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천호점의 지하 2층 푸드·식품관. / 조선일보 DB

4월 24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천호점. 1층 정문으로 들어서자 왼쪽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그릴리아’가 5월 새롭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옆 커피 전문점 ‘커피앳웍스’는 6월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화점 1층에는 명품 브랜드 매장이 들어선다. 백화점의 메인 판매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에 식음료 매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유통 업계에선 파격적인 시도로 여겨진다.

같은 날 천호점 지하 2층 ‘푸드·식품관’. 중앙 테이블에서 한 아이와 엄마가 태블릿PC를 보며 깔깔거리고 있다. 디저트를 즐기는 20대 연인은 물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40대 아주머니들까지, 이들은 모두 특정 물건을 구매하려는 것보다는 그 공간을 즐기기 위해 백화점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현대백화점의 변신을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했다.


키워드 1│판매 장소가 아닌 삶의 공간을 만든다

과거 현대백화점이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했다면, 현재는 백화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그 무기는 ‘푸드·식품관’이다. 고객에게 쇼핑의 즐거움은 물론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고객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백화점으로 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현대백화점뿐만 아니라 국내 백화점 업계 전체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백화점 업계는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가격, 구매 편리성을 경쟁력으로 한 온라인 판매 업체와 대형 할인매장 등 새로운 유통 채널이 힘을 얻으면서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국내 백화점 소매판매액은 2009년 20조원을 넘어섰지만, 8년이 지난 현재까지 30조원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변신은 2015년 8월 새롭게 문을 연 판교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백화점 경영진은 판교점을 어떤 콘셉트로 지을까 고민했다. 처음에는 기존 전통 백화점처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전통 백화점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고객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면서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봤다. 결국 경영진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쉬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발 콘셉트를 잡았다. 물론 음식만 판매한다는 것은 아니다. 음식 판매가 고객의 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일종의 트리거(trigger·방아쇠)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후 현대백화점은 전국 맛집은 물론 해외 유명 음식점을 판교점 내 푸드·식품관에 입점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판교점을 찾는 고객이 늘었고, 그들은 음식만 먹고 집으로 가지 않았다. 백화점에 머물며 쇼핑을 즐겼다. 판교점은 오픈 100일 만에 2100억원의 매출을 기록, 국내 백화점 오픈 초기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 현재까지 판교점은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이후 현대백화점은 천호점 푸드·식품관(2017년 10월)과 킨텍스점 푸드·식품관(2018년 4월)을 새롭게 꾸며 오픈했다.


현대백화점 천호점 키즈관 내 ‘릴리펏키즈카페’. / 현대백화점

키워드 2│타깃 고객만 끌어들일 수 있어도 살아남는다

현대백화점은 상품 차별화 전략도 펼치고 있다. 백화점에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옛말이다. 이제는 인터넷·모바일 시대다. 매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 백화점이 더 이상 ‘백화(百貨)’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백화점은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타깃 고객을 정하고, 그들을 위한 전문매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올해 1월 문을 연 천호점 ‘키즈관’을 보면 잘 나타난다. 키즈관에는 다양한 유·아동 의류 매장은 물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쉬면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키즈카페가 들어서 있다. 상품 차별화와 동시에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백화점만이 제공할 수 있는 휴식·문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천호점 9~10층에 ‘홈퍼니싱’ 전문관도 오픈했다. 홈퍼니싱이란 ‘홈(home)’과 ‘퍼니싱(furnishing)’을 합친 단어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생활용품 등을 활용해 집 안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과거 단순히 패션 분야에서 상품 다변화 전략을 펼쳤다면 이제는 그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유통 전문가인 김인호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과거 백화점의 핵심 상품은 패션이었지만 이제는 이것만으로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며 “시장 변화를 읽고 현재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한발 빠르게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키워드 3│판매 수수료만 받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도 판다

‘직접 생산한다.’ 현대백화점은 자체 생산 상품도 확대하고 있다. 과거 백화점 내 공간을 판매 업자에게 임대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 형태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단순 판매 중개업만으로는 지속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접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것은 전통 유통 업체(백화점)에 있어 엄청난 변화”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대백화점은 패션·가구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백화점은 2012년 가구 업체 리바트를 인수하며 가구·홈퍼니싱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의류 업체 한섬도 사들였다. 한섬은 타임·마인 등 자체 브랜드와 지미추·발리·CK 등 수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주요 판매 제품은 패션이고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브랜드가 다양할수록 더 많은 고객이 백화점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기존 국내외 유명 패션 브랜드 매장을 백화점에 들여오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생산·판매하는 것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매출 1조8481억원, 영업이익 3936억원을 기록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