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의 연구원이 바이오의약품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 : 셀트리온>
셀트리온의 연구원이 바이오의약품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 :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최초로 시장에 진입한 ‘퍼스트 바이오시밀러’가 시장을 장악하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진입하기 힘들다. 셀트리온의 류머티즘 치료용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최초로 유럽 시장에 진입해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램시마는 미국 존슨앤드존슨 계열 제약사 얀센의 류머티즘관절염·자가면역질환약 ‘레미케이드’를 복제한 제품이다. 레미케이드는 미국에서만 한 해 5조원 이상이 팔리고 있다.


2명이었던 인력 1100명으로 늘어

램시마는 유럽에서 출시 2년 만에 레미케이드 시장의 42%를 점유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에선 올 상반기 217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경쟁사 제품은 내년 정도에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이 1년 이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48%씩 성장해 239억달러(약 26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톱 10 블록버스터 의약품 중 바이오의약품이 7종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점유율도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급성장에 따라 셀트리온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셀트리온은 2분기 매출 2461억원, 영업이익 138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33%, 영업이익은 79.4% 증가한 것이다. 2002년 셀트리온 창사 이래 분기 최대 실적이다.


인천 송도에 있는 셀트리온 제 1공장 전경. <사진 : 셀트리온>
인천 송도에 있는 셀트리온 제 1공장 전경. <사진 : 셀트리온>

램시마 등 고부가 바이오시밀러 3종 개발

셀트리온은 발 빠른 투자와 제품 개발을 통해 항체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 버전을 개발해냈다. ‘항체의약품 바이오시밀러 개발’이라는 성과가 지닌 의미는 크다. 항체의약품이 갖는 시장에서의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항체의약품 1종의 시장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정도다. 제대로 된 제품 하나만 있어도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다. 최근 10년 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 10종 중 7종이 항체의약품일 정도로 전 세계 제약 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셀트리온은 과감한 도전과 혁신의지로 불모지와도 같았던 바이오의약품 업계에 새로운 길을 만들며 시장을 선도해왔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는 2012년 7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품 허가를 획득했다. 2013년 8월에는 유럽의약품청(EMA), 지난해 4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제품 허가를 받았다. 램시마는 현재 세계 8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셀트리온의 두 번째 제품인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는 한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허가 절차에 들어갔으며, 세 번째 제품인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는 지난해 10월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올 2월 EMA의 판매 허가를 받았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뿐 아니라 자체 바이오신약 연구·개발(R&D) 역량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획기적인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개발 중인 종합독감항체 치료제 신약이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간염 및 광견병 같은 각종 감염성 질환에 대한 치료제 및 백신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바이오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셀트리온의 R&D 투자액은 매출의 40%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2630억원을 R&D에 쏟아부었다. 상장 제약 기업 중 가장 많은 R&D 투자액이다.

셀트리온은 인천 송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최첨단 항체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2000년 창업 당시 2명으로 시작한 인력은 현재 1100여 명으로 늘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다시 한 번 대규모 생산 설비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3공장 신설과 1공장 증설을 위해 약 325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램시마 판매량 증가와 트룩시마·허쥬마 등의 생산량 증가, 향후 계획한 신제품 개발에 따른 생산 능력 확보를 위한 선제적 투자다.

셀트리온은 2000년 새해 첫날 서정진 회장의 사업 구상을 통해 탄생했다. 대우그룹 해체로 실업자가 된 서 회장은 창업 멤버들과 인천 연수구청 벤처센터에 넥솔을 설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바이오의약품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서 회장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생명공학 분야의 미래가 밝다는 판단에 따라 2002년 2월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서 회장은 KT&G 등으로부터 투자받아 간척 사업 중이던 인천 송도신도시에 9만2958㎡(약 2만8000평)의 공장 부지를 매입했다.

2002년 6월 글로벌 제약사 제넨텍의 자회사인 백스젠과 함께 VCI(VaxGen-Celltrion Incorporation)를 설립하고, 이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했다. 서 회장은 초기에 선발한 직원들을 VCI에 파견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및 품질관리 노하우를 익히도록 했다. VCI는 사업 초기 1공장 가동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술연수원 역할을 했다.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생산시설. <사진 : 셀트리온>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생산시설. <사진 : 셀트리온>

임상시험 실패 위기 대규모 투자로 극복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2004년 첫 위기가 닥쳤다. 에이즈 백신 개발 프로젝트의 3상 임상시험이 모두 실패하면서 셀트리온의 생산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출범 이후 최대 위기였지만 서 회장은 오히려 승부수를 던졌다. 1공장과 2공장 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이다. 제약 회사들은 보통 연구·개발을 먼저 시작해 개발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고 이후 판매량을 늘려가면서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셀트리온은 먼저 생산 설비를 갖춘 후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 사업을 통해 선진 기술을 익히고 노하우를 축적, 의약품 개발에 나서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역발상 전략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 꿈은 현실로 이뤄졌다. 셀트리온은 2005년 6월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판매하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과 CMO 계약을 하는 데 성공했다.

셀트리온은 2005년 7월 5만ℓ 규모의 1공장을 준공하는 한편 2006년 9만ℓ 규모의 2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BMS가 셀트리온을 선택했던 이유는 공장을 설계할 때부터 까다로운 글로벌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 세계 수준의 생산 설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셀트리온은 품질관리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신뢰를 쌓았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7년 셀트리온은 갓 생산한 바이오의약품을 쌓아놓고 고민에 빠졌다. 품질 기준에 이상이 없는 멀쩡한 약품이었지만 생산공정에서 오염 발생 가능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완벽하게 오염원을 통제한 환경에서 세포를 배양한 후 생산한다. 이 과정에선 어떤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셀트리온은 생산한 제품 전량을 폐기했다.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지만 셀트리온은 이를 계기로 고객에게 높은 신뢰를 쌓을 수 있었으며, 그해 12월 아시아 최초로 미국 FDA의 설비 승인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와 트룩시마, 허쥬마로 이어지는 제품군과 다양한 신약 개발을 통해 ‘글로벌 톱 10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전을 실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매출액 8604억원, 영업이익 4886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트룩시마와 허쥬마의 본격적인 상업 판매가 예상되는 2~3년 내에 3조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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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 의약품 바이오의약품은 크게 항체 의약품, 단백질 의약품, 천연물 의약품, 세포 치료제 등으로 나뉜다. 항체 의약품은 유전자공학 기술을 활용해 만든 항체를 활용해 질병의 원인 물질만 표적 치료한다. 질병 원인 물질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효과가 우수하고 부작용은 적다.
항체 바이오시밀러 특허가 만료된 인기 약을 효과가 똑같게 제조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을 말한다. 오리지널 약품과 효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Plus Point

시가총액 5조원 셀트리온헬스케어

7월 28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공모가는 4만1000원으로 총 공모액 규모만 1조88억원에 이른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예상 시가총액은 공모가 기준 5조6000억원이다. 상장하자마자 현재 코스닥 시총 2위 기업인 메디톡스(27일 기준 시총 약 3조6000억원)를 밀어내고, 1위인 셀트리온에 뒤이은 2위로 뛰어올랐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시가총액 합계는 약 20조원에 이른다. 셀트리온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서정진 회장이며, 서 회장은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 44.12%를 가진 최대주주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1999년 설립된 의약품 도소매 업체다. 셀트리온이 생산한 램시마, 트룩시마 등의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독점 판매권과 글로벌 영업망을 갖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은 2014년 2000억원 정도에서 2015년 4000억원을 넘기더니 지난해 7000억원대를 기록했다.

Plus Point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바이오 의약품 높은 진입 장벽 잇단 승부수로 돌파

장시형 부장대우

“남의 것만 계속 만들 것인가, 아니면 내 것을 만들 것인가.” 창업 때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뒀던 서정진 회장은 2009년 두각을 보이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 대신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2세대 항체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은 1세대 단백질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분자구조가 복잡해 고도의 바이오 기술이 없으면 개발하기 어렵다. 또 막대한 글로벌 임상 비용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국가에 바이오시밀러 허가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러모로 불확실성이 큰 분야였다. 바이오시밀러의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생명공학 분야에서 낮은 기업 인지도, 까다로운 임상 환자 모집 등 수많은 난제로 글로벌 임상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취미는 일 자체를 즐기는 것”

서 회장은 전사적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임상 환자 모집의 난제를 하나씩 직접 해결했다. 임상 1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아이디어로 임상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한편 보다 참신하고 효율적인 임상 설계 전략을 수립하는 데 힘썼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전념하면서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투자도 그중 하나였다. 테마섹은 2010년 셀트리온에 2080억원을 투자했다. 결국 램시마와 허쥬마의 글로벌 임상시험은 유럽·브라질·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서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한국의 생명공학 회사가 글로벌 임상을 완수한 것은 셀트리온이 처음이었다.

서 회장이 셀트리온을 창업할 때만 해도 바이오의약품에 문외한이었다.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기와 한국생산성본부 등을 거쳐 대우자동차 임원을 끝으로 1999년 샐러리맨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2000년 회사를 함께 그만둔 동료들과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설립하고 바이오의약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바이오의약품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2년을 보냈다. 미국의 바이오의약품 벤처 기업과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다. 그 당시 많은 한국의 바이오의약품 기업처럼 줄기세포나 신약 개발에 뛰어들다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 회장은 연구와 신약 개발 단계를 생략하고 기술 진입 장벽은 높지만, 진입하면 안정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한 생산 부문에 먼저 뛰어들었다. 최근 셀트리온의 급성장을 보면 그의 전략은 적중한 셈이다.

그는 의사 결정을 할 땐 장고를 거듭하는 섬세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취미가 해외 출장이라고 밝힐 만큼 일 그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회장이 된 후 배운 그의 골프 실력은 90대 후반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