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엔텍 진단키트 공장의 클린룸. 오른쪽에 진단키트의 핵심 부품인 상판이 쌓여있다. 사진 김윤수 조선비즈 기자
나노엔텍 진단키트 공장의 클린룸. 오른쪽에 진단키트의 핵심 부품인 상판이 쌓여있다. 사진 김윤수 조선비즈 기자

4월 9일 오후 3시,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나노엔텍 공장. 방금 만들어진 진단키트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해봤다. 제품에 동봉된 면봉을 코 깊숙이 집어넣어 검체를 채취하고, 동봉된 액체에 섞었다. 이 액체를 진단키트의 작은 입구에 흘려 넣었더니,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의 1 너비인 통로를 지나 끝에 도달했다. 카드 모양의 진단키트를 검사 기계인 카트리지에 끼워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약 3분 만에 카트리지 화면에 ‘음성(negative)’이란 결괏값이 떴다.

SK텔레콤의 자회사 나노엔텍이 지난해 12월 출시한 진단키트다. 3분 만에 95% 정확도로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성능을 이탈리아 보건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아 현지에 수출하고 있다. 3개월 동안 100만 개를 팔았다. 밀려드는 추가 수요를 맞추지 못해 생산라인 증설 작업도 진행 중이다. 증설 규모는 현재의 3배로 알려졌다. 2000년 창립 이래 유례없는 확장이다.

씨젠·SD바이오센서 같은 주요 진단키트 업체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지만, 생산 캐파(최대 생산 능력)가 하루 2만여 개, 한 달 70만여 개에 불과한 나노엔텍엔 깜짝 놀랄 만한 수요다. 약 6600㎡(2000평) 부지, 3층짜리 건물 안에서 3개월째 다른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진단키트만을 만들고 있다. 관리직·생산직 총 100여 명이 24시간 3교대로 동원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라인 증설이 필요해진 이유다.

현재 국내에선 허가받기 어려운 ‘항원진단’ 방식이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현장진단(POCT)이나 자가진단용으로 활발히 검토되고 있다. 4월 12일 오세훈 서울시장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승인과 별도로 (서울시가) 신속 항원진단키트를 활용한 시범사업 시행을 검토하겠다”라며 이 방식 키트의 활용 계획을 밝혔다. 나노엔텍 관계자는 “적기에 국내에서 쓰일 수 있도록 5월 중 식약처에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도체 공장처럼 하얀 방진복을 입고 전신 살균을 거쳐 공장 1층 ‘클린룸’에 입장했다. 가로 8.5㎝, 세로 5.5㎝의 투명한 플라스틱 카드가 온 사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카드에는 맨눈으로 보일 듯 말 듯 한 가느다란 통로가 있었다. 황정구 생산본부장은 이 통로를 가리키며 나노엔텍 진단키트만의 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다고 설명했다.


진단키트 완제품에 화학 반응에 필요한 용액을 넣고 있다. 사진 김윤수 조선비즈 기자
진단키트 완제품에 화학 반응에 필요한 용액을 넣고 있다. 사진 김윤수 조선비즈 기자

반도체 집적회로 그리는 기술 응용

나노엔텍은 이 미세한 통로를 그리는 ‘초소형 정밀 기계 기술(MEMS)’을 갖고 있다. 원래 반도체 집적회로(IC)를 만들기 위해 실리콘 웨이퍼(기판)에 가느다란 선을 음각 판화처럼 파내는 기술인데, 나노엔텍은 항원진단키트의 성능 향상에 응용했다.

항원진단키트는 20분 내에 끝난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도가 70% 정도로 낮아 활용이 제한적이었는데, 나노엔텍은 정확도를 분자진단(PCR) 수준인 95%로 높이고 소요 시간도 3분 내로 단축해 이탈리아 보건 당국의 허가를 받았다.

나노엔텍은 MEMS 기술로 진단키트에 미세한 통로를 냈다. 이 통로를 통과하는 검체 용액은 표면적이 매우 넓어지고, 그만큼 더 민감하고 빠르게 시약과 화학 반응을 하게 된다. 미세 통로 너비는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이 1인 50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다. 통로가 이보다 더 넓어지면 진단 성능이 떨어지고, 더 좁아지면 검체 용액이 통로를 통과하지 못한다. 딱 50μm 크기에 맞춰서 통로를 뚫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묻자, 황 본부장은 “사포로 (진단키트) 표면을 한 번 쓱 훑으면 10μm가 날아간다”는 비유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노엔텍은 이런 진단키트를 코로나19 사태 15년 전인 2005년 처음 고안해냈다. 어려움도 있었다. 미세한 회로를 실리콘 웨이퍼에 그리는 것과 이것과 똑같은 모양을 값싼 플라스틱에 그려 양산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6년간 38차례 설계 변경 끝에 MEMS를 적용한 진단키트 양산에 성공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설계만 새로 해 맞춤 진단키트를 내놓았다.


출시 3개월 100만 개 수출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설계도는 이미 지난해 말에 그려졌다. 협력 업체가 이 설계도를 보고 편평한 플라스틱판에 설계도와 똑같은 모양으로 통로를 파서 나노엔텍 공장으로 납품한다. 클린룸에 쌓여있던 ‘플라스틱 카드’가 바로 이것으로, 공장 사람들은 ‘상판’이라고 불렀다.

상판은 ‘표면 처리’라는 과정을 거친다. 플라스틱은 기름처럼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疏水性)을 띠기 때문에 표면에 특수 처리를 해 친수성(親水性)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야 종이나 천에 물이 스며들어 퍼지듯, 검체 용액이 플라스틱 통로를 따라 잘 퍼질 수 있다.

상판과 포개질 바닥인 하판도 만든다. 이 바닥에 여러 시약을 미리 발라놓는다. 검체 용액이 통로를 따라 흐르면서 차례로 밟고 지나가도록 함으로써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클린룸 한쪽에는 약 33㎡(10평) 크기의 화학실험실 같은 시약 제조실이 있어서 필요한 시약을 공급한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포함해 총 25가지 진단키트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총 60여 가지 시약이 이곳에서 합성된다.

현재 올인하고 있는 코로나19 진단키트엔 4종류의 시약이 들어간다. 시약별로 한 군데씩 총 4개 스폿(spot)을 2.3㎜ 지름의 점 모양으로 부분 코팅한다. 정확한 위치에 점을 찍어야 해서 사람이 아닌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작업을 대신한다. 이 생산라인의 길이는 총 30m, 구축 비용은 수십억원이다. 전체 공정 중 속도가 가장 느리기 때문에 진단키트 생산 속도는 이 라인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 나노엔텍이 급증한 수요에 맞춰 증설하기로 한 것이 이 라인이다.

이제 상판과 하판을 포개어 조립하면 기능을 갖춘 진단키트 ‘반제품’이 만들어진다. 상판의 통로와 하판의 시약 스폿의 위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소프트웨어 작업으로 이뤄진다. 가로·세로·높이 약 2~3m의 직육면체 모양 기계 안에서 보랏빛을 번쩍이는 센서가 상판과 하판의 위치를 보정한다.

다음으로 만들어진 카드(진단키트) 앞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포장한다. 이 카드에 검체 용액을 넣고 검사 기계인 카트리지에 신용카드 결제하듯 끼워 넣으면 된다. 카트리지는 스티커의 바코드를 인식한 다음 컬러 화면으로 양·음성 결과를 알려준다. 카트리지 역시 이 공장 3층에서 별도로 만들어져 판매한다.

나노엔텍은 같은 방식으로 항원진단키트가 아닌 항체진단키트 생산도 확대할 계획이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 침입으로 인해 몸속에 만들어지는 면역성분인 항체를 검출하는 키트다. 무증상 감염자의 사후 진단에 주로 쓰여왔는데,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예방 효과를 측정하는 용도로 이 진단키트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업체 관계자는 기대했다.

SK텔레콤은 앞서 2014년 나노엔텍의 기술력을 알아보고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지분 투자를 했다. 나노엔텍은 2017년 SK텔레콤의 자회사로서 SK그룹의 계열사로 정식 편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