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이 롯데 경영의 전면에 본격 나섰다.지난 10월4일, 롯데그룹은 신동빈(49세) 부회장을 호텔롯데 정책본부장에 임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 부회장의 이번 호텔롯데 정책본부장 선임은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체제,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체제’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번 인사가 ‘사실상 신동빈 체제 출범’이라 불리는 이유는 김병일 호텔롯데 사장이 정책본부 부본부장에 ,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이 국제부문 담당에 선임된 것에서 비롯한다. 롯데그룹 최고의 재무 전문가로 꼽히는 김병일 사장과 신격호 회장의 5촌 조카로 그룹의 궂은일을 도맡아 신 회장의 총애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신동인 사장을 신 부회장의 좌우에 포진한 것이다.



 “신격호 회장 아직 10년은 더할 것”

 이번 인사와 관련해 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책본부가) 전반적인 그룹의 방향을 잡아가는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라는 말로, 그룹 운영의 상당한 권한이 신동빈 회장에게로 갈 것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이 롯데의 미래를 언제,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관심은 삼성, 현대 등 한국의 대표적 그룹들이 2세, 3세 경영 체제로 전환되면서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재계에서는 장남 신동주씨가 일본 롯데를, 차남 신동빈씨가 한국 롯데를 맡는 것으로 일찌감치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창업주인 신 회장 본인을 통해서나, 장본인들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2001년 초 <월간 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신 회장은 ‘차기 구도’에 대한 질문에 “내가 아직 10년은 더 할 것”이라는 뼈 있는 농담으로 응수한 바 있다.

 현재 롯데그룹 부회장이라는 직함과 (주)롯데닷컴, (주)롯데제과, 호남석유화학(주) 공동 대표이사에 올라 있는 신 부회장은 지난 9월 말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길에도 롯데그룹을 대표해 수행했다. 수행 중 기자들과 만난 신 부회장은 “향후 저성장 기조가 예상됨에 따라 회사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롯데는 중화학 분야를 새로운 주력 사업으로 키워 궁극적으로 기존의 유통 부문과 함께 양대 수익 구조로 갈 것”이라고 사업 방향을 밝혔다. 또 그는 부친인 신격호 회장의 숙원 사업인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 계획의 재추진 의사도 분명히 했다. 신 회장의 전폭적인 권한 부여가 없이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지난 추석 즈음에 이번 정책본부장 인사가 결정되었던 것 같다”고 전해 인사가 있기 전 이미 상당한 권한을 넘겨받았음을 시사했다.

 1955년 2월14일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신동빈 부회장은 1977년 일본 아오야마(청산)학원대학 경제학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콜롬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인 1981년 노무라증권에 입사한 그는 런던지점에서 1988년까지 근무했다. “젊은 시절 남의 회사에 근무하며 경험과 겸손함을 배우라는 신 회장의 교육관이 작용한 결과”라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신 부회장이 롯데그룹에 첫 발을 디딘 건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2년 뒤인 1990년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를 맡으며 한국과 본격 인연을 맺기 시작한 신 부회장은 1995년 (주)코리아세븐의 부사장을 맡아 국내에 편의점 바람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신 부회장은 롯데의 신규 사업 부문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해 2000년 이후에는 롯데닷컴의 대표이사를 맡아 롯데그룹의 IT사업 진출을 시도하는 한편, 전경련 부회장을 맡는 등 대외 활동에도 의욕을 보여 왔다.



 11월 께 정책본부 구성

 신 부회장은 해외 유학과 국제 금융회사 근무 경력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이력이 말해 주듯 ‘언제나 단정한 차림에, 대하는 사람 누구에게도 언제나 경어(敬語)를 쓰는 신사’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부친의 영향도 커서 “일본을 오갈 때에도 따로 수행 비서를 대동하지 않기 예사이고, 운전도 손수 하는 소탈한 면도 함께 지녔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또 “여느 집안의 둘째아들들이 대개 그렇듯 비교적 활달한 성품의 소유자로, 골프를 비롯해 다양한 운동을 두루 즐기는 면도 있다”고.

 1985년 6월 일본의 귀족 가문 출신인 오고 마나미씨와 결혼한 신 부회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신 부회장의 결혼은 당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크게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신붓감이 일본 왕세자비 후보로도 올랐다’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돌았을 만큼 일본 귀족 집안과의 혼인이라는 점도 그러했지만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주례를, 나카소네 당시 총리가 축사를 해 일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결혼이었던 것. 이 같은 신 부회장의 결혼은 장남인 신동주씨가 동생보다 7년 늦은 1992년 3월 잠실 롯데월드예식장에서 재미동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딸 은주씨와 가까운 친지들만 모인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던 점에서 여러모로 대조를 이룬다. 현재 신 부회장의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의 자택에 살고 있고, 신 부회장은 한국에도 따로 거처를 마련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정책본부장 선임 인사가 발표되었을 때 신 부회장은 부친인 신격호 회장과 함께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 인사 발표가 난 뒤 롯데그룹을 찾았을 때에도 신 부회장은 국내에 없었다. 그룹 관계자는 “아직 일본에 계시기 때문에 정책본부의 구성과 본격적인 가동은 11월쯤 가능하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한국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선장으로 새로 취임한 신동빈 부회장의 11월 이후 행보에 부쩍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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