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 행사장 입구에서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1월 14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 행사장 입구에서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 2019’가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렸다. 신작 발표 등 참가 기업 주요 행사는 개막일에 열렸지만 진정한 ‘대목’은 주말 이틀간이었다. 휴일을 맞아 전국의 게이머가 몰려든 탓이다. 토요일인 16일 벡스코 내부는 인파가 들어차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였다. 참가 기업은 많게는 250대에 달하는 모바일 기기로 체험공간을 꾸렸으나, 모든 부스에 줄잡아 100여 명이 ‘대기열’을 이루고 있었다.

지스타는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 개막해 그 주 일요일까지 열린다. 수능이 끝난 고3 학생을 붙잡기 위함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친구와 지스타를 찾았다는 김모(18)군 또한 이틀 전 수능을 봤다고 했다.

표정에선 수험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묻어났다. 부산 방문이 처음이라는 김군은 “매년 인터넷 방송으로만 보던 지스타에 처음 와본다”라며 감탄했다. 그는 “게이머에게 이곳은 ‘성지(聖地)’”라고 했다.

행사장이 붐비자, 일부 방문객은 바닥에 앉아 모바일 게임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대구에서 이른 아침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왔다는 현모(16)군도 ‘길바닥 게이머’ 신세였다. 현군은 “배틀그라운드와 브롤스타스를 좋아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부스에 들어갈 수 없다”며 “오늘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사람이 줄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군복을 입은 군인도 보였다. 올해 들어 주말 외출·외박이 가능해지며 나타난 모습이다. 해군 외출복 차림을 한 박모(22) 상병은 “분기에 한 번씩 외출이 가능해 지스타를 찾았다”며 “부대가 부산에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시작해 15회째를 맞은 지스타 2019에는 36개국에서 691개사가 총 3071개 부스를 열었다. 방문객은 지난해보다 3.9% 늘어난 24만4309명을 기록했다. 행사 규모와 방문자 모두 역대 최대다. 전야제 격인 ‘2019 대한민국 게임대상’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해 “게임 산업진흥법을 전면 개정하고 내년 초 게임산업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겠다”며 게임 업계에 힘을 보탰다. 문체부 장관이 지스타를 찾은 건 2015년 이후 4년 만이다.


지스타(G-STAR) 행사장에서 중국 게임사 X.D 글로벌의 인기 게임 ‘소녀전선’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모델들. 사진 윤민혁 조선비즈 기자
지스타(G-STAR) 행사장에서 중국 게임사 X.D 글로벌의 인기 게임 ‘소녀전선’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모델들. 사진 윤민혁 조선비즈 기자

넥슨·엔씨소프트 불참한 韓 대표 게임쇼는 ‘중국판’

외연은 확장됐지만 이면엔 우려도 공존했다. 올해 지스타에는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으로 불리는 국내 3대 게임 업체 중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불참했다. 특히 넥슨은 2005년 첫 지스타부터 개근하며 매년 최대 규모 부스를 꾸려온 업체다. 한때 지스타를 두고 ‘넥스타(넥슨+지스타)’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지만 올해는 자리를 비웠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로스트아크’ 제작사 스마일게이트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빈자리는 3N의 한 축인 넷마블과 신흥 강자 펄어비스,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옛 블루홀) 등이 채웠다. 넷마블은 100개 부스에 스마트폰 시연대 250대를 계단식으로 배치했는데, 장관을 이뤘다. 넷마블이 이번 지스타에서 선보인 신작은 ‘세븐나이츠 레볼루션’ ‘제2의 나라’ ‘A3: STILL ALIVE’ ‘매직: 마나스트라이크’ 등 4종. 세븐나이츠 레볼루션과 제2의 나라는 첫 공개였다.

펄어비스는 지스타 부스에서 신작 공개 행사 ‘펄어비스 커넥트 2019(Pearl Abyss Connect 2019)’를 열었다. 연례 신작 공개를 지스타에서 치른 회사는 펄어비스가 유일하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 ‘플랜 8’ ‘도깨비’ ‘섀도우 아레나’ 등 4종의 신작을 내놨다. 펄어비스가 지난해 인수한 아이슬란드 게임사 CCP게임스도 함께했다. CCP게임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온라인게임 ‘이브 온라인’ 한글판을 지스타 개막일에 선보였다. 이브 온라인은 16년간 서비스를 이어온 글로벌 히트작이다. 누적 계정은 4000만 개에 달한다.

몇몇 국내 게임사의 선전에도 넥슨·엔씨소프트 등 대형사 공백은 컸다. 한국 게임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중국 게임 업체가 등장했다. 행사의 ‘얼굴’ 격인 입구 주변은 중국 게임사 미호요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중국계 게임 업체 IGG 부스가 차지했다. ‘소녀전선’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중국 중견 게임사 X.D 글로벌도 넷마블 맞은편에 자리했다. 이들 업체는 모두 40~50부스로 대형 전시장을 차렸다.

메인 스폰서는 ‘브롤스타스’로 유명한 해외 게임사 수퍼셀이 맡았다. 지난해 에픽 게임스에 이어 2년 연속 해외 업체가 행사를 이끈 것이다. 수퍼셀 지분 84%는 중국 텐센트 소유다. 지난해 메인 스폰서 에픽 게임스의 최대주주 역시 지분 48.4%를 보유한 텐센트다. 텐센트가 지분 84%를 지닌 미국 게임사 라이엇게임스도 60부스 규모로 참석했다. 한국 대표로 참여한 넷마블과 크래프톤도 텐센트 지분율이 각각 11.56%, 11.03%다. 한국 대표 게임쇼에서 중국 게임사들이 잔치를 벌인 셈이다.


11월 16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 광장에서 마주친 코스플레이어.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를 코스프레했다. 사진 윤민혁 조선비즈 기자
11월 16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 광장에서 마주친 코스플레이어.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를 코스프레했다. 사진 윤민혁 조선비즈 기자

줄어든 신작…게임 자리 차지한 ‘방송인’

중국의 공습과 동시에, 지스타의 ‘내실’은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 지스타에서 발표되는 신작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민용재 YJM게임즈 대표는 “지난해 부스를 도는 데 40분이 걸렸는데, 올해는 20분이면 끝나더라”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올해 지스타에 불참한 넥슨은 부산 대신 영국 런던을 찾았다. 넥슨은 지스타가 개막한 14일(현지시각) 런던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MS) 엑스박스(Xbox) 팬 페스티벌 ‘X019’에서 신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KartRider:Drift)’를 공개했다. 국내 최대 게임 업체가 국내 대표 게임쇼를 외면하고, 해외에서 신작을 발표한 꼴이다.

신작 공백은 방송인이 채웠다. 올해 지스타는 ‘보는 재미’를 강조했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최초로 참가했고, 아프리카TV는 지난해 60개 수준이던 부스를 100개로 늘렸다. 참가사는 인기 유튜버·인터넷방송 진행자(BJ) 섭외에 열을 올렸다. 구글 플레이 부스에는 만화가, 유튜버 이말년이 등장했고, LG전자 부스에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영호가 방문객과 대전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예전 지스타는 신작의 향연이었지만, 이젠 신작은 별로 없고 ‘행사가 많은 행사’가 됐다”며 “게이머들이 ‘보는 게임’을 선호하니 어쩔 수 없지만, 과거 지스타를 기억하는 사람에겐 씁쓸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