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의 조직은 성장을 원합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성장을 하지 못하면 곧 정체되고 소멸합니다. 세계적 초일류기업을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GE크로톤빌(경영자 양성을 위한 연수시설)에서도 부단히 강조하는 것이 바로 ‘성장’입니다. GE크로톤빌의 코코란 원장은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성장은 기업의 심장(heart)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업이든 조직이든 성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고대 최고의 제국이라는 로마의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는 일본 작가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토대로 제 나름의 시각으로 로마 성장의 요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로마가 작은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3대 요소는 ‘개방성’, ‘실패에 대한 관용’ 그리고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이었습니다. 



 로마장군, 전쟁에 패해도 목숨 유지

 개방성은 ‘순수혈통’을 자랑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능력이 있으면 로마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줬다는 것입니다. 노예 출신도 다음 대에 가면 로마시민이 될 수 있었고, 이들이 로마에 상층부로 진입할 기회도 충분히 제공됐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의 ‘아테네’가 ‘핏줄’에만 집착하면서 시민권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던 점과는 대조적입니다. 로마시민권에 대한 개방성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순혈주의’의 포기와 ‘혼혈주의’의 채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메기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건희 삼성회장이 예로 들면서 회자되었습니다. 결론은 미꾸라지만 있을 때보다 미꾸라지가 있는 곳에 메기가 들어오면 메기를 피하려고 미꾸라지가 버둥거리다 강해진다는 것이 교훈입니다. 기업에도 동일한 종류의 사람이 같은 문화 속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외부에서 유능한 사람들이 들어오면 ‘길들이기’를 하면서 견제를 합니다. 결국 유능한 인재는 떠나가고 남는 것은 마치 수많은 복제인간뿐입니다. 이런 기업은 결국 외부의 변 화를 내부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됩니다.

 몇 년 전에 나온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보면 로마의 대장군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는 스페인 출신입니다. 그의 조상이 로마 순수혈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로마의 식민지였던 스페인에서 성장한 막시무스가 그 정도의 지위에 오른 것은 다양성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한 로마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실패에 대한 관용은 로마 지도자를 객관적이고 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로마군단의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전쟁에 패한 경우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패했다고 목숨을 잃는 로마의 장군은 없었습니다.

 전쟁에 패한 장수는 스스로 ‘패전’을 불명예스럽게 여기고 왜 패했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른바 ‘실패학’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나라에서는 장수가 패전을 하면 대왕이 곧바로 목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실패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는 인재를 보유한 로마와 실패를 문책으로만 마무리 짓는 다른 나라와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2004년에 개봉된 영화 <알렉산더>(콜린 파렐 주연)를 보면 동방의 대군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전쟁에서 패한 뒤 단칼에 장수를 없애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니발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도 젊은 날에 한니발에게 격파돼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작은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한니발이 구사하는 기병 위주의 전투를 철저하게 연구, 나중에 한니발을 격파합니다.

 IBM을 컴퓨터산업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토마스 왓슨 2세의 일화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IBM에서 수백만달러의 경비가 소요되는 실험을 하다 실패한 적이있습니다. 그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CEO인 왓슨 2세가 그들을 불렀습니다. 이들은 곧 잘릴 것이라는 통보를 받을 것이라고 각오를 했는데, 의외로 왓슨 2세는 이들을 격려하면서 다른 연구에서 꼭 성공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날린 수백만달러는 당신들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했답니다. 왓슨 2세 재임기간 중 IBM은 세계 최대의 컴퓨터기업으로 성공했습니다.



 최고 권력기관 원로원도 군사령관에 작전위임

 세 번째는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입니다. ‘조직 운영에서 결정을 누가 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각 회사별로 위임 전결 규정이라는 것을 두고 있습니다. 결정을 해야 될 상황과 비용, 리스크에 따라서 누가 결정권을 행사할 것인지를 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권을 지위와 직책 등에 맞게 배분하고 짧은 시간에 의사결정이 이뤄지며, 상황에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부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면서기 같은 시장’이라는 비판은 결정권이 지위와 직책에 맞지 않게 행사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또 대리-과장-부장-이사-전담 임원-부사장-사장 등으로 올라가는 의사결정 단계를 팀장-임원-사장으로 줄인 것은 의사결정 시간을 짧게 한 것입니다.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일본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 1, 2>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을 하는 경찰간부, 이 때문에 벌어지는 엉뚱한 결정들.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일본어 단어가 겐바(현장의 일본식 발음)이고, 끊임없이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겐바를 중시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21세기형 군인이라고 추진하는 랜드워리어(Land Warrior) 프로젝트도 결정의 신속성과 현장 위주의 판단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병사 개인이 항법 및 통신 시스템을 갖고 이를 통해 모든 정보가 즉각적으로 지휘부에 전송되는 한편, 병사는 헬멧에 부착된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가면서 전투를 하게 돼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로마는 탁월한 면이 있습니다. 제국이 되기 이전 로마공화정 시대에는 군사령관에게 일단 임무를 주어 보낸 뒤에는 최고의 권력기관인 원로원도 작전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전략이나 작전을 짜는 것은 물론, 휴전을 제시하거나 적이 제시한 휴전 조건을 수락하는 것도 군사령관에게 일임하였습니다. 가장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개방성과 현장성, 그리고 패배로부터 배우는 정신으로 인해 작은 도시국가 로마는 주위의 다른 지역을 로마에 복속시키면서 지중해의 패자(覇者)로 성공했습니다. 로마의 초기 성공은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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