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이면 뭇 프로야구 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대망의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프로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더라도 한 해 최고 야구팀을 가리기 위해 펼쳐지는 한국시리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4년에는 삼성과 현대가 한국시리즈 역사상 유례없는 무승부를 거듭하며 10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이는 치열한 경기 끝에 결국 현대 유니콘스의 통산 4회째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이렇게 한 해의 최고 야구팀을 뽑는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프로야구 시즌은 종료되지만, 경기를 잠시 쉬는 겨울철 동안 구단과 선수들 사이에는 또 하나의 소리 없는 뜨거운 시즌이 펼쳐지는데, 바로 ‘스토브 리그’다.

 이 스토브 리그 동안 프로야구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한 해 동안 개인별 성적을 점검하고 차년도 개인별 연봉 금액을 책정한다. 즉, 스토브 리그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협상 기간인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연봉 협상 담당자들은 한 해 동안의 개인별 성적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고 개인 성과와 팀 기여도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되는데, 이를 위해 활용되는 자료들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세밀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들로 구성된다. 또한 선수들의 포지션과 임무에 따라 개인별로 고려되는 자료 유형도 매우 상이하다.

 역할별로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객관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이들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도출하는 포지션별 팀 기여도 공식들도 수십 가지 이상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성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해의 개인 종합 성적이 도출되고, 그 결과에 따라 차년도 보상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에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협상 과정은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연봉제 운영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스토브 리그가 프로운동 선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도 일반적으로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의 업적 결과를 평가 받고 이에 따른 차년도 연봉 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즉, 직장인들도 겨울에는 직장인들만의 스토브 리그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직장인들의 스토브 리그는 국내에 연봉제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국내 기업 64%가 연봉제 실시 

 1991년 (주)쌍용에 의해 일부 도입되기 시작한 연봉제는 90년대 말 IMF 위기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 아래 재무 구조 개선 및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러한 연봉제가 도입됐고, 기업 인사 측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통한 성과 지향적인 인사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64.2%에 이른다고 한다. 미시행 기업들 중에서도 향후 실시 예정인 기업들이 나머지 절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상위 50대 기업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이미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즉, 시쳇말로 연봉제는 이제 ‘대세’인 것이다.

 하지만 연봉제를 도입한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실제로 성공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을까? 성과에 대한 보상 차별화를 심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연봉제가 정착되고 있는 회사도 있지만 상당수의 기업들이 무늬만 연봉제를 운영함으로써 연봉제 도입 취지를 살리는 데 실패하고 있다. 호봉제적인 인사 운영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든지, 급여 결정 방식은 종전과 동일하고 지급 방식만 변경한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연봉제의 실질적인 운영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바로 평가 결과에 대한 불신이다.

 노동부의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연봉제의 문제점으로 ‘평가 불신’을 지목하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단기 실적 치중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가제도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연봉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봉제의 핵심은 명확한 평가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연봉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이 가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개인의 성과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연봉제로 대표되는 이러한 성과주의 보상제도의 핵심은 성과와 연계된 차등 보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성과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면 연봉제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결국 ‘무늬만 연봉제’ 수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무늬만 연봉제는 조직 내에 눈치 경쟁을 양산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같이 힘내서 일해 보자”는 의기투합은 거의 소멸 직전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모 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솔직히 그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평가에 대한 불신은 더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경력 6년 차 한모 대리(33)는 “이제 상사의 평가를 믿지 않는다”라고 털어놓는다. 술자리에서 상사들 말을 잘 듣고 집이 같은 방향인 사람들이 점수를 후하게 받는 경향이 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업적과 역량에 대한 명확한 평가 기준 및 평가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 연봉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역량 지표(Compe tency)니, 핵심 직무 성과 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니 하는 말들도 이렇게 평가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연봉제 본연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명확한 평가가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다음 기회를 기약하겠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적인 포인트만 짚고 넘어간다면, (1) 직무의 특성을 반영한 명확한 평가 지표의 설정 (2) 목표 설정 → 중간 면담 → 평가 → 성과 향상 계획 수립으로 이어지는 목표 중심 평가 프로세스의 운영 (3) 평가 결과의 투명한 피드백을 통한 평가 절차에 대한 공정성 확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4) 목표 설정 과정에서 피평가자의 참여에 기반한 쌍방향 의사소통 경로의 확보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도입 후 이제 15년 차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연봉제는 아직 절반의 성공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