나 결국 서점도 사업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타협을 했다.”

여전히 큐레이션의 기준은 완독률인가.
“그렇다. 모든 책을 다 읽었고 마음에 표지부터 가격까지 아예 새겨버렸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손님이 책 한 6권을 쌓아서 안고 계산대로 오면, 나는 품에 안긴 책 제목만 보고, 바코드를 찍어볼 필요도 없이 머릿속으로 암산해서 ‘7만9000원’, 손님에게 가격을 말한다. 손님들이 무척 신기해하며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이 서점이 통째로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새마을금고뿐 아니라 현대차 협력 업체에서 총무로 일하면서 샘이 빨라진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된다.”

직전에는 식당 사업도 했다고 들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의 분점을 3년간 운영했다. 식당을 운영할 때는 식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데이터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했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원재료를 제때 모두 소진하고 알맞은 양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요일마다 각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하는 일이 중요했다. 반면 서점은 취향 장사이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이 천차만별인 데다, 외부 요인도 많아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불필요하다. 특히 책은 유통기한이 없는 상품이라 식당처럼 ‘로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구겨졌거나 손때 묻은 전시용 견본품도 그냥 달라고 하는 손님이 많고, 오히려 오래된 책, 남들이 안 보는 책을 따로 찾는 손님도 있다.”

서점 고객은 대체로 누구인가.
“2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30대, 40~50대, 10대순이다. 성별은 남녀 3 대 7 비중이다. 관광지인 만큼 경주를 방문한 여행객이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재방문하는 지역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

주요 관광지에 있기 때문에 후광효과를 누린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 시각도 있지만, 1년을 주기로 수많은 식당·카페·의류점·기념품숍 등이 폐점하고 생기기를 반복하는 황리단길에서 서점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황리단길이 본격적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17년, 이곳 황리단길 가장 핵심인 메인로드에 어서어서 서점과 함께 시작했던 수십 곳의 가게 중 현재 살아남은 가게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나처럼 10만~30만원 정도의 낮은 월세에 들어왔던 가게들은 최대 10배까지 상승한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모두 폐점하거나 이사했다. 경주는 ‘문화재는 많지만, 문화생활을 즐기기는 어려운 도시’다. 교보문고도,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없다. 그 속에서 책이라는 문화를 팔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을 주 고객층으로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경주=이소연 기자, 유혜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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