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앤트그룹. 사진 블룸버그
중국 앤트그룹. 사진 블룸버그
이필상 미래에셋자산 운용 홍콩법인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이필상 미래에셋자산 운용 홍콩법인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최근 중국 산업계에 규제 리스크가 높아졌다. 상당히 많은 산업에서 규제가 나왔거나 곧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알리바바 자회사인 글로벌 핀테크 업체 앤트그룹의 상장을 연기한 이후 핀테크 대출 규제에 나섰다. 이후 이커머스 기업들의 독점행위에 대한 조(兆) 단위의 벌금 집행, 음식배달앱 회사의 배달원에 대한 사회보장기금 지급 압력, 학원 수업 영업시간 제한 추진, 중국 최대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에 대한 데이터 해외 유출 규제, 신약 임상시험 강화 조치 등 규제들이 이어지고 있다.


규제 부정적으로만 봐선 안 돼

언론에서는 중국에서 규제가 쏟아지는 것을 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중국의 규제들이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나온 것으로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규제 심화는 중국식 시장주의의 한계 또는 창업가 정신에 대한 훼손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 이 같은 의견은 중국 경제와 사회의 발전 국면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도입된 규제들은 중국 사회에서 불거진 문제 상황에 대한 대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식배달서비스 산업의 규제 이슈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내 1000만 명이 넘는 음식배달 종사자들은 정해진 배달 시간을 지키기 위해 도로에서 과속하다 중경상을 입는 사례가 많다. 배달원들이 위험을 감당하고 있지만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충분한 급여와 산재보험, 사고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지는 않고 있다.

중국 법에 따르면 기업은 직원에게 지급하는 급여 이외에도 급여의 23~28%에 달하는 금액을 직원 명의의 사회보장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하지만 음식배달앱 업체들은 하청 기업을 쓴다는 이유로, 이들이 임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사회보장기금 납부를 하지 않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커지자 결국 중국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개입, 기업들이 배달원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압박하는 형국이 됐다.

사교육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사교육이 범람하면서 가계 재정 부담이 늘고 학생들의 건강 악화 우려가 높아져 왔다. 도시 출산율이 급감한 이유 중 하나로 높은 사교육비 부담이 지목돼 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이 수그러들지 않자 중국 정부가 이번에는 학원 수업 영업시간 제한 등 강경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누구도 사교육을 막을 수 없다고 보지만 동시에 중국 정부가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난해 11월, 앤트그룹의 상장이 연기된 데에는 창업자 마윈(馬雲)이 중국 금융감독 당국의 보수적 정책 기조를 강하게 비판하는 등 개인적인 돌발 행위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핀테크 플랫폼의 급성장으로 소비자 대출 버블(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쌓여 왔던 점도 중요한 배경이었다. 중국 정부는 대형 핀테크 플랫폼이 대출사업을 할 때 대출금 담당 비율과 자본적정 비율을 높이도록 할 방침이다. 필자 역시 금융시스템 안정화 관점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본다.


中, 자국 기업 미국 대신 중국 증시 상장 유도

7월 초 중국 정부는 디디추싱에 대해 사이버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신규 고객 모집을 금지했다. 이 회사가 심각한 법규 위반을 하거나 사회 문제를 야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내 민감한 개인 정보와 도로 상황 정보를 보유한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 상장을 강행하면서 중국 정부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 스타트업들은 미국 벤처 자본의 투자를 받아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자체가 이상한 관행이 아닐까.

디디추싱 규제와 관련해 필자가 본 함의는 중국 정부는 앞으로 미국의 벤처 자본을 가능하면 배제하려고 할 것이며 중국 기업들이 중국(홍콩·상하이·선전 거래소)에 상장하도록 유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미국 벤처 자본 투자가 점차 배제되면 한국 벤처캐피털의 중국 스타트업 투자 참여 기회가 좀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글로벌 고성장 기업 中 비중 쏠림 뚜렷

필자는 MSCI ACWI(All Country World Index) 지수에 포함된 전 세계 기업 2974개에 대한 성장률 조사를 해봤다. MSCI ACWI 지수는 월드 지수에 신흥국 지수인 MSCI 이머징 마켓 지수를 합한 것이다.

2020년까지 최근 4년간 매출이 200% 증가하거나 주당순이익이 200% 증가한 기업들을 국가별로 분류해봤다. 이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매년 평균 30% 이상 성장해야 하므로 여기에 포함된 기업들을 성장주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이 조건을 통과한 기업 중 절반가량인 144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MSCI ACWI 지수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종목 수 기준으로는 25%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성장주 숫자는 월등히 높은 것이다. 참고로 MSCI ACWI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9%인 미국의 경우 이 조건을 통과한 기업 수는 19%에 불과했다.

더 나아가 종목 선별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매출과 주당순이익 둘 다 200% 성장을 충족한 경우) 중국 기업들의 비중은 더 높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무려 76%가 중국 기업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중국의 고성장 기업들이 매우 다양한 산업군에서 배출됐다는 점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메이퇀(美團) 같은 인터넷 기업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룽지(隆基⋅Longi, 태양광 기업, 4년간 매출 373%⋅순이익 406% 증가), 야오밍바이오(藥明生物⋅Wuxi Bio, 신약개발 외주업체, 467%⋅722% 증가), 리쉰정밀(立訊精密⋅Luxshare, 하드웨어 하청 제조업체, 572%⋅455% 증가), 산이중공업(三一集团⋅Sany, 중장비 업체, 330%⋅ 6772% 증가), 샤오미(小米⋅Xiaomi, 글로벌 IT 업체, 259%⋅3023% 증가), 안후이하이뤄(安徽海螺⋅Conch, 시멘트업체, 215%, 310%) 등 매우 다양한 부문에서 고성장 기업들이 쏟아져 나왔다.

돌이켜 보면 지난 4년간 중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경제 곳곳에 공급과잉이 심했고 그래서 경제 전반적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가 높았다. 무엇보다도 미국 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압박으로 인해 중국 경제의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앞의 통계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보여준다. 거시경제 환경이 나빠도 기업의 미시 환경은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 필자는 지난 칼럼들에서 중국 기업의 성장을 밀어 올리는 추동력은 중국의 풍부한 고급 인력군에 있다고 정리한 바 있다.


규제는 ‘성장통’…“기업가 정신 훼손”은 억측

중국 정부가 내건 규제들 대부분은 합리적이거나 사회 여론을 반영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규제 이슈가 부각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중국 산업계의 성장통이 아닐까 한다. 기업들이 단기간에 초고속 성장을 할 때 파생돼 생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성장통이 규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물론 기업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사회에 기여한 바도 큰데 단지 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로 이들에 과도한 규제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에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바이고, 또 요즈음 각광을 받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중국 규제 이슈에 대해 누군가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 혹은 정부 실패라고 읽지만, 필자는 시장 실패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정부의 개입으로 해석한다.

많은 평론가는 중국의 규제들이 자의적이어서 기업가 정신, 창업가 정신을 크게 훼손할 것으로 본다. 정부 규제 때문에 알리바바(阿里巴巴)나 중국 최대 배달플랫폼 업체 메이퇀의 주가가 하락하고 창업가들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보면서 젊은 기업가들이 낙담할 것이라는 일부 시각들도 있다. 그런데 이는 기우(杞憂)다. 이러한 사건들이 중국의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일부가 가진 소박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필자는 역설적이게도 중국 사회에 상업주의가 팽배해 있어 이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규제가 중국의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기업 성공 사례를 지켜보면서 젊은이들은 창업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정책이 인터넷 등 일부 산업에서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인터넷 규제가 다른 산업 성장에 기여

앞에서 최근 중국 정부 규제가 중국의 기업가 정신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 이유로 인터넷 산업에만 규제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훌륭한 혁신이긴 하나 중국처럼 수출에 큰 가치를 두는 중상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중요한 혁신이 아닐 수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비즈니스모델은 수출과는 거리가 멀다. 음식을 해외로 배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최고의 연봉과 인센티브를 주니 중국의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인터넷 기업들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사회 관점에서는 지금 당장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중국 반도체 기업 및 소프트웨어 기업과 인재 육성이 절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 기업들에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일종의 산업 정책이 된다. 즉 인터넷 기업들의 미래 이익률을 낮추고 스톡옵션의 가치를 낮춤으로써 인재들이 반도체나 자율주행 등과 같은 신성장 산업 쪽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반도체, 클린에너지, 자동화, 로봇,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글로벌 신성장 산업이거나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산업에 대한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만 사람들이 농담처럼 얘기하듯 대만에서 TSMC와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알리바바와 같이 고액 연봉을 주는 인터넷 기업이 없어 대만의 우수한 인재들이 반도체 산업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인터넷 산업에 대한 규제는 다른 성장 산업 육성책이기도 한 것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이머징 국가(신흥국) 리서치 업무를 하면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 있다. 많은 국가에서 소수의 특정 가문이나 특정 기업들이 독점과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면서 신생 산업이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축소하는 경우들이다. 중국의 규제가 거칠고 소란스럽기는 하나 중국은 대형 경제 기득권이 형성되는 것을 배척하면서 신성장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몇 안 되는 이머징 국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