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방어적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특허가 수익 창출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허를 갖고 상품을 만들어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특허 자체를 거래하거나 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가 생겨나고 있다.

지적재산거래소 · 특허 전문기업 등장…       

          

기업들 라이선싱 사업도 적극 추진

특허분쟁이 글로벌화·대형화되면서 특허 비즈니스가 새로운 먹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따르면 특허출원건수는 2010년 17만건에서 지난해 17만9600건으로 증가했다. 외국기업들의 한국 내 특허출원도 늘고 있다.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의 비중은 20%를 웃돈다.

특허분쟁도 증가 추세다. 특허심판 건수는 2010년 1070건에서 지난해 1129건으로 늘었다. 특히 2006년 47건에 불과했던 해외 특허분쟁 건수는 2009년 106건으로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분쟁이 글로벌화되고, 규모도 대형화하는 추세다.

특히 글로벌 특허전쟁은 비용부터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경우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어지간한 경우 1000만달러(약 120억원)가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만약 글로벌 특허 전쟁을 펼치고 있는 삼성이나 애플처럼 최고의 특허 전문가들로 이뤄진 변호인단을 꾸린다면 비용은 많게는 3000만~4000만달러까지 치솟는다.

특허가 수익창출 도구로 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특허 전문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특허 거래시장은 2000년 2억달러에서 2008년 14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특허와 관련된 국내 시장 규모는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박찬수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 등에서 생겨난 특허 관련 비즈니스가 국내에서도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며 “글로벌하게 특허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특허 관련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수익을 창출하는 특허 비즈니스 모델로는 라이선싱(licensing)이 대표적이다. 라이선싱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특허의 권리나, 다른 기업이나 연구기관으로부터 특허를 매입하거나 위탁받은 뒤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3의 개인 또는 기업에 양도하고 대가를 받는 사업이다.

삼성전자도 라이선싱 본격화

우리나라도 로열티 수입으로 많은 수익을 올리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08년 우리나라가 외국으로부터 벌어들인 특허 사용료는 약 4000억원으로, 특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경우 보유특허 1만2000여건 가운에 109건이 표준특허로 CDMA(디지털 이동통신방식)로 벌어들인 로열티는 3000억원에 달했다. 미국 특허 등록 1위 기업인 IBM의 라인선스 수입은 연평균 13억~17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열티 수익이 순이익의 20%를 차지할 정도다. 특허 수지면에선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최근 라이선싱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권을 침해한 기업에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수익을 챙기는 이른바 ‘특허 괴물’도 라이선싱 기업의 한 유형이다. 세계 최대 특허 라이선싱 기업인 인텔렉추얼벤처스는 5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집해 3만여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이에 맞서 한국 기업들의 권리를 지킬 지식전문회사가 바로 ‘창의자본주식회사(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ID)’다. 지난해 8월부터 가동된 ID는 민관합동으로 설립된 국내 첫 지식전문회사다.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투자자들로부터 창의자본펀드를 조성해 지적재산(IP) 인큐베이션, 라이선싱 및 매각, 맞춤형 IP 서비스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적 특허 평가업체 지적재산거래소 설립 추진

특허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특허 거래가 로펌이나 변리사 등을 통해 비밀리에 이뤄졌으나, 앞으로는 공개된 거래소 등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중소 제조업체의 특허 구매를 대행하고 있는 특허해법의 노경규 대표변리사는 “지식재산권의 확보와 효과적인 활용이 기업의 사활에 직결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며 “주로 중소 제조업체를 대신해 특허를 구매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세계 최대 특허평가 업체인 오션토모가 우리나라에 지적재산(IP)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P거래소는 특허를 사고 팔 수 있는 거래소다. 거래소가 설립되면 특허를 보유한 기업들은 특허 매각을 통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IP거래소 설립을 위한 초기 단계의 논의가 지적 재산 관련 국내 기업과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소송 등 특허 관련 분쟁이 늘면서 특허 침해 여부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경쟁사의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해 특허 침해가 일어난 제품을 찾아내고, 기술적 증거를 확보해 제공하기도 한다.

특허종합컨설팅 업체인 특허와 비즈니스는 특허침해 조사뿐 아니라 특허 선행기술조사, 특허무효 자료조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예 기술을 개발할 때부터 해당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우회할 수 있는 우회기술 개발도 지원한다. 김세영 특허와 비즈니스 대표는 “특허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의 의뢰가 지난해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은 특허를 투자 대상으로 삼는 펀드를 설립하는 등 여러 기법을 동원해 특허 비즈니스에 참여한다. 지난 연말 지식경제부와 금융위원회는 ‘특허방어펀드’ 설립을 발표했다. 창의자본주식회사 산하에 별도 특허투자 전문 자산운용사를 올해 초 설립해 다양한 특허방어펀드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2016년까지 6000억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다.

특허 비즈니스의 확대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특허 관련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에 큰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대기업들이 특허방어 펀드 등의 참여를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특허 분쟁을 회피하려는 수동적 방어 전략에 치중했다. 하지만 방어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박찬수 연구위원은 “특허를 기업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아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