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울산 온산공장 야경. 이 공장의 하루 원유 정제량은 66만9000배럴에 달한다. 원유 정제량 대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율을 뜻하는 고도화 비율은 22.1%다. <사진 : 에쓰오일>
에쓰오일 울산 온산공장 야경. 이 공장의 하루 원유 정제량은 66만9000배럴에 달한다. 원유 정제량 대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율을 뜻하는 고도화 비율은 22.1%다. <사진 : 에쓰오일>

에쓰오일(S-OIL)은 지난해 사상 최대 경영 실적을 올렸다.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1조6169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매출은 16조321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10.2%에 달한다.

에쓰오일의 핵심 경쟁력은 ‘대규모 설비 투자’에 있다. 정유업은 정제시설을 건설하는 데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원유 수급, 자금 조달 능력을 갖추는 게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에쓰오일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글로벌 1위 원유 생산 업체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공사 아람코(Aramco)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대주주다. 현재 지분율은 63.4%다.


1991년 이후 세 차례 대규모 설비 투자

에쓰오일은 원유 99%를 아람코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다른 국내 정유 업체에 비해 원유 조달 안전성이 높다. 산유국의 정치적 불안 요소가 원유 수급을 불안하게 하지만 에쓰오일의 경우 이런 리스크가 거의 없다.

아람코의 신용 보강을 통한 역발상 투자도 가능하다. 최악의 정유 업황이 이어지는 시기에 경쟁 업체는 투자를 축소하는 등 신용등급 하락에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아람코의 금융 지원을 받으면서 업황 회복 시기를 예상하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에쓰오일은 아람코가 경영에 참여한 1991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세 번의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아람코는 1991년 에쓰오일 지분 35%를 취득했고, 2015년 28.4%를 추가 매입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에쓰오일은 업계에서 설비 투자의 현자(賢者)로 불린다”며 “아람코를 대주주로 두면서 약 10년을 주기로 대형 투자 사이클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1996~97년 국내 정유 업체보다 약 10년 빠르게 ‘고도화 설비’에 투자했다. 원유를 정제하면 전체 생산 제품의 40~50%가 화력발전 연료로 사용되는 값싼 중질유(연료유)다. 연료유를 재처리해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와 등·경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시설을 고도화 설비라고 한다. 지금은 고도화 설비 투자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고도화 설비 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연료유 가격이 원유보다 비싸서 그대로 판매하더라도 이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연료유를 등·경유로 바꾸는 수소 첨가 고도화 설비(1996년·1일 생산 7만5000배럴)와 휘발유로 전환하는 촉매 분해 고도화 설비(1997년·1일 생산 7만3000배럴)를 건설했다. 글로벌 시장이 친환경 중심으로 흘러가고, 화력발전 등의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의 예상은 적중했다. 2000년대 들어 화력발전 수요가 줄면서 연료유 가격이 원료인 원유 가격보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국내 정유 업체는 고도화 설비 투자에 나섰다.

에쓰오일의 울산 온산공장 원유 정제량은 1일 생산 66만9000배럴에 달한다. 원유 정제량 대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율을 뜻하는 고도화 비율은 22.1%다. 하루 14만8000배럴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능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사업 다각화, 석유화학 부문 강화

에쓰오일의 두 번째 투자는 석유화학 제품인 파라자일렌 설비 투자였다. 에쓰오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정유·석유화학·윤활유 등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에쓰오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유 업황이 악화되는 시기에 약 1조4000억원을 들여 파라자일렌과 벤젠을 생산하는 제2 아로마틱 플랜트 투자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내 정유 업체들은 원유를 구입하기 위해 은행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리는 원유도입용 차입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중국 경제 성장으로 폴리에스터 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 2011년 울산 온산공장에 파라자일렌 90만t과 벤젠 30만t 생산 설비를 건설했다.

신규 설비 가동 시기와 맞물려 2011~2013년 중국을 중심으로 파라자일렌 제품 품귀 현상이 나타났고, 에쓰오일은 약 2년 만에 투자비 대부분을 회수할 수 있었다.

에쓰오일은 2014년부터 온산공장 시설 개선 사업인 ‘수퍼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파라자일렌, 고품질 윤활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생산 효율과 수익성을 높여 에쓰오일의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에쓰오일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수퍼 프로젝트에 3300억원을 투입했다.

지난해 중질유 탈황 설비, 파라자일렌 설비 등 주요 생산 시설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이후 투자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2014년 289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에쓰오일은 2015년 흑자전환했고,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영업이익 1조6169억원)을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올해 상반기에도 정기 보수 기간을 이용해 석유화학 설비 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수퍼 프로젝트의 마지막 3단계 작업이었다.

에쓰오일의 세 번째 설비 투자는 현재 진행 중이다.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공단 내에 부지를 구입해 정유 석유화학 복합시설인 잔사유 고도화(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OD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잔사유 고도화 설비는 원유에서 가스, 경질유 등을 추출한 뒤 남는 값싼 잔사유를 처리해 프로필렌, 휘발유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잔사유 탈황 시설, 분해공정 등 첨단 고도화 설비를 통해 휘발유와 옥탄가 향상제를 생산한다. 같은 양의 원유를 투입하면서도 높은 가치의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 원가 절감과 수익성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잔사유 고도화 설비는 석유화학 원료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동시에 건설되는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는 잔사유 고도화 시설에서 생산된 프로필렌을 원료로 투입한다.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는 연산 40만5000t의 폴리프로필렌과 연산 30만t의 산화프로필렌을 생산할 수 있다.

산화프로필렌은 자동차 내장재와 전자제품, 단열재 등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의 기초 원료다. 폴리프로필렌은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가격 대비 탄성이 뛰어나 자동차 범퍼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는 에쓰오일이 자동차,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등의 분야에 적용 가능한 첨단 소재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에쓰오일은 이를 통해 ‘수익성이 뛰어난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에쓰오일 본사. <사진 : 에쓰오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에쓰오일 본사. <사진 : 에쓰오일>

전체 매출의 60% 해외에서 발생

잔사유 고도화, 올레핀 다운스트림 프로젝트로 인한 에쓰오일의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도 예상된다.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화학, 윤활유 등 비(非)정유 부문 비율이 현재 14%에서 19%로 늘어난다. 원유 가격보다 저렴한 연료유 비율은 12%에서 4%로 대폭 줄어든다. 석유화학 제품 포트폴리오도 현재 71%를 차지하는 파라자일렌은 46%로 감소하고, 올레핀 제품이 37%로 증가하는 등 균형 잡힌 구조를 갖추게 된다.

정유 업체에서 석유화학 분야 확대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이 전체 영업이익의 55%를 기록하며 정유 부문을 뛰어넘었다. 비정유 부문 매출은 23.6%(석유화학 15.6%, 윤활기유 8%)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55.2%(석유화학 30.5%, 윤활기유 24.7%)를 기록했다.

해외 사업도 에쓰오일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에쓰오일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포함한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 석유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60%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한다. 내수와 수출의 조화를 통해 국내외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특히 에쓰오일은 인구에 비해 정유 시설이 부족하고 경제 규모가 커져서 석유 제품 수입 수요가 늘고 있는 지역을 적극 공략했다. 환경 문제로 정유 생산 시설을 폐쇄해 석유 제품 수입량이 늘고 있는 호주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석유 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인도네시아·필리핀 등)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7년 현재 에쓰오일의 지역별 수출 비율을 보면, 중국이 20.2%로 가장 높고, 호주(16.4%), 일본(11.6%), 동남아시아(11%), 미국(8.8%), 싱가포르(8.6%), 유럽(6.6%)순이다.

해외 정유·석유화학 사업은 현지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수급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에쓰오일은 아시아 에너지·화학 산업의 중심지 싱가포르, 세계 최대 석유화학 시장 중국 상하이(上海), 유럽 해상 운송 거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지사를 두고 있다.

에쓰오일은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잔사유 고도화, 올레핀 다운스트림 프로젝트 공정에서 생산되는 고품질의 경질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Plus Point

오스만 알 감디 에쓰오일 대표
소통과 실천 중시하는 솔선수범형 리더

박용선 기자

에쓰오일은 8월 30일 서울 마포사옥 대강당에서 ‘비전 2025’ 선포식을 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존경받는 에너지 화학 기업으로 도약’을 결의했다.

오스만 알 감디(Othman Al-Ghamdi) 에쓰오일 대표는 “10년, 20년 후 장기 미래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는 확고한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며 새 비전 수립 의미를 설명했다.

알 감디 대표는 “에쓰오일의 핵심 역량은 사람, 즉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인재다”며 “최고의 운영 효율성과 차별화된 투자 전략으로 새로운 비전을 달성해 2025년 영업이익 3조원, 시가총액 25조원을 목표로 사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향상시키자”고 말했다. 이 성장 목표는 지금의 두 배에 가깝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1조6169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시가총액은 13조3411억원(12월 7일 종가 기준)이었다.


사우디 출신, 한국 이름 ‘오수만’

에쓰오일은 이날 ‘비전 2025’ 실현을 위해 △정유 사업 강화 △화학 사업 확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등 세 가지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또 최고·열정·정도·협력·나눔 등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강조했다. 특히 에쓰오일은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잔사유 고도화 설비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과 차세대 성장 동력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알 감디 대표는 지난해 9월 에쓰오일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그는 2015년 9월부터 에쓰오일의 대주주인 아람코의 한국 법인 대표를 맡으며 아람코의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총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알 감디 대표는 사우디 킹파드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아람코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생산·엔지니어링·정비·프로젝트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사우디의 리야드 정유공장 엔지니어링 본부장, 라스타누라 정유공장 생산본부장을 역임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사우디 아람코가 엑손모빌(Exxon Mobile), 시노펙(Sinopec)과 합작으로 중국에 설립한 푸젠 정유석유화학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기술기획 부문을 총괄하는 등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쌓았다.

그는 에쓰오일 대표 취임 직후 ‘오수만’이라는 한글 이름을 지었고, 한국 문화와 경영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오수만은 한자로 성 오(吳), 쓰일 수(需), 당길 만(挽)이다. ‘탁월한 지혜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번영을 이끌어내는 인물’이란 뜻이다.

알 감디 대표의 리더십은 솔선수범형으로 요약된다. 그는 다양한 현장에서 임직원들과 소통하고 실천하며 믿음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한 달에 네 번은 울산 온산공장과 신규 프로젝트 공사 현장을 점검한다. 안전도 강조한다. 그는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완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