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의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 사진 호텔신라
호텔신라의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 사진 호텔신라

‘어떻게 황금알을 품었을까.’ 최근 면세 업계에서 호텔신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 국내 면세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遊客·유커)이 늘기 시작했고, 그들이 면세점에서 ‘통 큰 쇼핑’을 하면서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들어 상황이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해 3월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하면서부터였다. 이른바 ‘금한령(禁韓令·한류 금지령)’의 일종. 그 결과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416만9353명으로 2016년(806만7722명)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러자 “유커를 잃은 면세점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하고 있다”는 등 업계에는 위기감을 나타내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중국 관광객 감소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국내 면세 시장 1위 호텔롯데는 인천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부분 철수했고, 한화갤러리아는 제주 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다.

그러나 호텔신라만큼은 꾸준히 좋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매출 4조원…해외면세점 강화가 비결

호텔신라는 지난해 매출 4조115억원, 영업이익 73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사상 최대치다. 영업이익은 2016년과 비교해 7.5% 감소했지만,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국내 면세업이 최악의 위기라고 여겨지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업계에서 말하는 ‘선방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호텔신라의 사업은 호텔과 면세 두 개 부문으로 나뉘는데, 면세업이 회사 전체 매출의 약 90%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호텔신라가 위기 상황에서 선방, 아니 호(好)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한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중국 관광객이 급감했지만, 호텔신라는 4조원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 매출을 실현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준비한 (해외 면세업의) 고객군 다변화 전략으로 외형을 성장해나갔고, 원가 절감을 통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했습니다.”

이부진 대표는 2010년 말 호텔신라 최고경영자(CEO)에 오르자마자 해외 면세업 강화에 나섰다. 그의 말처럼 고객군 다변화를 위해서였다. 언제까지 국내 면세 시장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대표는 줄곧 “면세·유통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해 글로벌 명문 서비스 유통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해왔다.

이후 호텔신라는 2013년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면세점을 시작으로, 2014년 마카오 국제공항 면세점, 2016년 태국 푸껫 시내면세점, 지난해 4월 일본 도쿄 시내면세점, 지난해 12월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 등 해외 면세점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을 열며 아시아 3대 국제공항(인천 국제공항 제2 여객터미널,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화장품·향수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화장품·향수 면세점 사업자로 부상했다.

화장품·향수는 이부진 대표가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품목이다. 화장품·향수는 면세업에서 ‘꽃’이라고 불리며 면세점 매출을 견인하는 핵심 품목이다. 지난해 기준 공항 면세점 매출 세계 1위를 기록한 인천 국제공항의 매출 품목 순위에서도 화장품·향수가 7억7400만달러(약 8256억원)로 가장 큰 비율(38%)을 차지하고 있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은 2016년 기준 국제선 이용객 수 세계 3위로 세계에서 가장 바쁜 국제공항 중 하나이며, 연간 70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매일 비행기 1100여 대가 뜨고 내리는 대규모 국제공항이다.

호텔신라는 이 공항 내 총 6개 구역(3300㎡·약 1000평)에서 화장품·향수 매장과 패션·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산 화장품 브랜드 12개를 포함한 총 200여 개 이상의 화장품·향수·패션 브랜드가 입점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매장 콘셉트를 ‘뷰티 앤드 유(Beauty & You)’로 정하고, 3개 테마 구역으로 나눠서 꾸몄다”고 말했다.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제안하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큐레이티드 존’, 한·일 양국의 인기 화장품 브랜드를 소개하는 ‘뉴 제너레이션’, 남성 전용 상품을 선보이는 ‘엘레멘츠(Elements)’ 등이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전체 매출 중 해외 면세 부문에서 약 5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이 본격적으로 운영되면 국내 면세점 업체 중 처음으로 연간 해외 매출 1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힘입어 호텔신라는 올해 매출 4조7800억원, 영업이익 153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면세점 최초 ‘해외 매출 1조원’ 열듯

그동안 ‘매출이 한국이라는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호텔신라의 구매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현재 호텔신라는 싱가포르·마카오·태국·일본·홍콩 등 아시아 주요 거점에 면세점을 운영, 구매 협상력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면세업은 매장 운영 업체(호텔신라)가 브랜드 메이커에서 제품을 구매한 후 판매하는 직매입 구조다. 때문에 구매 원가가 낮을수록 이익률이 높다. 제품을 많이 구매할수록, 이른바 바잉 파워(buying power)가 커질수록 제품 구매 단가가 떨어진다. 박신애 KB증권 연구원은 “호텔신라는 글로벌 커버리지 확대로 제품 구매량이 증가했고 매입 단가 하락에 따른 원가율 개선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KB증권에 따르면 호텔신라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8%를 저점으로 매년 조금씩 개선, 2021년 4.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텔신라는 2016년 영업이익률 2.1%를 기록했다.


Plus Point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공항 면세점 최초로 루이뷔통 유치
추진력·위기 대응력 갖춘 ‘리틀 이건희’

박용선 기자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는 외모뿐 아니라 경영 스타일까지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닮아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특히 이 대표는 사업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전 세계 공항 면세점 중 처음으로 인천 국제공항에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을 유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베르나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은 “루이뷔통을 공항 면세점에 입점시키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집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누구보다 면세점 내 명품 브랜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루이뷔통·샤넬 등 명품 브랜드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집객(集客) 효과’가 뛰어나다. 업계에선 명품 브랜드 보유 여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대표는 아르노 회장이 한국을 방문할 때 직접 찾아가 그를 설득했고, 루이뷔통을 인천 국제공항 내 신라면세점에 입점시킬 수 있었다. 현재까지 루이뷔통 공항 면세점은 신라면세점 한 곳뿐이다.

이부진 대표는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도 지녔다. 특히 다른 재벌가 오너와는 다르게 뒤로 숨지 않고 전면에 나와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호텔신라는 2011년 서울 신라호텔에 방문한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한 일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자 이 대표는 논란이 불거진 바로 다음 날 신라호텔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고, 이혜순씨의 한복 매장을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이후 비난 여론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2015년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41번째 환자가 확진 전에 제주 신라호텔에 머물렀다는 통보를 받은 이 대표는 다음 날 제주 신라호텔을 찾아 영업 중단을 지시했다. 투숙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환불해주고 항공료 보상, 타 숙소 예약 처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는데, 당시 다른 호텔과 의료기관보다 한발 빠른 대처였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 전통미 살린 ‘한옥호텔’ 건립

이부진 대표는 호텔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프리미엄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도 선보였다. 호텔신라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라스테이는 2013년 11월 경기 동탄점을 시작으로 서울 역삼·서대문·서초, 제주, 부산 해운대 등지에 모두 11개 호텔을 열었다. 신라스테이는 2016년 첫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매출 856억원, 영업이익 44억원을 달성했다. 신라스테이는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중국 단체 관광객 감소 등 영업 환경 악화에도 호텔신라가 이익을 내는 데 한몫했다.

현재 이 대표는 호텔신라의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전통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신라호텔 초입에 위치한 주차장과 신라면세점을 허물고, 그 자리에 전통한옥호텔(지하 3층~지상 2층)과 새로운 면세점(주차장을 포함한 지하 4층~지상 2층)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전통미를 최대한 살린 전통한옥호텔을 건립해 한옥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는 동시에 호텔신라의 품격도 한 단계 높인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현재 호텔신라의 전통한옥호텔 건립 사업은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 서울시로부터 최종 인허가를 받기 위한 평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