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연간 350만 톤의 폐플라스틱(재활용품으로 분리 수거되는 플라스틱 제외)이 발생한다(2003년 기준). 그 중 47%가 소각, 26%가 매립되고, 재활용 비율은 채 30%가 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소각·매립 단계에서 지역주민 및 환경단체와의 마찰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표적인 공해물질인 다이옥신 배출의 주원인이 바로 폐플라스틱을 태울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성진 씨(54)가 대표로 있는 한국파이로(주)가 2004년 개발에 성공, 특허와 함께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기업 지위를 획득한 ‘스크류 타입 열분해 유화 설비’는 이 같은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설비는 밥그릇 모양의 커다란 용광로 안에 폐플라스틱을 넣은 다음 열을 가해 연료를 추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단 처리가 끝나면 불을 끄고, 찌꺼기를 제거한 다음, 다시 불을 지펴야 했죠. 재활용의 취지엔 맞지만 처리 용량과 경제성은 형편없었습니다. 이번에 특허를 내고 저희가 제작한 스크류 방식은 그런 면에서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리 공정이 24시간 풀가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일체 공해 없이 폐플라스틱을 100% 연료로 재생할 수 있게 한 겁니다.”

 1일 12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설비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파이로의 스크류 열분해 유화 기기가 상용화될 경우 에너지 측면에서만 연간 2억8000만 달러의 원유 수입 대체 효과(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자료)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김 사장과 한국파이로 관계자들은 1일 처리량 12톤 규모의 상용화 설비 제작에 밤낮을 잊고 매달려 있다. 1개 기기에서 3600톤의 폐플라스틱을 재처리해 198만 리터의 기름을 연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순 매립되는 폐플라스틱 전량(약 120만 톤, 2003년 기준)을 저희 기기를 통해 처리할 경우 약 415만 배럴의 정제유를 생산할 수 있어 약 1억6000만 달러(배럴당 40달러 기준)의 석유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제유는 가정용 보일러 등에 쓰이는 등유와 벙커유 중간급 정도 됩니다. 따라서 산업용은 물론, 가정용으로도 충분히 사용 가능합니다.”

 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인 재활용 분담금을 재활용업체에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플라스틱리사이클링협회도 한국파이로 설비의 우수성을 인정, 오는 4월 안성 재활용시범단지에 폐플라스틱 재처리 시범 설비를 설치하기로 했다. 분리 수거가 정착됨에 따라 생활쓰레기 중 소각, 매립의 주요 처리 항목으로 떠오른 폐비닐, 폐플라스틱 처리에 있어 김 사장의 ‘한국파이로’가 문제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김 사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사라진 대표적인 그룹 중 하나인 한라그룹에서 회장 비서실장, 영국 법인 대표이사, 한라시멘트 부사장 등을 역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라시멘트의 해외 매각 협상을 담당했던 그는 24년간 몸담았던 한라그룹을 나왔다.

 “정든 회사에서 나오면서 다짐한 게 있습니다. ‘사업을 해 돈을 벌더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거죠. 돈 많이 벌면 좋지만, 후손들에게 뭔가 좋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 거죠. 이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통할 거라 보기 때문에 환경 관련 설비가 해외에도 수출되는 것이 사업가로서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