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현지시각) LG전자 테네시 공장에 설치된 로봇팔이 스테인리스 스틸을 둥글게 말고 용접해 세탁기의 주요 부품인 세탁통을 만들고 있다. 사진 LG전자
1월 9일(현지시각) LG전자 테네시 공장에 설치된 로봇팔이 스테인리스 스틸을 둥글게 말고 용접해 세탁기의 주요 부품인 세탁통을 만들고 있다. 사진 LG전자

1월 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남동부 테네시주의 작은 마을 클락스빌. LG그룹의 이름을 딴 ‘LG 하이웨이’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납작한 직사각형 형태의 초대형 흰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상단에는 붉은색 ‘LG’ 로고가 선명했다. 이곳은 한국 기업이 해외에 건설한 공장 중 유일하게 ‘등대 공장’으로 선정된 LG전자의 테네시 스마트 공장이다. 

등대 공장은 등대가 밤하늘에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해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공장을 말한다. LG전자 테네시 공장은 미국과 캐나다 등에 공급되는 세탁기를 생산한다. 최근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북미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을 반영해 건조기 라인이 추가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세탁·건조 일체형 제품인 ‘워시타워’ 생산 라인도 추가될 예정이다.


美 테네시 공장, ‘미래 제조업 상징’ 등대 공장 선정

미국 제조업 혁신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 공장 내부에선 166개의 무인 운반 로봇인 AGV(자동 경로 차량)가 쉴 새 없이 부품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한편에선 로봇팔이 육중한 철판을 들어 올려 옮기더니 순식간에 동그랗게 말아져 세탁통으로 변신했다. 로봇팔에 달린 3차원(3D) 카메라는 접지 부분의 흠집이나 작은 오차를 체크하고 있었다.

LG전자 생활가전 글로벌 핵심 생산기지인 미국 테네시 공장이 1월 13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등대 공장에 선정됐다. LG전자는 창원 공장에 이어 두 번째로 등대 공장을 갖게 됐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세운 공장 중 최초의 등대 공장이기도 하다. 

2018년 가동을 시작한 테네시 공장의 전체 부지는 총 125만㎡로 축구장 175배 크기에 해당한다. 테네시 공장은 최근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한 라인에서 제조하는 ‘완결형 통합생산체제’를 갖췄다.

그간 톱로더(통돌이)와 드럼 등 세탁기 생산라인 두 개만 가동해왔지만, 지난해 9월 건조기 라인 시험 가동 후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LG전자는 건조기 라인에 3000만달러(약 372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테네시 공장의 누적 투자 금액은 3억9000만달러(약 4836억원)에 이른다.

테네시 공장의 세 개 라인은 각각 드럼, 톱로더, 건조기를 생산하고 있다. 연간 생산 능력은 세탁기 120만 대와 건조기 60만 대다. 송현욱 LG전자 테네시 법인 생산실장은 “테네시 공장의 생산 능력은 세탁기를 초당 13~14대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인데, 현재 11~12대 정도 생산하는 것으로 맞춰져 있다”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늘리거나 증설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테네시 공장 바로 옆에는 공장 사이즈와 같게 자로 재어 놓은 듯하게 터를 닦아둔 부지가 조성돼 있었다. 공장 증설을 위해 남겨둔 부지다. LG전자는 이번 건조기 현지 생산을 통해 물류비, 관세, 배송 시간 등을 줄여 수요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비 증가는 원가 인상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또 각종 비용이 줄면 원가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LG전자 테네시 공장에서 무인 운반 로봇(AGV)이 세탁기 부품을 나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장에는 166대의 AGV가 도입돼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테네시 공장에서 무인 운반 로봇(AGV)이 세탁기 부품을 나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장에는 166대의 AGV가 도입돼 있다. 사진 LG전자

부품만 6000번 옮기는데 로봇이 ‘척척’

테네시 공장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로봇을 활용해 공정을 자동화했다. 여기에 60년 이상의 제조 노하우까지 집약돼 제조혁신을 이끌고 있다. 미래 공장을 옮겨놓은 듯한 테네시 공장에 도입된 완결형 통합생산체계는 주요 부품을 공장 내부에서 생산하면서 공급망 교란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 철저한 품질 조건을 라인 전체에 일괄 적용해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품질을 높였다.

테네시 공장은 금속 프레스 가공, 플라스틱 사출 성형, 도색 등 부품 제조를 내재화했다. LG전자가 자체 개발한 ‘지능형 사출 시스템’은 금형에 온도·압력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해 최적의 사출 조건을 유지한다. 테네시 공장의 부품 생산성은 기존 대비 약 20% 향상됐고 불량률은 60% 정도 개선됐다. 

또 통합생산라인에서 △세탁·건조통과 인버터 DD 모터 등 무거운 부품 조립 △화염이 발생하는 용접 △손이 많이 가는 나사 체결 등 위험하고 까다로운 작업은 로봇이 한다. LG전자는 생산기술원에서 제작한 AGV를 테네시 공장에 166대 도입했다. AGV는 최대 600㎏의 적재함을 최적의 경로로 자동 운반한다. 실제 이날 공장 한쪽에는 사출 공장에서 갓 찌어진 ‘바깥튜브(Outer Tub·세탁통 안쪽을 감싸는 플라스틱 구조물)’가 아파트 2~3층 높이의 선반에 줄줄이 쌓여있었다. 바깥튜브가 정상 범위 사이즈로 만들어지기까지 3~4시간의 숙성이 필요하다.

송 실장은 “그간 사람이 일일이 바깥튜브를 옮기는 등 하루에 6000번 이상 부품을 나르는 작업을 해야 했다”라며 “3만 개 이상의 공장 내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단 이동 거리를 찾아 움직이는 AGV가 도입되면서 시간과 인력을 절약하고 있다”고 했다.


LG전자, 美 소비자 만족도 1위

테네시 공장은 품질 면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ACSI가 생활가전을 판매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소비자 만족도’ 평가에서 LG전자는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의 자동화율을 현재 63% 수준에서 연내 70%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생활가전 제조 공장 기준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특히 LG전자는 올해 공장 내 5세대(5G) 이동통신 특화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류재철 LG전자 H&A(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 사업본부장(사장)은 “창원 LG 스마트파크에 이어 테네시 공장까지 등대 공장에 선정돼 생활가전 분야의 압도적인 제조 기술과 경쟁우위를 인정받았다”라며 “맞춤형 제조 혁신으로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했다.


Plus Point

“모바일 철수 덕? 가전 패러다임 전환 인력 확보”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사장. 사진 LG전자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사장. 사진 LG전자

류재철 LG전자 H&A(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 사업본부장(사장)은 1월 9일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모바일(MC사업부)에서 철수한 것은 안타깝지만 덕분에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가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아주 큰 기회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LG전자는 2021년 4월 23분기 연속 영업 적자를 내던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당시 MC사업본부에 남아있던 약 3300여 명의 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H&A사업본부에 배치됐다. 

류 본부장은 “몇백 명 단위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가전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이런 프로젝트가 몇 개씩 돌아가고 있고, 미래를 위해 과거에 해보지 않은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업(UP)가전’이 탄생했다”고 했다.

업가전은 필요에 따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가전제품 라인을 말한다. LG전자는 업가전 선포 후 현재까지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총 24종의 업가전을 출시했고 120개 이상의 업그레이드 콘텐츠를 배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