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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인적 자본’이다.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다수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이라는 보상책을 제시한다. 스톡옵션은 기업이 임직원에게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회사의 주식을 일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회사 임직원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문에 스톡옵션은 스타트업의 꽃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1997년 4월 개정 증권거래법이 시행되면서 스톡옵션 제도가 도입된 후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이후 1999년 상장사들의 주주총회 시즌에는 대기업을 포함한 193개 기업이 스톡옵션 제도를 정관에 반영할 정도로 기업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임직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주식 수가 늘어나고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스톡옵션을 두고 회사와 임직원 사이의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임직원의 스톡옵션 행사 시점에 회사가 부여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스톡옵션 행사를 거절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스톡옵션 행사 거부로 소송 휘말린 메지온

폰탄치료제 ‘유데나필’로 시장에서 관심을 받은 코스닥 상장사 메지온(법무법인 태평양 대리)의 미국 자회사 임원인 A(법무법인 이제 대리)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대표적인 스톡옵션 분쟁 사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김성원)는 작년 11월 11일 스톡옵션 행사를 거부한 메지온이 A씨에게 13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스톡옵션과 관련한 분쟁에서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린 첫 사례다. 

A씨는 2017년 10월 메지온의 미국 자회사에 영업 및 마케팅 부사장으로 채용되면서 메지온과 보통주 4만 주를 1주당 3만3200원에 매수할 수 있는 스톡옵션 부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스톡옵션의 행사 기간을 2019년 11월 17일부터 2027년 11월 16일까지로 설정하고,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 스톡옵션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을 담았다. 

A씨는 2019년 12월 메지온 측으로부터 해임 통지를 받았고, 2020년 4월 메지온 주식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했다. 하지만 메지온은 주식 발행과 인도를 거절했고, A씨는 작년 7월 “메지온은 보통주 4만 주를 교부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표시했다”며 주식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인인 A씨는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뒤 대형 로펌의 미국 변호사로부터 한국 로펌인 법무법인 이제를 소개받았다. 이후 이제의 미국 변호사 겸 한국 변호사인 김지현(변호사시험 제7회) 변호사는 A씨가 미국 법인에 고용된 것은 맞지만 스톡옵션 계약을 체결한 메지온이 한국 법인이고, 국제 송달 등 절차적인 문제로 시간이 지연된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A씨를 설득했다. 결국 A씨는 미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고,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다. 

이번 사건의 컨트롤타워를 맡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김문성(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는 “회사가 스톡옵션 발행 의무와 주식 인도 의무를 불이행하고 계속 지연하면 불이익은 온전히 임직원이 부담해야 한다”며 “특히 이번 사건처럼 중간에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면 당사자는 적절한 처분과 환가 시기를 놓치게 돼 손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회사가 스톡옵션 행사를 미루면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스톡옵션 분쟁과 관련해 회사가 일방적으로 버티는 구조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허위 공시’ 반격으로 허 찌른 이제

메지온 측은 스톡옵션 부여 계약서가 A씨의 서명 날인이 없는 초안에 불과하고, 계약 자체가 체결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계약이 체결된 적이 없기 때문에 계약 체결을 전제로 하는 A씨의 주장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A씨 측은 메지온의 허를 찌르는 예비적 청구(주된 주장이 기각될 때를 대비해 추가하는 주장)를 추가했다. 메지온 측의 말대로 계약서 작성이 안 된 것이라면 현행법상 계약서를 작성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상법 제340조의3(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 제3항은 ‘회사는 주주총회 결의에 의해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받은 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상당한 기간 내에 그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A씨 측은 메지온이 공시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메지온이 A씨에게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스톡옵션 계약서의 기재 내용이 담겼는데, 계약이 체결된 적이 없다면 메지온 측이 ‘허위 공시’를 한 것이냐는 반격이다. 

김문성 변호사는 “계약 체결 사실을 부정해 허위 공시로 인정되면 이 기간에 메지온의 주식을 취득한 주주와 채권자 모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계약 체결을 인정하고 A씨에게 손해를 배상하거나, 계약을 부인하고 모든 주주와 채권자에게 허위 공시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양자택일’ 선택지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메지온을 공략한 것이다.

이에 메지온 측은 A씨에 대한 소송 비용 담보 제공과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제기하며 소송을 지연했다. A씨 측은 2021년 7월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소송 비용 담보 제공 신청으로 인해 2022년 초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다. 이후 메지온 측이 미국 법인에 A씨에 대한 세무 자료를 요청하면서 2022년 7월까지 소송이 멈추기도 했다. 소송 지연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메지온의 주가는 하락했다. A씨가 손해를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제 측은 다른 분야의 법리를 가져와 사건에 활용했다. 명시적 이행 거절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할 때는 이행 거절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한다는 판례다. 이에 따라 A씨 측은 2022년 2월 8일 메지온의 주가(18만4200원)와 스톡옵션 행사 가격(3만3200원)의 차액(약 6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손해액 전액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메지온과 A씨 사이에 스톡옵션 부여 계약서 같은 내용의 의사 합치가 없었다면 그 내용을 외부에 공시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메지온은 임직원들에게 서명, 날인이 없는 계약서를 교부하고 임직원들의 서명, 날인을 받아 수령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행 거절 당시 메지온의 주식 가격이 2022년 7월 가격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고, 메지온이 추진하던 사업에 차질이 생겨 주가가 떨어지는 등 여러 사정에 비춰 손해액을 40%(24억1600만원)로 제한했다. 

다만 A씨 측이 이 중 일부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 13억28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 측은 메지온을 상대로 2·3차 스톡옵션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메지온 측은 이 판결에 불복해 2022년 12월 5일 항소장을 제출했고, 조만간 2심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문성 변호사는 “미국인이 한국의 사법 시스템을 신뢰하고 한국 로펌에 사건을 맡겨 한국 법원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은 사례”라며 “서명, 날인이 된 계약서가 없음에도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쌍방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는 것은 계약법적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