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에 있는 핑안 국제금융센터(가운데). 선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사진 오광진
중국 선전에 있는 핑안 국제금융센터(가운데). 선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사진 오광진

11월 6일 중국 핑안(平安)보험은 계열사 핑안자산관리공사가 블랙록을 제치고 HSBC의 최대주주가 됐다고 홍콩 증시에 공시했다. 경영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올해로 설립 30년 된 중국 금융사가 153년 된 글로벌 은행의 지분을 7.01%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른 건 덩치를 키우는 중국 금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만 해도 핑안의 최대주주는 HSBC였다. 지난해 시총 1조위안을 넘어선 핑안보험은 세계에서 시총이 가장 큰 보험사로 통한다.

‘포천’이 매출 기준으로 매기는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 2008년 462위로 처음 진입한 핑안은 올해 29위로 전년보다 10계단 올랐다. 중국 기업 중에서는 6번째고, 중국 금융사 중에서는 국유은행인 공상은행에 이어 두 번째다. 중국 민영기업 중에서는 매출이 가장 많은 곳이다. 중국의 3분기 경제 성장률이 6.5%로 2009년 1분기(6.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됐지만 핑안의 실적은 여전히 잘나간다. 올 들어 9월까지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7504억위안, 793억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13.2%와 19.7% 증가했다.


보험에서 증권, 은행으로

설립 첫해 13명의 직원은 180만 명으로 늘었다. 설립 자본금 4500만위안인 손해보험사(이하 손보사)는 은행과 증권을 아우르는 6조9109억위안의 자산을 가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창업자 마밍저(馬明哲) 회장은 ‘공화국 60년 중국 경제 60인’에 선정된 인물이다. 개혁·개방 1번지 선전에서도 가장 먼저 개혁·개방을 한 서커우공업구 책임자였던 위앤겅(袁庚)의 운전수였던 그는 위앤겅의 신임을 받아 사회보험 업무를 맡으면서 인생행로를 바꾸게 된다. 당시 손보사가 하나뿐인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자는 마밍저의 제안을 받아들인 위앤겅은 마밍저에게 설립 임무를 맡겼다. 공상은행과 서커우공업구 초상국으로부터 출자받아 1988년 설립됐다. 핑안은 1992년부터 종업원 지주제를 추진하는 식으로 준(準)MBO(경영자가 기업을 인수)를 했고, 이후 상장을 거치며 민영화됐다. 직원 모두가 주인인 지배구조를 만든 것이다.

지방 손보사로 출발한 핑안은 1992년 생명보험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전국구 보험사로 변신했다. 선전에 거래소가 생기는 데 맞춰 1991년 증권업에 뛰어든 핑안은 1996년 공상은행 계열 주장삼각주금융신탁을 인수하고 투자신탁업에도 진출했다. 2003년 푸젠야저우은행, 2006년 선전 상업은행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종합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마 회장은 “고객의 수요와 시장의 변화에 순응해야 생존하고, 지속 발전할 수 있다”며 “종합금융만이 갈 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고객에게 시간은 금이므로 원하는 서비스를 빨리 받기 원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핑안의 비전을 ‘한 고객, 한 계정, 여러 상품, 원스톱 서비스 제공 종합금융 서비스 플랫폼’으로 정한 배경이다.

마밍저의 도전은 종합금융에 머물지 않았다. 저명한 재경 작가 친숴(秦朔)는 마밍저를 보수적인 전통 금융기업을 현대적인 첨단기술 기업으로 이끈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리더라고 평한다. 그에게는 금융의 ‘미래 시제’라는 별칭도 붙어다닌다. 그의 핀테크 행보는 금융의 미래를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2013년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회장과 함께 중국 1호 온라인 보험사 종안(衆安)을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3마(馬)가 도원결의했다’고 전했다. 2012년 세운 P2P대출 플랫폼 루진숴(陸金所)는 중국 최대 온라인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부호 연구기관 후룬에 따르면 루진숴는 올 3분기 기준 기업 가치가 1000억위안으로 중국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5위에 해당한다.


마밍저 핑안보험그룹 회장.
마밍저 핑안보험그룹 회장.

핀테크, 플랫폼 생태계로 확장 중

핑안의 사업 모델은 종합금융에 이어 핀테크로, 이젠 플랫폼 생태계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작은 승리는 개인에게 달렸고, 중간 규모 승리는 기회를 잡아야 하지만, 큰 승리는 플랫폼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건강·자동차·부동산·스마트도시 등 5가지 생태계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고객의 5가지 생활 영역과 접점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여기엔 기술이 핵심이라는 인식이 있다. “기술이 금융과 생태계를 키우고, 생태계가 다시 금융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핑안의 연구 인력이 2만3000명을 넘고, 빅데이터 전문가가 500명에 이를 만큼 기술을 중시하는 이유다.

마 회장은 과거 전통적인 금융 모델은 먼저 금융 상품을 팔고 서비스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간다고 얘기한다. 올해 5월 홍콩 증시에 상장한 핑안하오이성(平安好醫生)을 중국 최대 모바일 건강의료 플랫폼으로 키운 배경이다. 하오이성은 11월 7일 중국에서 개막한 세계인터넷대회에 처음으로 상용 수준의 무료 진료소를 선보였다. 원격으로 간단한 진료를 받은 뒤 자판기로 필요한 약을 공급받는다. 올해 말까지 학교, 기업, 쇼핑센터 등에 1000여 개를 깐다는 계획이다.

중학교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마 회장이지만 일하면서 중난재경대 화폐은행학 박사학위를 받고, 난카이(南)대에서 박사지도교수를 겸직할 만큼 학습 열정이 대단하다. “어제의 마밍저는 오늘의 핑안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Plus Point

국제화는 인재 흡수하는 통로

“서양 고양이든, 중국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를 본뜬 이 말에서 마밍저 핑안보험그룹 회장의 인재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핑안은 1994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중국에서 가장 먼저 외자를 받아들인 금융회사가 됐다. 마 회장에게 국제화는 해외 시장을 뚫기보다는 해외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재의 선진 경험 흡수다.

싱가포르 국적의 리위앤상(李源祥) 핑안그룹 수석보험집행관은 지난 9월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사업에 공헌한 외국 전문가에게 주는 최고 표창인 ‘2018년 중국 정부 우호 표창’을 받았다. 그는 핑안에서 이 표창을 받은 네 번째 인재다. 중국이 지금까지 이 표창을 준 4명의 금융권 인사 모두 핑안에서 일했다.

핑안은 1996년부터 수년 내 50여 명에 이르는 고위급 해외 인재를 영입할 만큼 공을 들였다. 현재 핑안그룹의 임원 100명 가운데 국제화 인재가 6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을 비롯 미국·캐나다·싱가포르·브라질 등지의 맥킨지·골드만삭스·HSBC·시티은행·이베이·알리바바·화웨이 등 중국 안팎의 일류 기업 출신이다. 마 회장은 낙하산이 좋은 이유로 업무 개발과 투자 수익 제고 및 리스크 방지에 실력을 발휘하고, 국제 수준의 경영 제도를 접하게 하고, 중국 인재를 양성하는 등 세 가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재 영입에 보수를 아끼지 않는다. 마 회장의 유명한 ‘다리(橋)론’이 이를 설명한다. “강 위에 다리가 있으면 돈을 내고 건너면 된다. 왜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을 투입하면서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나.” 그에게 핑안을 미래로 이끌어줄 다리는 인재인 것이다. 인재에게 보수만 많이 주는 게 아니다. 권한도 확실히 부여한다. 하루 13~15시간 일하는 일벌레로 알려진 마 회장이지만 경영 일반을 챙기는 건 아니다. “당신은 손이 두 개인데 핑안의 20개가 넘는 자회사를 어떻게 챙길 수 있냐”는 물음에 “내 두 손은 늘 비어 있다. 2~3년 후에 할 일만 책임진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그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