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크맨 플러스 매장. 사진 워크맨2 수납공간이 탁월한 작업용 바지. 사진 워크맨3 주머니가 15개 달린 조끼, 허리 주머니엔 A4 사이즈의 물건도 수납할 수 있다. 사진 워크맨
1 워크맨 플러스 매장. 사진 워크맨
2 수납공간이 탁월한 작업용 바지. 사진 워크맨
3 주머니가 15개 달린 조끼, 허리 주머니엔 A4 사이즈의 물건도 수납할 수 있다. 사진 워크맨

요즘 일본에선 ‘워크맨’ 돌풍이 거세다. 소니의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Walkman)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라떼’ 세대. 여기서 워크맨은 작업복을 기반으로 하는 의류 회사다. 1980년 산업 현장 노동자를 위한 작업복과 안전화 등을 판매하는 업체로 출발한 워크맨은 최근 몇 년 사이 ‘제2의 유니클로’라는 별명을 얻으며 무섭게 성장했다.

지난해 일본 경제 매체 닛케이 트렌디가 선정한 ‘올해의 히트 상품 1위’에 오른 데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4~9월에는 매출이 487억엔(약 517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3%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8.1%, 27.1% 늘었다. 점포 수는 898개로, 일본 최대 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매장 수를 앞질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는 패션 시장에서 워크맨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고기능성 제품을 최저가로 판매한다는 것. 워크맨에는 최신 유행 패션이 없다. 그저 ‘옷’의 역할에 충실한 옷만 있을 뿐이다.

냉감 티셔츠, 방풍 재킷, 등산화 등 ‘아재 패션’이라 부를 법한 기능성 의류를 저렴하게 판다. 방한·방수 재킷은 2900엔(약 3만8000원), 신축성 있는 바지는 1500엔(약 1만6000원), 미끄럼 방지 신발은 1900엔(약 2만2000원)으로 다른 아웃도어·스포츠 브랜드보다 절반 이상 싸다. 유행을 타지 않아 오래 입을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실용주의 소비자가 워크맨을 특수복이 아닌 일상복의 범주로 끌어들였다. 영하 30도의 로키산맥에서 워크맨 방한복을 입거나, 용접공을 위한 후드 작업복을 바비큐 파티에 입고, 우천 시 야외 작업용으로 고안된 레인슈트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식이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냈다.

방수·방한·방염·방온·냉감 등 공사장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개발된 워크맨의 옷이 아웃도어 활동 시 입기 좋다는 평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번지면서 젊은이의 발길이 이어졌다.

회사도 기민하게 반응했다. 워크맨은 2018년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장 ‘워크맨 플러스(WORKMAN plus)’를 내고, 아웃도어용 의류 ‘필드 코어(Field Core)’, 스포츠용 의류 ‘파인드 아웃(Find Out)’, 방수·방한복에 특화된 ‘이지스(Aegis)’ 등을 선보였다. 또 일상복으로도 활용하기 좋도록 디자인과 색상을 개선했다.

현재 매장 4분의 1가량이 워크맨 플러스로 운영되고 있으며, 향후 워크맨 플러스 매장을 더 확대할 방침이다. 10월에는 요코하마 도심 한가운데에 ‘#워크맨 걸’을 열어 여성 고객 확보에 나섰다.


코오롱 FnC가 출시한 작업복 전문 브랜드 ‘볼디스트’. 사진 코오롱 FnC
코오롱 FnC가 출시한 작업복 전문 브랜드 ‘볼디스트’. 사진 코오롱 FnC
파타고니아의 작업복 라인 ‘인더스트리얼 헴프 워크웨어’. 사진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의 작업복 라인 ‘인더스트리얼 헴프 워크웨어’. 사진 파타고니아

일상복이 된 작업복, 캠핑·낚시복으로도 인기

패션 업계는 워크맨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아 계속 팔 수 있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환경적으로도 기능성 의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다. 일본에선 워크맨이 성장한 이유로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동일본 대지진 등의 재해를 겪은 소비자가 한 번 입고 버릴 패스트패션보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옷을 찾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패션계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늘고, 등산·캠핑 등 사람이 뜸한 곳에서 즐기는 아웃도어 활동이 인기를 끄는 만큼, 작업복이 하나의 패션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아웃도어 업체를 중심으로 신규 작업복 브랜드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B2B(기업 간 거래)가 아닌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형태의 전문 브랜드를 론칭해 작업 현장은 물론 일상까지 파고든다는 게 국내 패션 기업의 전략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은 지난 9월 작업복 전문 브랜드 ‘볼디스트’를 출범했다. 실제 건축·건설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협업해 방탄복에 사용되는 아라마드와 모터 사이클복에 쓰이는 코듀라 등 내구성이 높은 원단과 패턴을 적용해 일하기 편한 옷을 구현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 노동자의 니즈를 반영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케이투코리아는 산업용 작업복을 특화한 ‘K2세이프티’ 외에 자동차 기계공이 입는 작업복을 기반으로 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NSAD’를 선보였다. 블랙야크도 최근 계열사인 ‘블랙야크아이엔씨’를 통해 워크웨어 산업 육성에 나섰다.

노동자의 호응이 높아짐에 따라 작업화 라인을 확대한 브랜드도 있다. 외과 의사나 요리사들이 즐겨 신는 것으로 유명한 크록스는 병원과 식당 등의 단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크록스 앳 워크’라는 작업화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제화 브랜드 에스콰이어는 경찰청에 경찰화 3만 족을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단체화 주문을 늘리고 있다.

전 세계 작업복 시장 규모는 2022년 480억달러(약 53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내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시장에는 아직 이렇다 할 강자가 없다. 불황기를 맞은 패션 업계가 작업복을 간과해선 안 될 이유다.

K2세이프티의 작업복. 사진 K2세이프티
K2세이프티의 작업복. 사진 K2세이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