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왼쪽)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정몽구(왼쪽)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모비스 사업 분할 후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개편안의 핵심은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다. 물론 사업 조정을 통한 미래 자동차 시장도 준비한다.

현대차그룹은 3월 28일 현대모비스의 모듈·AS 부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의 ‘알짜’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 부품 사업은 회사 전체 매출 35조원의 40%(14조원)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현대글로비스는 합병 후 부품 제조에서 조달, 운송, AS까지 완성차 종합 공급망을 구축하게 된다. 그 결과 매출은 33조원, 영업이익은 2조4000억원 규모로 커진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매출 16조원, 영업이익 7200억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변화는 영업이익률이 개선된다는 점이다. 4%대의 영업이익률은 7%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사업의 영업이익률이 10%에 달하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에 모듈·AS 사업을 넘긴 현대모비스는 자율주행 등 미래 자동차 기술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초 연구·개발(R&D) 조직을 개편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현대·기아차 실적이 악화되면서 현대글로비스로 넘어간 모듈·AS 사업의 두 자릿 수 영업이익률이 앞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현대모비스(부품), 현대글로비스(물류) 두 회사의 매출 대부분은 현대·기아차와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현대·기아차가 성장해야 두 회사도 성장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현대·기아차의 실적은 2016년을 기점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이슈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판매량은 2016년보다 36% 줄었다.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순환출자 구조 해소안의 핵심은 현대모비스를 그룹 최상위 지배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도 높인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등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안이 완성되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모두 끊어진다. 순환출자는 A계열사가 B사 주식을, B사가 C사 주식을 갖고 있는데, C사가 다시 A사 주식을 보유한 지배구조를 말한다.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 탓에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는 지속적인 압박도 받았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분할 합병이 이뤄지면 정몽구 회장 부자(父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29.9%에서 15.8%로 떨어진다. 정 회장 부자는 이 지분도 모두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이 돈으로 기아차·현대제철·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한다.

이렇게 되면 정 회장 부자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30.2%(기존 정몽구 회장 6.96%, 정의선 부회장 지분 없음)를 보유하게 되고, 지배 구조는 ‘정몽구 회장 부자→현대모비스→현대차, 기아차 등 각사’로 단순화된다. 동시에 정의선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에 이어 현대모비스의 2대주주가 되면서 그룹 경영권 승계에 한발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 부자가 가진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기아차 등 계열사가 사들인다는 방침이다.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이 없기 때문에 현대글로비스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도 벗어난다.


엘리엇, 현대차 개편안에 반대할 수도

일각에선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분할 합병이 ‘기업 가치 제고’는 뒷전으로 하고, 정 회장 부자의 그룹 지배력 확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 회장 부자가 매입해야 할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떨어뜨리고, 팔아야 할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반기를 들었던 미국계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등장했다. 엘리엇은 4월 4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세부적인 중장기 계획이 비공개에 부쳐져 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내용을 보다 정확히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3개 회사의 10억달러(약 1조500억원) 상당에 달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2.2%(약 5700억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지분율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안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면 현대차그룹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은 48%에 달한다. 엘리엇이 ‘주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분할 합병에 이의를 제기하고, 외국인투자자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소액주주가 이에 동조하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