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달러도 아깝지 않게 쓰고자 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짚어낸 칩 앤 시크(cheap&chic)
브랜드들이 글로벌 마켓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트렌디한 디자인,
더 나은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이 마케팅 전략은 앞으로도 한동안 가장 파워풀한 트렌드가 될 것이다.
 연재를 들어가며_ 상품의 질은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지만, 앞서 가는 글로벌 기업들의 브랜딩과 마케팅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치열해져만 가는 시장에서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전략을 분석하고 배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마켓과 소비자 트렌드, 그리고 선진국에서 한창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뉴욕에서 생생하게 전한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시크(chic)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격이 비싸면 모두 럭셔리지만 가격이 비싸다고 모두 시크한 건 아니죠. 시크는 가격과는 상관이 없답니다. 시크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세련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이라고. 이렇듯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기 위해서 반드시 억대 연봉자가 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시크함에 대해 ‘좀’ 안다면 말이다.

 값 싸고도 세련됐다는 의미인 칩 앤 시크(cheap&chic)는 제품 원가를 절감하여 가격을 낮추고 제품 디자인과 고객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소비자들의 쇼핑 경험을 한층 만족스럽게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현명해지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낮은 가격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최신 트렌드와 스타일, 그리고 더 나은 서비스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과거 체면과 겉치레 때문에 값싼 브랜드를 외면하던 부유한 소비자들 역시 ‘가격 대비 높은 만족도’를 찾아 칩 앤 시크 브랜드로 몰려들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월마트(www.walmart.com) 같은 대형 할인점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찾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바겐 헌팅을 나선 럭셔리한 차림의 여성 소비자들도 부쩍 많아진 모습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물가 불안, 높은 실업률, 그리고 낮은 경제 성장이라는 달갑지 않은 요소들이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경제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만큼 소비에서도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칩 앤 시크는 바로 이런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며 패션, 화장품, 가구, 항공사, 호텔 체인, 레스토랑, 슈퍼마켓 등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막강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스타일리시한 뉴요커들이 몰려드는 할인점 ‘타깃’ 

 최근 ‘스타일에 살고 스타일에 죽는’ 뉴요커들에게 새로운 쇼핑 명소로 떠오른 타깃(www.target.com)은 칩 앤 시크 트렌드의 대표 주자다. 9.11 테러 이후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월마트, 케이마트(K-Mart), 베스트 바이(Best Buy), 베드 바스 앤 비욘드(Bed, Bath and Beyond) 등 대형 할인점의 ‘365일 염가’ 정책에 익숙하다 못해 무뎌져 가고 있다.

 미국 3대 대형 할인점 중 하나인 타깃은 월마트와 케이마트에서 내세우는 저가 정책은 기본이고, 여기에 감각적인 디자인과 기발하고 창의적인 마케팅을 더해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타깃은 아이작 미스라히, 신시아로리, 마이클 그레이브 등 유명 디자이너와 제휴하여 부담 없는 가격대의 고급스런 패션 브랜드나 침구류, 생활용품 브랜드를 런칭하는가 하면, 인기 연예인과 손잡고 십대 취향의 브랜드를 선보이며 의류뿐 아니라 화장품, 액세서리까지 함께 판매하고 있다. 또 소니와 같은 유명 브랜드와 제휴하여 타깃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점적인 전자제품을 전개함으로써 타 할인점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타깃이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자 월마트에서는 할인점 중 최초로 리바이스를 취급하기 시작했고, 케이마트는 마샤 스튜어트 홈 컬렉션을 독점으로 라이센싱하는 등 기존의 ‘싸구려’ 이미지에 스타일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올 초 미국면화협회의 조사의 따르면 2년 전과 비교하여 월마트와 타깃 같은 대형 할인점에서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는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2%를 넘었다. 타깃은 연소득 7만5천달러 이상의 중산층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체인 중 하나로 꼽히는 등, 체면이나 겉치레보다 실속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샤넬 디자인 재킷을 30달러에 파는 H&M

 현재 칩 앤 시크 트렌드의 최전방을 달리고 있는 것은 패션 브랜드들이다. 스웨덴 브랜드로 전 세계 19개 나라에서 선보이고 있는 H&M(www.hm.com)은 최신 명품 컬렉션에서 소개한 트렌디한 스타일을 놀랠 만큼 싼 가격에 제시하고 있다. 명품 스타일의 팬츠가 10달러, 재킷은 30달러, 여름용 티셔츠는 5달러이고, 귀고리나 반지 등의 액세서리는 단돈 99센트밖에 하지 않으니 가격 때문에 명품 매장 밖에서 기웃거리기만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H&M 마니아가 되고 만다. 전 세계적으로 1천여개의 매장을 가지고 한 해 5억장 이상의 옷을 팔아 치우고 있는 H&M에는, 그러나 자체 공장은 하나도 없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하청 업체와 연간 계약을 하고 제품을 대량으로 구입함으로써 생산 원가를 최대한 낮춘다. 값이 싼 만큼 한 시즌만 입고 버려도 그만이라는 계산에서 H&M의 소비자들은 부담 없이 최신 유행 아이템에 도전한다. 재킷과 코트 같은 아이템들은 값비싼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구입하고 탱크 톱, 티셔츠 등 가벼운 아이템들은 값싼 H&M에서 구입하여 믹스 앤 매치하는 알뜰한 멋쟁이들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최근 H&M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또 다른 소식은 유명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의 공동 작업이다. 저가 브랜드 H&M이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샤넬(Chanel)의 디자이너인 라거펠트와 손잡고 고급스러운 스타일, 합리적인 가격대의 ‘라거펠트 라인’을 런칭한 것이다. 2004년 11월 처음으로 H&M 매장에 도착한 이 옷들은 기존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럭셔리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H&M의 인기에 자극 받은 미국의 초대형 중저가 의류 체인인 올드 네이비(Old Navy) 역시 트렌디한 상품 구성을 늘려 가고 있으며, 포에버 21(Forever 21)은 ‘미국 서부의 H&M’으로 불리며 새롭게 뜨고 있다. H&M만큼 낮은 가격과 젊은 감각으로 칩 앤 시크 트렌드에 합류한 포에버 21은 한국인이 소유한 패션 기업으로 미국 전역에 200개의 매장을 내면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값이 싸다고 해서 반드시 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면화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65%의 여성들이 값이 비싼 옷이 반드시 제품의 질도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중저가 백화점 시어스(Sears)의 바이어로 일했던 산드라 윌리엄스는 대형 체인들이 값이 싸면서도 디자인과 스타일은 물론이고 질이 떨어지지 않은 제품을 공급하는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대규모 할인점과 중저가 백화점들에서 팔고 있는 값싼 옷과 액세서리들이 반드시 일회용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체인들은 그만큼 많은 소비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볼륨이 크고, 그 볼륨으로 가격을 낮추는 것이지 절대 질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가 항공사들의 하늘에서의 한판 승부

 미국의 젯 블루(Jet Blue), 사우스 웨스트 에어라인(South West Airline), 송(Song) 그리고 유럽의 이지젯(Easyjet)과 라이언 에어(Ryan Air) 등은 하늘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저가 항공사들이다. 특히 2000년 초, 기존의 대형 항공사들 틈에서 신규 런칭한 작은 항공사 젯 블루(www.jetblue.com)는 ‘저가 항공권과 최신 서비스’를 도입하여 항공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 항공 운임의 50%에도 미치지 않는 저렴한 국내 항공요금도 놀랍지만, 최신형 비행기에 각 좌석마다 LCD 스크린과 가죽시트 등 수준 높은 편의 시설을 제공한 것이다. 이런 고급 설비를 갖춘 비행기가 값싼 항공료를 받고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젯 블루의 설명은 심플하다. 가죽시트의 가격이 패브릭보다 2배 비싸지만 수명은 두 배 이상이고, 고장이 잦은 노후한 비행기보다 최신 비행기가 따져 보면 더욱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LCD 스크린 설치 비용을 승객별로 계산한다면 1인당 4달러 정도가 나오는데 이는 4~5달러 정도의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히 본전을 유지할 뿐 아니라 승객들에게는 한층 더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는 사우스 웨스트 에어라인(www.southwest.com)은 공항에서의 선착순 좌석 배정으로 유명하며, 성수기를 제외하곤 2주 전에 티켓을 예약할 경우 미국 내 어디를 가건 99달러의 균일가를 적용하고 있다. 델타항공사의 계열사인 송(www.flysong.com)은 전체적인 이미지가 팬시하고 트렌디하다. 뉴욕을 대표하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가 승무원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했는가 하면 송의 시그니처 오렌지 컬러는 브랜드 로고에서부터 대형 광고판, 비행기 외관과 실내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기내식으로 판매되는 요구르트, 베이글, 샐러드 등은 모두 가장 인기 있는 오거닉 제품들 중에서 선정된 것이며 간식으로 제공되는 사탕은 뉴욕의 트렌디한 캔디 스토어 딜란스 캔디 바(Dylan’s Candy Bar)에서 공급받는다. “Upper side chic, lower east side prices”, “Fifth avenue style, outlet prices”. 뉴욕 패션 위크를 후원하며 패션 피플들을 향한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는 송이 런칭 때부터 지금까지 소비자들에게 전하는 심플한 메시지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강남 스타일에, 가격은 강북’.



 소비자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일본과 유럽의 칩 앤 시크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일본에서도 칩 앤 시크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의 숨통을 열어 주고 있다. 무지(MUJI)는 컬러나 프린트를 배제한 지극히 심플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을 콘셉트로 한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곳 매장에서는 작은 수납 용품부터 화장품, 문구용품, 티슈, 물통 같은 잡화에서부터 덩치가 큰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발견할 수 있다. 무지는 어떤 장식도 없는 대신 제품의 질이 좋고 디자인도 모던하고 시크해서 일본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일본의 자이언트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Uniqlo) 역시 ‘이보다 더 쌀 수는 없다!’는 슬로건과 함께 일본의 젊은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경쟁 브랜드 갭에 비해 15% 이상 가격이 저렴한 유니클로는 트렌디한 제품 디자인과 세련된 광고 캠페인으로 더욱 유명하다. 변두리가 아닌 중심 상권만 골라서 대형 규모로 매장을 오픈하고 있는 유니클로는 ‘유니클로 마케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 한동안 일본 젊은이들의 패션을 일컬어 ‘유니클로 티셔츠에 프라다 가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니클로는 싼 가격과 함께 프라다 못지않은 시크함으로 일본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물가가 비싼 유럽에도 칩 앤 시크 브랜드들이 많다. H&M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제품력으로 승부하는 스페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ZARA)와 망고(MANGO)는 이미 전 세계 많은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칩 앤 시크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아이키아(www.ikea.com)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스웨덴 가구 브랜드. 저렴한 가격과 북유럽풍의 세련된 디자인으로 미국은 물론 유럽과 러시아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키아는 여러 가지 똑똑한(!) 아이디어로 원가를 낮춘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매장 내 직원을 최소한으로 운영하는 아이키아에서는 하나하나 상품 설명을 읽고, 치수를 재고, 조립하여 완성하는 것까지 소비자의 몫이다. 자칫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는 과정이지만 아이이카는 매장을 테마 마크처럼 꾸미고 쇼핑을 마치 ‘놀이’처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여 ‘체험 마케팅’이라는 또 다른 신조어를 창조하기도 했다. 아이키아가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H&M과 마찬가지로 ‘아웃 소싱’이다. 자체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유럽 등지의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각 공장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이를 하나로 모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덩치가 큰 물건을 취급하는 가구 회사들에 커다란 부담이 되는 운송에서도 아이키아는 남다르다. 완성된 가구를 컨테이너에 실어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제품을 조립식으로 디자인하여 납작한 박스에 담아 운반하여 엄청난 물류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현명한 소비자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바야흐로 소비자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가를 낮추고, 제품의 디자인과 질을 개선할 뿐 아니라 서비스까지 업그레이드시켜야 할 판이니 쉽지 않은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가 칩 앤 시크 브랜드들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싸고, 질이 좋고, 스타일이 있는 제품은 반드시 팔린다’는 정직한 시장의 법칙이다. 저가 제품이지만 매장 위치와 디스플레이, 그리고 고객 서비스에 신경을 쓰고 최근 트렌드를 제품에 반영한다면 고급스런 쇼핑 경험은 물론 구매 후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쯤 되면 어떤 불경기 한파 속에서도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권태일·안원경 뉴욕 주재 트렌드&마케팅 전문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