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 오스트리아 빈시립대학-클라겐푸르트대학 바이올린 전공
한정희
오스트리아 빈시립대학-클라겐푸르트대학 바이올린 전공

2010년에 설립된 더한주류는 매실주 전문 양조업체다. 잘 익은 황매(매실나무에서 완전히 익은 노란 매실)만 골라 담금술에 100일 동안 침출시킨 뒤 1년부터 5년까지 숙성시킨 ‘매실원주’, 그리고 이 매실주를 증류해 만든 매실증류주 ‘서울의 밤’이 주력제품이다.

특히 출시 일 년밖에 안 된 ‘서울의 밤’ 반응이 뜨겁다. 매실주를 1차 증류한 뒤 서양의 술 진(gin)에 들어가는 노간주나무열매(주니퍼베리)를 첨가해 2차 증류한 ‘서울의 밤’은 ‘매실로 만든 한국의 드라이 진’으로 꼽히며 젊은층에게서 인기가 높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는 10년째 매실주 회사 대표로 일하고 있지만, 오스트리아에서 10년 동안 유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 선화예중 3학년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수석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연주자로서의 미래를 포기했다. “2년간 연주자 과정을 더 밟고 솔로이스트(독주자)로 활동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졸업 직후인 2000년도에 귀국,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한 대표는 “대학원까지 마치고 보니, 내가 음악을 평생 할 만큼 재능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게다가 허리 디스크가 생겨 연주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는 매실원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매실이 아닌 기타 과실주를 일절 첨가하지 않고 매실주 원액 100%로 담근 매실주는 우리 제품이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알던 국내 매실주보다는 가격이 꽤 비싸다. 그러나 그는 “가격을 낮출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결국 품질을 의도적으로 낮춘다는 것인데, ‘최고의 품질로 약 같은 술을 만들자’는 회사의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밤. 사진 더한주류
서울의 밤. 사진 더한주류

매실 원료는 어디서 구하나?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2000평 규모 집안 과수원에서 연간 10t 정도 매실이 생산된다. 그리고 매실 재배 최적지로 꼽히는 전남 광양에서도 계약재배로 10t을 수매해서 매실주 원료로 쓴다. 내년쯤 광양으로 양조장을 이전할 계획인데, 그럴 경우 계약재배 물량이 두 세배는 늘어날 것이다.”

매실주 회사를 만든 계기는?
“집안이 매실 과수원을 갖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식탁엔 매실이 항상 넘쳤다. 매년 여름이 되면 할머니는 매실주를 담그셨다. 매실주 맛을 보고 자랐지만, 매실로 사업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귀국 후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국내 매실주를 처음으로 마시게 됐다. 근데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매실주 맛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완전 엉터리 술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매실주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해, 2010년에 지금의 매실주 회사를 차렸다. 기존의 국내 매실주와 차별화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대표가 설립한 더한주류의 매실원주는 국내 일반 매실주와는 만드는 방법부터 달랐다. 다른 매실주들은 매실원액 외에 기타 과실주를 40% 첨가하는 반면, 더한주류의 매실원주는 70%가 넘는 주세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실주 원액 100%로 만든다. 설탕 대신 제주산 꿀을 넣는 것도 다르다. 한 대표 할머니의 매실주 레시피는 황매로 만드는 것, 당분으로 설탕 대신 꿀을 첨가하는 것, 두 가지다. 또 다른 회사들은 대부분 덜 익은 청매를 매실주 원료로 쓰지만, 더한주류의 매실원주는 잘 익은 황매만 따서 쓴다. 청매는 지름이 2㎝ 정도로 과육이 단단하고 향이 옅지만, 황매는 청매보다 더 크고 부드럽다. 가격도 황매가 세 배 정도 더 비싸다.

청매와 황매는 어떻게 다른가?
“청매는 대개 6월쯤 수확하고, 황매는 7월초부터 수확한다. 청매는 덜 익은 매실이고 황매는 다 익은 매실을 말한다. 황매의 문제는 딴 뒤 하루 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열매가 뭉개져 버린다는 점이다. 이미 잘 익었기 때문에,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셈이다. 황매는 잘 익은 과육이라 당도도 높다. 그래서 우리는 황매를 수확하자마자 바로 급랭시킨다. 모양이 뭉개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급랭 특허도 갖고 있다. 동결된 상태의 황매를 담금술에 부어 100일 정도 침출시킨 뒤 매실을 건져내고 적어도 일 년 정도 숙성시킨 후 제품을 만든다. 3년, 5년 숙성시킨 제품도 있다.”

매실 증류주 ‘서울의 밤’은 어떻게 만들었나.
“매실원주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우리나라 술문화에서는 판매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소 단맛이 강한 매실원주는 서양의 식전주 혹은 식후주(디저트) 개념의 술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마시는 메인 술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매출이 커지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우리도 메인 술 시장에 뛰어들어 보자’고 만든 게 소주 스타일의 ‘서울의 밤’이다. ‘서울의 밤’은 매실증류 원액 외에 진의 향을 내는 노간주나무열매를 첨가했다. 대개 진은 곡물을 증류시켜 만드는데, 우리는 곡류 대신 황매실주를 증류(1차)시켜 노간주열매를 넣어 2차 증류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회사의 효자가 될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비자 반응이 좋다. 평소 매실주를 마시지 않던 사람들도 서울의 밤을 마셔본 후에는 매실주를 찾게 되는 후광효과도 있었다. 그래서 매실원주 판매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서울의 밤’이 회사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매실주를 클래식 음악에 비교한다면.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우선 오케스트라에는 연주를 위한 악보가 있다. 가령, 바흐의 기악곡 샤콘(Chaconne) 악보에는 바흐의 혼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품(매실주)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기획, 레시피가 아니겠나 싶다. 또 연주자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음악이 다르듯이, 어떤 원료를 쓰느냐에 따라 매실주 품질도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또 오케스트라는 혼자 연주하는 게 아니듯이 매실주도 재료와 사람과 양조 설비가 잘 어우러져야 좋은 제품이 생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