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 옆 인동마을에 정착한 ‘박송안스튜디오’의 박송안(31) 대표.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경주 양동마을 옆 인동마을에 정착한 ‘박송안스튜디오’의 박송안(31) 대표.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경주 중심가에서 차로 한 시간 이동하면 경주 손(孫)씨, 여강 이(李)씨가 모여 사는 작은 집성촌(集姓村)인 ‘양동마을’이 나온다. 작년 12월 28일 찾아간 양동마을에서는 볏짚으로 만든 초가지붕을 다시 잇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의 풍경은 마치 박물관의 민속촌 같았지만,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메주와 마당에 쌓여있는 장독대에서 사람의 온기가 물씬 느껴졌다.

조선 시대 초기의 씨족 마을인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2010년 대한민국의 10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보존이 잘돼 있다는 점, 마을 곳곳에서 유교 문화가 드러난다는 점으로 높이 평가됐다. 그러나 ‘천년 신라의 도시’ 경주에서 조선 후기 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는 양동마을은 다른 관광지에 비해 과소평가돼 있다. 2019년 경주를 방문한 총관광객 수는 1314만 명이었으나, 양동마을 관광객 수는 22만 명에 그쳤다. 100명 중 2명이 찾을까 말까 한 곳이다. 경주의 ‘숨은 보석’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2030세대가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을 찾아갈 때 평균 연령이 70대, 최연소자가 50대인 양동마을 일대에 정착한 30대 청년이 있다. 양동마을의 전통과 멋을 담은 기념품과 굿즈(상품)를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디자인·제작한 ‘박송안스튜디오’의 박송안(31) 대표다. 양동마을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덜 알려진 것에 아쉬움을 느꼈던 박 대표는 청년이 없는 시골에 디자인스튜디오를 차려 마을의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담는다. 줄곧 도시에서만 살고, 디자인 전공도 아닌 그가 경주의 조용한 마을에 ‘청년 최초로’ 정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코노미조선’은 12월 28일 경주 강동면 인동리에 위치한 널찍한 작업실이자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박송안 대표가 디자인한 양동마을 기념품. 양동마을의 사계절을 담은 책갈피와 문화재가 그려진 엽서가 대표 상품이다.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박송안 대표가 디자인한 양동마을 기념품. 양동마을의 사계절을 담은 책갈피와 문화재가 그려진 엽서가 대표 상품이다.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조선 후기 때 풍경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조선 후기 때 풍경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진 유혜정 인턴기자

연고 없는 양동마을을 홍보하게 된 이유는.
“포항에서 대학을 다니고,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번아웃이 왔을 때 휴식을 위해 찾은 양동마을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곳 같았다. 처음엔 관광객의 눈으로만 양동마을을 바라보며 막연히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이곳에 온 외국인 관광객들도 나처럼 ‘예쁘다’는 말만 남발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한국에 여행을 와서 가장 한국스러운 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기념품 하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왜 기념품·굿즈 사업을 택했는가.
“양동마을은 전통 민박과 유교 문화 교실 등의 체험을 제공해 왔지만, 추억할 만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 공식 기념품 가게가 없을뿐더러, 마을 안에서조차 오래된 디자인의 불국사, 석굴암 기념품을 팔 정도였다. 신라와 조선 후기 시대의 문화와 경관은 다르지 않나.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름 때문에 하회마을과 혼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념품 디자인이나 종류를 바꿀 사람이 부재했다. 평균 연령이 70대인 마을을 기존의 기념품으로 홍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취미였던 미술 실력을 살려, 쉽고 명료한 매개체인 디자인으로 양동마을만의 매력과 역사를 담기로 결심했다.”

양동마을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모두가 천천히 걷는 마을’이자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다. 500년의 세월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전혀 상업화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많은 한옥마을이 관광지화되면서 상업화됐다. 양동마을과 함께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에는 관광용 전동카트까지 등장했다. 전통 가옥 사이 달리는 전동카트가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이곳에는 여전히 손씨와 이씨 집안들이 대대손손 집을 물려받아 살아간다. 관광지면서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양동마을은 살아있는 역사책과 같은 곳이다.”

주로 어떤 제품을 선보이나.
“양동마을의 사계절 풍경을 그린 삽화와 짧은 소개를 담은 책갈피 그리고 4대 고택 중 하나인 무첨당을 그린 그림이 프린팅된 티셔츠와 엽서 등을 판매했다. 고택 티셔츠는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0장 이상이 팔릴 정도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무래도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문화재다 보니 잘 나갔다.”

디자인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점은.
“며느리 집안인 이씨분들이 문화해설사로 계신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게 알기 위해 문화해설사분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가이드를 열심히 들었다. 역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풍경만 보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보면 부끄럽다. 우리나라 전통 기와 담벼락은 계단식인데, 그걸 무시하고 일자형으로 그렸었다. 알고 보니 일자형은 일제시대 영향을 받은 양식이었다. 그 이후로는 고택의 건축양식과 담벼락 모양 하나하나에 집중해 그림으로 살린다. 단순히 트렌드만을 좇아 대량생산하는 상업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디한 디자인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지 않나.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상업적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경상북도에서 시행하는 청년창업 지원 사업인 ‘도시청년시골파견제’에도 선정되고, 마을 주민분들을 매일같이 뵙고 있어 막중한 책임감도 있다. 외부인으로서 양동마을에 누가 되고 싶지 않다. 모두가 천천히 걷고,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이 마을의 이야기를 나 또한 느리게, 정성스럽게 담고 싶다.”

주 소비층은 누군가.
“주로 20대가 소비하지만 50~60대분들도 굿즈를 많이 사간다. 마을 어르신들은 양동마을 엽서 위주로 많이 구매하신다. ‘웬 젊은이가 우리 동네에 왔나’ 하면서 카페이자 작업실에 놀러 오시는 분들이 많다. 마을에 유일무이한 젊은 청년이 양동마을을 홍보하겠다 하니 더 좋아하신다. 이 지역 주민들의 소통 장을 새로 열어준 셈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은 없었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엔 마을이 잠깐 폐쇄돼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지금은 온라인 창구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 텀블벅(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양동마을 그림을 넣은 2021년 캘린더와 책갈피, 스티커를 펀딩받았는데, 3일 만에 100%를 달성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양동마을 그림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굿즈 주문 중 20%는 인스타그램 DM(개인메시지)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 양동마을 방문자들이 추억하기 위해,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매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직접 만든 캐릭터 ‘콩씨’가 마을을 소개하는 인터랙티브 문화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다. 단순히 굿즈만을 판매하지 않고, 양동마을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내 색깔을 담으며 차근차근 확장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