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크하는 마이클 조던. 사진 나이키
덩크하는 마이클 조던. 사진 나이키

5월 17일(현지시각) 열린 소더비 온라인 경매에서 미국프로농구(NBA)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이 신었던 ‘나이키 에어 조던 1’이 56만달러(약 6억9000만원)에 팔리며 운동화 경매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는 애초 예상치의 세 배가 넘는 가격이다. 경매가가 높아진 이유는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과 넷플릭스가 공동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덕분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1990년대 황금기를 다룬 이 다큐는 넷플릭스에서 1회당 평균 13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동원하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때아닌 스포츠 붐을 이끌었다.

덩달아 나이키도 웃었다. 미국에서 다큐가 처음 상영된 4월 19일, 운동화 중고 거래 플랫폼 스톡엑스(Stock X)에서는 에어 조던 운동화 판매가 90% 급증했고, 조던 브랜드 전체 판매량도 40% 증가했다. 다큐 방영 전 평균 3000달러(약 360만원) 수준이던 에어 조던 가격이 현재 7000달러(약 840만원)를 호가한다. 다큐 방영 다음 날인 4월 20일에는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서 조던의 소속 팀이었던 시카고 불스 관련 제품의 하루 판매량이 4월 초와 비교해 5156% 급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4월 미국 소매 판매가 전월 대비 16% 감소한 걸 고려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마이클 조던이 1985년 신은‘에어 조던 1’,최근 소더비 경매에서 운동화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진 소더비
마이클 조던이 1985년 신은‘에어 조던 1’,최근 소더비 경매에서 운동화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진 소더비

운동화 문화 촉발한 ‘에어 조던’

나이키와 조던의 협업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키는 당시 NBA 신인이었던 마이클 조던과 후원 계약을 했다. 평소 아디다스를 즐겨 신던 조던은 이 계약을 썩 내켜 하지 않았지만, “나이키에도 기회를 줘라”는 어머니의 말에 마지못해 나이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듬해 나이키는 조던의 이름을 딴 농구화 에어 조던 1을 출시했고, 그해 1억달러(약 1200억원)가 넘는 매출을 거뒀다. 에어 조던 1은 특정 선수의 이름을 딴 최초의 운동화로, 오늘날 운동화 문화를 촉발한 신발로 기록됐다.

이후 조던은 NBA 스타로 성장했고, 나이키는 조던이 덩크하는 모습을 본떠 ‘점프맨’ 로고를 만들고 에어 조던 후속 모델을 출시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1997년에는 ‘조던 브랜드(Jordan Brand)’라는 자회사로 분사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나이키가 1984년부터 지금까지 마이클 조던에게 인세로 지불한 비용은 총 13억달러(약 1조5613억원)로 추산된다.

처음 조던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브랜드였던 나이키는 35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패션 브랜드를 통틀어 가장 인기 높은 브랜드가 됐다. 나이키는 최근 영국 컨설팅 회사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한 ‘올해의 가장 가치 있는 의류 브랜드 순위’에서 구찌·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를 제치고 6년 연속 1위 자리에 올랐다. 브랜드 파이낸스가 매긴 올해 나이키의 가치는 전년보다 7.3% 증가한 347억9200만달러(약 41조7851억원)로, 동종 업계 라이벌인 아디다스의 두 배가 넘는다.


NBA 현역 시절의 마이클 조던. 사진 넷플릭스
NBA 현역 시절의 마이클 조던. 사진 넷플릭스

한정판 협업으로 정체성 계승

에어 조던이 늘 잘나간 건 아니었다. 2016년 무렵 스포츠화 대신 패션화가 유행하자 에어 조던은 아디다스의 복고풍 운동화 슈퍼스타에 밀려 점유율이 하락했다. 이에 조던 브랜드는 운동화 공급량을 늘려 줄어든 수요를 만회하려 했지만, 고객의 피로감만 북돋는 결과를 초래했다. 급기야 그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신발 순위 10’에서 빠지는 굴욕을 겪었다. 이에 회사는 전체 상품 수를 줄이고 여성용 모델을 늘렸다. 그리고 버질 아블로, 트래비스 스콧 등 동시대 스타들과 협업하며 브랜드 유산을 계승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명품 디오르와 협업한 운동화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아직 발매 전이지만, 이미 리셀(재판매) 시장에선 구매 대기자 명단이 만들어질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조던 마니아’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먼저 마이클 조던의 NBA 현역 시절을 목격한 30~40대 소비자다. 이들은 에어 조던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수집하며 유년 시절의 향수를 추억한다. 다른 집단은 대중문화로 조던을 습득한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다. 간혹 NBA도 마이클 조던의 활약상도 모르는 젊은이도 있지만, 지드래곤(GD)과 빌리 아이리시 등 팝 가수가 즐기는 패션으로 에어 조던은 추앙된다. 이들은 중고 시장에 제품을 사고팔며 한정판의 묘미를 즐긴다. 


발매를 앞둔 ‘디오르×에어 조던 1’. 사진 디오르
발매를 앞둔 ‘디오르×에어 조던 1’. 사진 디오르
5월 30일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 문을 연 ‘조던 서울’. 사진 나이키
5월 30일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 문을 연 ‘조던 서울’. 사진 나이키

나이키 가치 높이는 조던 브랜드

조던 브랜드는 2019 회계연도 2분기(9~ 11월)에 매출 10억달러(약 1조2010억원)를 거두며 새 이정표를 썼다. 나이키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조던은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애플스토어와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처럼,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브랜드 경험을 특화한 매장을 개설해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고 있다. 5월 30일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 단독 매장 ‘조던 서울’을 연 것도 그 일환이다. 조던 마니아들은 이곳을 ‘성지’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조던 매장은 마이클 조던의 승인을 받아야만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장 한 달도 안 된 이 매장은 주말이면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할 만큼 명소가 됐다.

마이클 조던은 6월 5일 조던 브랜드와 함께 인종차별 근절을 위해 앞으로 10년간 1억달러(약 1200억원)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스포츠 스타 기부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현지에선 ‘영웅’이라는 찬사도 나온다. 일각에선 그동안 나이키가 인종·성별·종교 등 다양성에 관심을 가져온 만큼, 또 한 번의 시너지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