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 중 가장 성공적인 CEO로 평가받는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그의 경영 키워드는 인재 육성과 혁신, 그리고 열정이다.
그는 변화와 성장을 통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2004년 처음 매출 3조원 시대를 연 동국제강이 4년 내 매출 7조원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내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동국제강은 1995년 1조원, 2003년 2조원을 돌파한 이후 동종 타 업체의 흡수 합병 없이 단 1년 만에 3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설비 증설과 첨단 설비에 의해 순수한 매출 증대를 이룬 것이다.

 동국제강그룹은 매출 7조원 달성을 위해 주력 기업인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을 주축으로 철강 원자재 확보의 다각적인 노력과 고부가 제품 생산 판매로의 집중, 그리고 신규 사업의 발굴 등을 활발히 전개할 계획이다.

 또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위해 브라질에 합작 슬래브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으며, 충남 당진 소재 20만평 터에도 철강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동국제강그룹을 이끄는 이가 바로 장세주(張世宙·52) 회장이다. 장 회장은 “철강사업 경쟁력 강화, 사업의 포트폴리오 고도화, 조직 역량 강화를 통해 매출액을 2004년 3조6000억원에서 2008년까지 7조원 규모로 성장시키겠다”며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변화와 성장을 모토로 내걸고 철강 부문의 경쟁력 강화 등과 물류, 해운 등 신규 사업 진출을 통해 목표 달성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재벌 3세 경영인

 장 회장은 장상태(1927~2000년)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창업자 장경호 회장의 손자다.

장경호 회장(張敬浩·1899~1975년)은 1954년 7월 서울 영등포에 있던 한국특수제강을 인수해 동국제강을 창업했다. 이후 장경호 회장은 3남인 장상태 회장과 함께 1967년 부산 용호동의 개펄 21만평을 매립해 대규모 철강공장을 건설해 기반을 마련했다.

 장상태 회장은 큰형 장상준씨가 1978년 작고하자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내부 불합리한 요소를 혁신하고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들었다. 장세주 회장은 연세대 졸업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8년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 당시 장상태 회장이 “내 아들이라고 해서 봐주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장 회장은 기획관리부 사원, 인천제강소 제강과 대리, 본사 회계과장, 일본지사 차장 등 사원에서부터 사장까지 모든 직급을 두루 거쳤다. 부친인 장상태 회장으로부터 23년간 철강산업의 전 과정에 대해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은 것이다. 지금 가장 경쟁력이 있는 후판공장 설립도 1996년 그룹 진로를 결정할 당시 장 회장의 의견을 상당 부분 인정해 준 것이었다. 재벌 3세 중 가장 성공적인 경영자란 평가도 이러한 경영수업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2000년 장상태 회장이 작고하고, 2001년 김종진 회장마저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장 회장(당시 사장)은 사내외 인사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동국제강은 전체 직원 중 15%인 200여명이 형제·자매·부자 관계인 가족 경영 풍토가 특색이다. 신입사원도 기존 직원들의 추천을 통해 들어온다. 그래도 누구의 힘으로 들어왔느니, 승진했느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채용과 승진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 경영 풍토로 인해 장 회장도 대화와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대리 시절부터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냈으며, 요즘도 사원들의 경조사를 꼭 챙긴다고 한다. 부친인 장상태 회장이 건설인부 등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국제강은 탄탄한 조직력이 자랑거리다. 동국제강은 2004년 7월, 10년 연속 임금 협상을 무교섭으로 타결했다. 지난 94년 국내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이후 2004년도 무교섭으로 임금 협상을 타결해 대기록을 세우게 됐다. 무한경쟁시대에서 성숙된 노사 협력만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투쟁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선진 노사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장 회장이 향후 50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는 인재 육성이다.

 그는 그룹 차원에서 앞으로 5년 안에 국내외 경영대학원을 이수한 석사급 인재를 100명 이상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재 육성 최우선

 조직의 힘에 의지해 지내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개인의 역량이 팀과 부서, 회사 전체에 미칠 수 있도록 자기 개발에 나서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장 회장은 2004년 50주년을 맞아 세운 중장기 계획의 핵심 가치는 인재와 열정, 혁신이라면서 당장 변화가 없더라도 미래를 위해 인재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4년은 철강업종 호황으로 경영 실적이 좋았지만 2005년은 고유가와 환율 하락 등으로 철강업도 부진할 것이라며 향후 경기 변동에 대응하도록 거시적 경제 환경에 대한 시각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 장경호 회장은 75년 사재 35억원(지금 기준 2000여억원) 상당의 유가증권과 부동산, 현금 등을 사회에 쾌척하기도 했다. 장 회장은 고 장상태 회장이 96년 1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공인 재단법인인 송원문화재단을 통해 철강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장학사업과 소외 노인을 위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주요 사업장이 있는 부산·대구·인천·울산·경북지역 8개 대학의 재학생 25명에게 장학금 1억원을 전달하고 있으며, 포항과 인천지역의 독거노인 등에게 생활비를 전달하는 등 노인복지사업도 펼치고 있다.

 동국제강은 향후 50년을 준비하면서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주력 업종인 철강 외에도 운송·해운·건설 등 신규 분야에도 진출한다는 것이다. 철강 부문에서는 동국제강·유니온스틸·유니온코팅 등의 판재류 사업을 강화하고, 운송·해운·건설 등의 분야에서 1~2개 신규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50주년을 맞던 2004년 7월에는 동국제강 영문 이니셜 ‘D’와 ‘K’를 형상화해 새로운 CI도 선포했다. 새로운 CI는 내일을 향해 전진하는 진취적이며, 전문적인 이미지를 살렸다. 또 70년대 초부터 30여 년간 사용해 오던 중구 수하동 본사 건물을 새로 짓기로 하고 2005년 말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장 회장은 “인재와 혁신, 열정을 향후 경영의 키워드로 설정하고 변화와 성장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형보다는 설비 경쟁력과 기술 개발 등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이끌어온 장 회장.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동국제강을 향후 50년 동안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려놓을지 주목된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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