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정부 모두 미래의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동력 찾기가 유행이다. 최근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는 ‘네트워크를 연계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를 집중 지원, 육성하기로 했다. 10년 전부터 한국형 휴머노이드 개발에 힘써 온 유범재 KIST 인공지능로봇센터장(40)을 만났다.



어린시절 인기만화 ‘마징가’, 학부시절 주제가로 묘한 인연 맺어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늦은 단풍잎을 떨어뜨리는 홍릉 숲 속의 늦은 오후. 만추의 정경이 물씬 풍겨 나는 바깥 풍경과는 달리, L1건물 4층에 위치한 인공지능로봇연구센터에서는 연구원 5~6명이 연말 공개를 앞둔 로봇 제작에 여념이 없다.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기능을 흉내 낸 기술) 로봇 하면 지난 2001년 일본 혼다사에서 개발한 아시모를 떠올리죠. 아직 미공개 상태라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와, 우리나라도 저런 로봇을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놀라게 해 드릴 자신이 있는, 그런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작 중이던 로봇의 여러 부위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회의용 테이블과 나사와 너트, 볼트, 각종 케이블이 한쪽 벽면을 차지한 채 진열된 제작소 안 풍경은 흡사 ‘철공소’다. 인공지능로봇연구센터에는 유 박사를 팀장으로 7명의 선임 연구원과 연구를 도와주는 대학원생들을 포함해 모두 30여 명이 로봇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로봇 제작 방향은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입니다. 인공 지능 부문은 미국이, 휴머노이드 기술은 일본이 가장 앞서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최대 강점인 IT 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로봇에 접목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잡고 있어요. 적어도 이 부문만큼은 미국, 일본도 시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도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정부도 로봇 산업의 미래 가치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한 상태. 정통부와 산자부, 과기부가 협력해 로봇 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선정해 12년 장기 계획을 세우고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유 팀장은 ‘10년간의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 끝난 셈’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로봇 관련 정부 지원과 정책은 지난 1990년대 초반 이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에서 이어져 왔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산업용 로봇 개발에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투자가 이어져 한국 로봇 산업에 큰 발전을 가져왔지만 이후 산업 로봇 시장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자 정부의 지원과 정책의 규모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유 팀장은 ‘춥고 배고픈 시절’에 로봇공학에 뛰어든 차세대인 셈이다.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로봇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94년. KIST에서 인공지능 로봇 개발 프로젝트 팀원으로 그를 부른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벤처 산업에 투신 ‘터보테크’라는 벤처회사에서 3년간 근무했던 그는 로봇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인공 시각 기술’을 담당했다.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학부 시절 재료공학과의 주제가가 ‘마징가 Z’라는 만화영화 주제가였어요.(웃음) 공교롭게도 제가 어릴 적 가장 인기 있던 만화 영화도 ‘마징가 Z’였죠. 청소년기나 대학 진학을 할 때만 해도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전자공학과 갈 점수가 안 되서 차선책으로 전공을 선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나도 두아이의 아버지, 돈 많이 버는 사람 부러울때도”

 학교와 벤처 기업을 거쳐 연구소에서 로봇을 만드는 일은 유 박사에겐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비록 이전처럼 자금이나 정책적인 지원이 풍부하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로봇을 만드는 작업은 마치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은 희열,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상체는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하체는 바퀴를 단 ‘센토’, 미모트(MIMOT), 진공 청소 기능과 음성 인식이 가능한 로봇 ‘아이작’, ‘KHR-1’, ‘KHR-2’와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그가 지난 10년간 참여해 만들어 온 작품들이다.

 “가끔은 다른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죠. 저도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요. 그렇지만 과학자로서 새로운 부문에 계속 도전하고, 그래서 뭔가를 이뤘을 때의 희열감이 10년 동안 로봇에 매달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10년째라는 것도 몰랐다가 얼마 전 아내와 얘기하다가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하고 실감했어요.”

 잡념이 들 땐 주어진 연구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것으로 잊곤 했다는 유범재 박사. 로봇 하나에 매달리게 된 가장 큰 이유를 그는 ‘꿈과 희망을 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산업용 로봇 부문을 빼고 로봇공학은 아직 산업이라 말할 수 없죠. 그렇지만 새로운 첨단 기술이 모여 새로운 로봇을 제작했을 때 일반인들, 특히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휴머노이드 기술 일본보다 뒤졌지만 격차 크게 줄어

 로봇공학은 첨단의 과학 기술이 종합돼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동차 공학과 닮았다. 또 산업화에 성공했을 경우 유관 산업에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도 닮았다. 정부가 로봇 산업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데에는 이 같은 요소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2010년 가정용 로봇시장이 4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을 연구하고 개발해 왔고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산업으로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은 순수하게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라는, 과학 본연의 목적에 더 충실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국책 사업으로 선정된 이상, 앞으로의 연구 개발의 목적도 산업 개발이라는 측면에 맞춰져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무척 큽니다.”

 최근 일본이 반도체와 첨단 영상 기술 관련 부문에서 한국의 삼성, LG 등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은 로봇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유 팀장에게도 부쩍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한 수 아래라고 낮춰 보았던 한국이 대등한 경쟁자 위치로 올라서자 일본 당국과 관련 업체가 본격적인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인데, 휴머노이드 분야에도 머지않아 닥쳐올 상황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허 전문가, 정부 담당자와도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가 정한 방향(네트워크 기술을 통한 휴머노이드)만큼은 일본도 시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자체가 세계 표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연구원 모두가 책임감도 느끼지만 어느 때보다 도전 의욕이 넘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이 일본보다 한 발 뒤진 상태라는 점은 유 박사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격차가 이미 상당히 줄어들었고, 응용 기술에 관한 한 자신이 있다고 단언한다.

 “일본의 경우 30년 전부터 대기업에서 수익성과 상관없이 연구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 왔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아시모’ 같은 경우도 일본 혼다사가 15년에 걸쳐 수천억원의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들인 끝에 완성시킨 작품입니다. 한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역사는 고작 10년에 수억원의 개발비로 이끌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기술 수준의 격차는 별로 크지 않고, 저희 연구원 모두 자신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 볼 만합니다.”



12월 첨단 휴머노이드 로봇 ‘KHR-3’ 선보일 계획

 유 박사와 그의 연구팀은 12월 첨단의 휴머노이드 로봇(가칭 KHR-3)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네트워크 기반을 활용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연구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문제는 로봇 제작에 들어가는 제작비를 어떻게 낮추느냐 하는 점입니다.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 여부가 바로 여기 달려 있기 때문이죠. 하루라도 빨리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그러자면 별 수 없이 한동안은 새벽 별 보기 운동을 계속 해야겠죠.(웃음)”

 밤 10시가 넘은 시각, 저녁 식사를 겸한 인터뷰를 마친 유박사는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근처 경희대 앞에 가서 야식이라도 사 가지고 가야겠다. 연구원들에게 먹는 것 잘 챙겨 주는 것이 진짜 가장 큰 임무”라는 농담과 함께 그는 차에 올랐다. 한국 로봇 산업의 미래를 짊어진 과학자들은 오늘도 밤을 하얗게 밝힐 것이다.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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