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펑 전기차 ‘P5’. 사진 블룸버그
샤오펑 전기차 ‘P5’. 사진 블룸버그
이필상 미래에셋자산 운용 홍콩법인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이필상 미래에셋자산 운용 홍콩법인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2021년을 거치면서 중국 자동차 산업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들은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2021년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역시 전기차(NEV·순수배터리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합산한 개념) 판매량이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전년 대비 170% 성장했다.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도 2020년 말 8%에서 2021년 말에는 20%까지 올랐다. 올해도 다양한 전기차 모델 출시에 힘입어 전기차 판매량이 2021년 대비 5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추세라면 2022년 NEV 판매량은 500만 대(2021년에는 330만 대)를 훌쩍 넘게 된다.

사실 2021년 초로 돌아가면 전기차 시장의 제반 환경이 썩 좋지는 않았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공급 제한으로 자동차 부품 부족 사태가 심해졌고 배터리에 들어가는 일부 원자재 가격은 2020년에 비해서 두배 오르는 등 제약 요소가 많았다. 전기차 보조금도 계속 축소되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구매 결정에 보조금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보조금 규모는 1대당 평균 200만원대 수준으로 떨어져서 보조금이 1000만원에 육박했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한국, 유럽, 미국 등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여전히 800만원 이상 지급하는 것에 비하면 중국의 보조금 삭감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 전기차 시장은 이런 우려와는 상관없이 큰 폭의 성장을 이뤘다.

이유는 간단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상품성이 뛰어난 전기차 모델을 대거 내놨기 때문이다. 특히 샤오펑(小鵬) 등 전기차 스타트업들, 비야디(BYD), GM-SAIC-Wuling(제너럴모터스, 상하이자동차, 울링자동차 등 세 개 자동차 회사 합작사) 등에서 매력적인 전기차 모델을 내놨다. 중국 기업들이 내놓은 중요한 전기차 모델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자율주행 전기차 앞세운 샤오펑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중 하나인 샤오펑이 2021년 4분기에 출시한 P5 모델은 여러모로 주목할 제품이다. 샤오펑은 중국 기업 중에서 자율주행 기능 상용화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다. 이미 2021년 1년간 고속도로상 자율주행 기능을 상용화했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 기업이 2021년 10월에 출시한 P5 모델 최상위 트림은 중국 최초로 도심에서도 레벨 3 자율주행이 가능한 스펙을 갖췄다. 조건부 자율주행 단계라고도 불리는 자율주행 레벨 3은 특정 조건의 구간에서 시스템이 주행을 담당하며, 운전자의 상시 모니터링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시스템의 요구 조건을 넘어서는 상황에선 운전자의 즉시 개입을 요청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밖에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600㎞이고 사이즈는 테슬라 모델3(5만달러⋅약 6100만원)보다 큰 데도 불구하고 판매가는 3만4000달러(약 4148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오토파일럿(자율주행) 기능이 없는 도요타의 캠리 상위 트림 가격 수준이다.

필자 주변의 중국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가격이 비슷한 도요타 캠리와 P5 모델 중에서 무엇을 사겠냐고 물어보니 상당수는 후자를 선택한다. 물론 이들이 중국 소비자들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의미심장하다. 도요타 캠리는 오랫동안 전 세계 자동차 중형 세그먼트(차체 길이에 따라 구분하는 유럽의 자동차 분류 방법)를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이제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세그먼트까지 공략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뛰어난 배터리 가성비의 BYD

BYD야말로 2021년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이끈 회사다. 단일 회사 기준으로 전기차 모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회사이기도 하다. 2020년 이후 내놓는 신상품마다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2021년 하반기에 출시한 소형 해치백 돌핀이 저렴한 가격(1500만~2000만원)을 무기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의외로 플러그인하이브리드(DM-i 시리즈) 모델들도 인기가 높다.

BYD가 최근 내놓는 신차마다 뛰어난 가성비로 환영받는 이유는 우선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블레이드 배터리’가 큰 몫을 한다. BYD는 2019년 이 배터리를 내놓으면서 배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바 있다. 블레이드 배터리는 칼날처럼 길쭉하게 생긴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말한다. 인산철 기반의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NCM·양극재로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화합물을 사용)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화재 안전성이 높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 충분한 배터리를 적재할 공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BYD는 이 난제를 기술혁신을 통해 해결했다. 즉 배터리셀 형태를 바꾸고 배터리모듈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배터리셀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인산철 배터리를 쓰고도 일회 충전시 600㎞를 갈 수 있는 승용차 모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배터리팩 원가도 크게 낮추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업계에서 배터리팩 생산원가 ㎾h(킬로와트)당 100달러(약 12만원)를 중대한 목표로 삼아왔다. 배터리를 이 가격에 만들 수만 있다면 전기차를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BYD가 세계 최초로 해낸 것이다. 블레이드 배터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배터리팩 원가를 ㎾h당 90달러(약 11만원) 수준까지 낮췄다. 3~4년 전만 해도 BYD의 제품들은 동급 내연기관차에 비해 너무 비싸서 보조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BYD가 내놓는 신제품마다 동급 내연기관차 모델보다 10~15%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료비 절감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도 말이다.


GM-SAIC-Wuling 소형 전기차 ‘홍광미니EV’. 사진 블룸버그
GM-SAIC-Wuling 소형 전기차 ‘홍광미니EV’. 사진 블룸버그

초저가 전기차 수요 이끌어 낸 ‘홍광미니’

사실 전기차 중에서 단일 모델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테슬라 모델3도, 샤오펑의 P5도 아니고 BYD의 모델도 아니었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GM-SAIC-Wuling의 ‘홍광미니EV’다. 이 모델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이즈의 경차로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70㎞에 불과(주행거리가 짧아서 보조금도 받지 못한다)함에도 2021년 50만 대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판매가가 무척 저렴한(4500달러⋅약 549만원) 것은 맞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짧은 주행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회사가 자동차를 4500달러에 팔면서도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역발상이 통했다. 보통 다른 회사들이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꼭 쓰는 시스템(회생 제동 등)들이 있는데 이 회사는 회생 제동 부품을 안 썼다. 또 내구성이 높은 비싼 전기차용 부품들(수입 전력반도체 등)도 채택하지 않고 대신 범용 제품들을 썼다. 내구성이 짧으면 부품 교체 주기가 짧게 되겠지만 해당 부품을 구하기 쉽고 저렴하게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모델은 스펙이 너무 낮으니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균 연 소득이 5000~ 7000달러(약 610만~854만원) 정도가 되는 중국 소도시 및 농촌 지역에서 이렇게 잘 팔린다면 소득 수준이 더 낮은 이머징(신흥) 국가에서도 잘 팔리지 않을까? 홍광미니EV의 성공에서 찾는 함의는 생각보다 전기차 소비층이 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배터리가 비싸기 때문에 럭셔리나 하이엔드 세그먼트에서만 통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이제 보니 경차나 소형 세그먼트에서도 전기차가 상업성을 확보했다. 고가 자동차에서는 테슬라, 중간 가격대에서는 샤오펑과 같은 신생 기업들, 중저가에서는 BYD, 초저가에서는 GM-SAIC-Wuling 등이 내놓은 모델들의 성공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1년 중국의 자동차 소비자들은 매력적인 전기차 모델 선택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특히 2021년에는 전기차 수요가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확산하면서 전기차 소비자층이 대중화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에서의 기업 성장 스토리는 공통된 부분이 있다. 일단 대도시에서 성공하고 중소도시로 진출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에도 비슷한 사업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자율주행 전기차로 전환하는 車 업체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에 특화된 생산 플랫폼, 조직과 문화를 개편해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로 이행하는 데는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의 국유 자동차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 중국의 민간 자동차 기업을 대표했으며 전기차 부문에서도 선두에 서겠다고 공언했던 지리자동차(吉利氣車)가 전기차 시장에서 부진하다는 점이다. 2021년 지리자동차는 전기차 판매 순위 10위에 머물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동차 산업에서 기업들의 부침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필자의 관찰로는 지리자동차가 2010년 스웨덴의 자동차 명가 볼보를 인수한 후 ‘유럽식 사고방식’에 젖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즉 볼보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품질을 더욱 높이고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키우는 데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문의 변화가 따르게 이뤄지는 것을 간과했던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민첩한 민간 기업인 지리자동차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최근의 자율주행, 전기차로의 이행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기도 하다.

앞서 BYD가 전기차 부문에서 신차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BYD 역시 약점이 있다. 자율주행 및 스마트카 부문에서는 후발주자라는 점이다. 현시점 중국 기업 중에서 자율주행 부문에서 앞서가는 회사는 샤오펑이다. 이미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모델을 출시, 상업화한 지 1년이 됐고 2021년 하반기에는 P5 모델을 통해 도심 자율주행 기능도 출시했다. 자율주행 반도체칩은 엔비디아의 칩을 빌려 왔으나 자율주행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는 자체 개발했다. 자율주행의 스마트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칩을 자체 설계하지는 못하더라도 소프트웨어를 통합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이 부문에서는 기존의 완성차 기업들은 당연하고 BYD도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향후 자동차의 상품 매력도는 대부분 전기차 성능과 자율주행 기능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부문에서 중국의 자동차 기업들이 지난 1~2년간 보여준 성취들은 중국 산업 동향을 오래 관찰해온 필자 입장에서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중국 산업계는 2021년 인터넷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로 인해 중국 기업가 정신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평가를 많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차 산업처럼 모험 정신으로 가득한 기업가들이 변혁을 추구하는 모습들도 많이 관찰된다. 참 다이내믹한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