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이하 르노삼성차)는 상반기 중 5만7977대를 판매, 전년 동기대비 43.9%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었다. 이는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내수 불황이 정점에 달한 데 따라 연초 내수 판매 목표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실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7월 자동차산업 전망 수정 보고서를 통해 내수 판매 예상치를 당초 115만대에서 110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르노삼성차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는 극소수다. 심지어 내부에서조차 불협화음이 불거져나오고 있다.

 노삼성차는 삼성자동차가 1998년 2월 SM5로 첫 선을 보인 이래 7년3개월 만에 누계 판매 50만대를 달성했다. 르노삼성차의 신장세는 지난해 12월 SM7의 론칭, 2월의 SM5 풀 체인지 모델인 뉴SM5 론칭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2001년 SM5 단일 차종, 2002년 하반기에 추가 투입된 SM3만으로 이룬 판매 실적과 비교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SM7은 출시한 1월부터 4월까지 월 3000대 수준의 판매를 달성했으나 현대자동차 뉴그랜저가 본격적으로 출시된 5월부터는 1700대 수준으로 줄었다.

 한편 뉴SM5가 2월에 출시되었음에도 SM5의 2005년 1~7월 판매는 3만4284대로 2004년 동기간의 실적 3만5020대보다도 오히려 2.1% 하락한 실적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시장에 처음 선을 보인 르노삼성차의 야심작인 SM7은 초기 폭발적인 계약 대수를 이어가지 못하고 대형차 여부 논란, SM5와의 쌍둥이차 논란, 연료탱크 소음 논쟁에 시달리다 현대자동차 뉴그랜저의 대기 수요가 풀리면서 5월 판매량이 전월 대비 40% 이상 감소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르노삼성차의 야심작인 SM7 판매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려면 SM5의 탄생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르노삼성차 관계자가 “SM5는 상품기획 단계에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XG급을 경쟁 차종으로 삼았다”고 언급한대로 SM5는 삼성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차였지만 삼성의 승용차 사업이 IMF 경제체제와 소위 빅딜에 휘말리면서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1년여 동안 생산이 중단됐다.



 SM7, 국제 얼라이언스의 역학 관계에서 탄생

 SM5는 생산 중단 및 이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의 저하, 생산 재개 이후에는 회사의 현금 흐름 개선을 위한 정책 때문에 택시 등 플릿(Fleet) 마켓을 타깃으로 삼게 된다.  택시 시장은 특정 차종이 성숙기를 지나 완숙기에 접어들 때 뛰어드는 시장인데, 이로 인해 SM5는 하급 경쟁 차종이었던 현대자동차의 EF쏘나타 등과 경쟁하는 처지가 되었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출시된 SM7이 대형차냐 중형차냐 하는 논란은 SM5의 브랜드 이미지 추락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문제였다. SM5의 위상이 출시 초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고, 이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 추락이 없었다면 SM7 역시 이러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업계의 마케팅 전문가는 “SM5가 최근 2~3년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격 대비 품질이 좋아서였지 SM5나 르노삼성차의 브랜드 파워 때문은 아니었다”고 언급하고 “그래서 중형차급인 SM7을 대형차로 주장하면서 가격도 대형차급으로 받지 않느냐”고 일침을 가한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SM7의 대형차 논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차가 독자 모델인가 카피 모델인가 하는 점이다”라면서 SM7은 “닛산의 티아나와 비교했을 때 전면부는 라디에이터 그릴, 안개등, 범퍼 몰딩의 변경, 전면 범퍼 길이를 확대했으며, 후면부는 백판넬 몰딩 변경, 후면 범퍼 길이만 확대한 사실상의 카피 모델”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르노삼성차의 제품 개발능력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다.

 SM7은 대형차, 제품의 우수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이미 중대한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2002년부터 개발에 착수했으니 르노삼성차의 경영진들이 국내 시장의 특성을 몰랐을 리 없다. 국내 중대형 승용차 시장은 소프트한 승차감, 배기량 대비 큰 외관 및 넓은 실내 공간, 대용량의 트렁크 등을 기본 특징으로 한다. 이들 특징은 시장 점유율 1위인 현대자동차가 주도한 측면도 있지만 80년대 후반 이후의 모터라리제이션 시대에 현대, 대우, 기아, 쌍용 등 국내 승용차 제조업체들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삼성자동차는 SM5 이후의 차기 차종으로 닛산에게 대형 고급 차종인 ‘시마’를 요구했으나 닛산은 거절했다. 닛산은 단순 기술제휴 관계였던 삼성에 기술 공여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각종 수익이 목적이었을 뿐, 고급 승용차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향후 돌아올 부메랑은 피하고자 했다. 르노가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후 르노삼성차측은 대형 승용차로 르노의 대형차급인 ‘베르사티스’ 등의 도입을 검토했으나 베르사티스는 르노 그룹 내에서도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 차종. 르노삼성차는 르노의 영향력을 통해 시마의 기술 공여를 원했으나 결과적으로 닛산측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르노, 닛산, 르노삼성차 간의 국제적인 얼라이언스는 아직 요원하다는 얘기다.

 또 한편으로는 ‘품질이 좋으면 시장은 존재한다’는 프랑스인들의 사고가 르노삼성차가 국내 시장에서 마이너 업체임에도 한국 소비자들에게 SM7을 내세워 대형 고급 승용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고 주장하게끔 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공 여부는 결국 소비자가 시장에서 결정함으로써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M1G 프로젝트,  르노 국제 얼라이언스 체제로 편입

 
르노는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유럽 시장을 기반으로 한 로컬 기업이었다. 판매의 약 80% 수준을 유럽 시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르노가 1999년 대외적으로 상호 자본 제휴를 표방하면서 닛산에 대한 사실상의 인수합병을 통해 비로소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00년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 역시 이러한 르노의 글로벌 전략 실행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르노의 고위층들은 기회만 있으면 한국의 투자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지난 6월 한국 기자단을 르노 본사로 초청한 자리에서 카를로스 곤 회장이 “중국 시장에 완성차 공장을 짓지 않고 르노삼성차에서 생산한 차로 중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취지의 막연한 발언을 한 것 등이 그 방증이다.

 중국 시장은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신흥 시장이라는 평가가 있는 동시에 전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 브랜드들이 진출하여 과잉경쟁 상태에 있는 곳이다.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직접 진출한 메이커들도 고전하고 있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완성차를 수입해서 판매하겠다는 것은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르노삼성차의 미래 생존 가능성을 얘기할 때 2000cc급 엔진 프로젝트인 M1G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르노와 닛산의 향후 경쟁력은 엔진, 트랜스미션 등 주요 핵심부품들의 제품력과 공용화 범위가 관건이 될 텐데, 르노삼성차가 닛산과 르노에 엔진을 공급한다는 것은 르노삼성차가 정식으로 르노의 글로벌 체제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M1G는 르노 및 닛산 역시 자사 프로젝트로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프로젝트다.

 지난 5월 르노 CEO로 취임한 카를로스 곤 회장이 르노에 대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한다면 르노의 직계 자회사인 르노삼성차 역시 곤의 칼을 피해갈 수 없는데, M1G는 그 날카로운 칼을 피해갈 수 있는 르노삼성차의 유일한 방어망인 것이다.

 르노삼성차 내에서 통칭 CSUV로 불리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비히클)는 2007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SUV의 출시는 르노삼성차 입장에서는 SM5, SM3, SM7에 이은 1단계 제품 라인업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닛산의 콤팩트 SUV인 엑스-트레일의 플랫폼을 활용, 엔지니어링은 닛산, 디자인은 르노, 생산은 르노삼성차가 맡는 삼각 협업 체제로 이루어진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르노의 니콜라스 허미스 상무, 르노삼성차 담당자는 기흥연구소의 송응석 부장이다. 하지만 SUV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유가의 영향으로 서서히 열기가 식고 있고, 국내 시장은 동급에서 뉴스포티지, 투싼 등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SUV는 르노삼성차에 획기적인 경영 실적으로 보답하기보다는 매출 볼륨의 확대, 부산 공장의 가동률 제고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해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소 낮게 평가했다.



 르노 초기 인수 자금 3년간 흑자로 거의 회수

 르노는 2000년 부채를 일체 떠안지 않는 자산 인수 방식으로 삼성자동차를 인수, 2002년 매출액 1조7895억원, 순이익 1661억원을 시현했고, 2003년에는 11만대 판매, 매출액 1조6850억원, 영업이익 946억원, 순이익 836억원, 2004년에는 8만5000대 판매, 매출액 1조3470억원, 순이익 78억원을 시현,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으나 매출·수익 면에서는 2년 연속 급감하고 있다. 내수 위주의 르노삼성차가 국내 경기의 장기 침체 직격탄을 맞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쟁력을 갖춘 뚜렷한 신차 부재, 수출 전략 차종 및 시스템의 부재 또한 주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르노는 초기 인수 자금을 3년간의 흑자를 통해 거의 다 회수했다는 것이 업계 재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2002년 9월, 르노의 슈웨체른 회장은 향후 3년간 매년 1200억원을 투자, 총 36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 슈웨체른 회장은 투자 방식과 관련, “외자 투입이 아니라 르노삼성차가 창출하는 이익금 전체를 투자하여 필요 자금을 충당한다”고 밝혔다. 2003년 3월 제롬 스톨 르노삼성차 사장과 2004년 11월 슈웨체른 회장의 6000억원 투자 계획 발표는 거의 동일한 내용인데, 이러한 르노의 투자 확대 의지 표명은 르노 그룹의 일취월장한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르노삼성차와 경쟁관계에 있는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같은 외국계 기업인 GM대우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르노측의 투자 규모는, 르노가 르노삼성차의 비중을 높게 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닛산의 금년도 투자 계획 등과 비교해봐도 르노 그룹의 사업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약관화해진다.



 카를로스 곤의 등장과 기대

 2005년 5월부터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르노 그룹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참모진 역시 그의 측근들로 교체되었다. 슈웨체른 회장과 함께 르노삼성차의 정책을 주도했던 조르주 두엥 부회장 역시 지난 6월말 퇴임했다. 이에 따라 르노삼성차에 대한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 르노삼성차의 고위 관계자는 “카를로스 곤은 르노 회장에 취임하기 전 르노 그룹 내에서 르노삼성차의 활용도가 낮다고 보고 있다”고 언급하고, “르노삼성차를 닛산 일본내 공장들 중 한 군데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그의 시각에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는 르노의 미국 시장 재진출 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고유가의 지속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에선 소형차 붐이 일고 있다. 르노는 닛산 인수 이후의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북미 시장 재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내수 부진 타개의 대안으로 이러한 르노의 미국 재진출 시 자사의 SM3나 뉴SM5가 수출 전략 차종으로 선택될지 여부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오는 11월 방한할 예정인 카를로스 곤 르노 회장의 선택에 르노삼성차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