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사장’,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철인’(鐵人), ‘불도저’, ‘해결사’. 그에게 따라붙은 별칭들이다. 그만큼 그는 대단한(?) 인물이다. 우림건설 임승남(林勝男·66) 회장. 지난 2004년 9월 말 롯데건설 사장직에서 물러났던 그가 꼭 2개월 만에 컴백했다. 이번엔 롯데가 아닌 중견 건설업체 사령탑을 맡았다. 왜일까? 해답은 그의 별명에서 금세 찾을 수 있다. 그는 해결사니까.
 회장은 “현업을 떠나기엔 아직 젊다”면서 “기존 경영진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40년간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마지막으로 모두 쏟아 붓겠다는 그의 정열에서 나이는 의미가 없다.



 1년 전부터 ‘러브콜’

 서울 서초동에 본사를 둔 우림건설은 최근 ‘루미아트’란 아파트 브랜드로 돌풍을 일으킨 주택 전문 업체. 2003년 매출액 6000억원, 아파트 8000가구 건설을 이루면서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우림은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임 회장이 꼭 필요했다.

  우림건설 심영섭 사장은 “(그의) 풍부한 경영 경험과 저돌적인 추진력에 감명받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심 사장은 1년 전부터 임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후 임 회장이 롯데를 떠나자마자 “꼭 도와 달라”며 미리 사무실과 비서까지 준비하는 성의를 보였다. 임 회장은 “사실 3~4개 업체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면서 “롯데측에서도 호텔롯데 상임고문으로 남아 주길 희망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임 회장은 “심 사장이 확 트인 마인드를 갖고 있고, 사회봉사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친 점이 맘에 들었다”면서 “이런 기업이라면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임 회장은 심 사장에게 “인간적으로 끌렸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우림건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토목 분야와 해외 사업 개척에 주력할 방침이다. 롯데쇼핑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통 쪽에도 경영 자문을 해 줄 생각이다.

 공채 1기로 출발, ‘스타 CEO’로 우뚝

 임 회장의 이력서는 화려함이란 말이 어울린다. 그는 ‘튀지 않는’ 롯데에서 유일하게 ‘튀는 스타 CEO’였다.

  지난 1964년 연세대 화학공학과 졸업반이던 그는 신격호 회장이 직접 채용했던 4명 중 한 명으로 ‘일본 롯데 공채 1기’로 롯데와 인연을 맺었다. 다른 동기들은 중도에 ‘힘들다’면서 모두 롯데를 떠났지만, 그는 신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입사 15년 만인 1979년 롯데햄·우유 대표이사가 그의 CEO 이력서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40대 CEO’였다. 이후 임 회장은 롯데호텔 중동사업본부장(1981년), 롯데잠실사업본부장(1985년), 부산롯데월드건설본부장(1991년), 롯데호텔부산 대표이사(1992년), 롯데쇼핑 대표이사(1997년) 등을 두루 역임하며 무려 25년간 CEO로 재직했다.

  외환 위기가 닥쳤던 지난 1998년 4월에는 롯데건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도급 순위 19위, 매출 7000억원이던 롯데건설을 임 회장은 6년 만에 도급 순위 8위, 매출 2조원대의 메이저 건설업체로 탈바꿈시켰다. 부채 비율은 ‘제로’(0)로 만들었다. 롯데건설 재임 시에는 ‘호텔 같은 아파트’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롯데캐슬’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아파트 시장에서 무명이던 롯데를 일약 ‘최고의 브랜드’로 키우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불도저 연상시키는 ‘작은 거인’

 
임 회장은 말 그대로 불도저다. 165㎝의 단신에 호리호리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추진력이 뿜어 나올까 놀라는 사람이 많다. 임 회장보다 2살 아래로 20년 넘게 우정을 쌓은 임인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매사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우직한 신념으로 최선을 다한다. 한번 결정한 일은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돋보이는 경영인이다. 새벽에 서울을 출발해 도쿄에서 일을 보고, 저녁에 돌아오는 열성파다.”

  임 회장의 저돌적 추진력은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롯데제과 영등포공장 부공장장이었던 지난 1973년 여름 엄청난 홍수로 공장이 마비될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공장 내의 비스킷 기계를 보호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이틀 밤낮에 걸쳐 물을 퍼냈다. 직원들 사이에 “미쳤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국 물길은 잡혔고, 50만달러의 일본 차관으로 들여온 기계를 무사히 건질 수 있었다.

  잠실롯데호텔 신축 당시 일화도 유명하다. 준공식 이틀을 앞두고 호텔 옥상 물탱크가 넘쳐 엘리베이터 7대가 물에 잠기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발만 동동 굴렀다. 하지만 임 회장은 “준공식을 연기할 수 없다”며 전 직원에게 헤어드라이기를 갖고 와 엘리베이터를 말리도록 했고, 결국 준공식에 맞춰 엘리베이터는 모두 정상 가동됐다.

  임 회장은 강철 같은 체력으로도 유명하다. 66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롯데건설 시절 임 회장은 매주 1~2일은 지방 아파트 현장을 방문했다. 이때 직원들은 진땀 흘릴 각오부터 했다고 한다. 15층 이상 되는 신축 아파트 계단을 한달음에 올라가는 그를 따라잡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그의 주량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어느 날 지방 현장을 찾았을 때 100명쯤 되는 직원을 모두 식당에 모아 놓고 한 잔씩 잔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의 주량은 폭탄주 20잔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체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는 아무리 과음을 해도 반드시 귀가 후 워킹머신과 줄넘기,아령 체조 등으로 1시간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에 잠자리에 든다. 그의 지인들은 “임 회장의 팔과 다리를 만져보면 20대처럼 탱탱하다”면서 “60대 몸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 회장도 지난 4월 대선 자금 수사를 받은 후유증으로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임 회장은 친화력도 뛰어나다. 공사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성격이 워낙 화통해 정계·재계·학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여서 ‘마당발’로 통한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10분쯤 같이 얘기하면 빨려든다”고 말한다.

 최선을 다하고, 실패에서 배워라

 
임 회장은 늘 직원들에게 ‘정열’과 ‘최선’을 강조한다.

  “불가능은 없다. 최선을 다하는 영업 자세를 보여라.”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능력은 일에 대한 정열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 신입 사원들에게 종종 “활을 쏘려면 태양을 향해 쏘라”고 말했다. 태양은 가장 크고 중요한 과녁이라는 뜻에서다. 임 회장이 가장 즐겨 읽는 책이 있다.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사람만들기>(人作)다. 이 책의 기본 덕목은 바로 ‘정열’이다. 직장인의 성공은 바로 정열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에서 배우라’는 말도 강조한다. 성공의 이면에는 항상 실패가 따르게 마련이다. 아무리 사소한 실패라도 숨기거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몇 년 전 그는 일본인 하가 시게루 교수가 지은 <이제는 실패학이다>라는 책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기도 했다.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말하는 직원이 제일 싫습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직원을 꾸짖지 않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므로 원인만 알면 그걸 거울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유하룡 조선일보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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