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그룹의 최고경영자들과 인사담당자들은 요즘 “우수 인력은 지구 끝까지 가서 선발한다”는 구절을 좌우명처럼 외우고 다니고 있다.

 삼성그룹이 5년 뒤, 10년 뒤에도 생존하기 위한 관건은 당장 무슨 미래 산업이나 신규 사업을 개척하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바로 ‘인재 확보’ 그 자체라고 보고 있다. 기존의 범재들이 괜히 골머리를 앓으면서 말도 되지 않은 미래 전략을 구상하느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느니, 뛰어난 인재 한 명을 데려오면 그가 탁월한 사고와 시각으로 삼성의 미래를 열어 가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인재 제일에서 천재론으로

 원래 삼성그룹은 창업주인 고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평생 ‘인재 제일’을 핵심 경영 원칙으로 삼은 데 이어, 이건희(李健熙) 회장도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며 인재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이 회장의 인재관은 2002년 5월 계열사 CEO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인재 전략 사장단 워크숍’에서 내놓은 ‘천재론’으로 더욱 구체화됐다. 이 회장은 “21세기는 탁월한 1명의 천재가 1만 명,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이자 지적 창조력의 시대”라며 고급 인재 확보에 CEO와 임원들이 직접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천재와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것은 현재 삼성그룹에 떨어진 절대절명의 과제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말 신라호텔에서 계열사 사장들과 보고회 겸 회식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올해 자신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인재를 얼마나 스카우트했느냐”고 말했다. 어떤 계열사 사장이 “이쪽은 정말 핵심 인재 스카우트가 어렵다.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말하자, 이 회장은 배석한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더러 “저 사장의 월급을 2배 올려 주고 시간을 더 주라. 그러면 훨씬 더 뛰어난 인재를 데려올 것”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사장의 최우선 업무도 핵심 인재 스카우트에 있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삼성은 우수 인재를 S급, A급, H급으로 각각 분류하고 있다. 제조업체를 기준으로 한다면 S(Super)급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기술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핵심 인재, A급은 해당 분야의 기술을 리드하는 사람, 그리고 H(High potential)급은 아직 사회 경험은 없지만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가령 스탠포드나 MIT 재학생들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화제를 모으는 것은 역시 S급이다. S급은 사장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과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면서 핵심 기술 개발이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존재다. 삼성전자의 경우 모바일쪽의 모뎀 개발자, 플래시 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개발자, TI나 인텔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이름을 날리던 엔지니어 등이 포함된다. S급의 연봉은 평균 150~200만 달러라고 하지만, 철저하게 당사자간 비밀 계약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급여에 제한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수 인재, S갂갎급으로 분류

 어떤 경우는 회장이 주로 타는 전용기를 띄우기도 한다. 가령 TI에서 근무하던 우남성 박사의 경우 모바일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반도체인 시스템 LSI쪽의 핵심 칩 개발자인데, 가족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오기를 주저하던 그에게 전용기를 보내어 결국 삼성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런 전용기에 타본 사람들은 자신의 몸값을 알아주는 기업에 감동을 받게 마련이다.

 최근에 입사한 또 다른 S급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케팅을 책임지게 된 이종석(그레고리 리) 전무다. 1963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42세다. 삼성은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6년 전부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유통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는 P&G 출신인 그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접촉하여 드디어 올해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삼성측은 이 전무가 이전 회사에서 받았던 스톡옵션 문제를 다 해결해 주고 동부이촌동에 80평 아파트를 마련해 주는 조건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무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열정이 대단하고 끈질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삼성전자 인사팀장인 김인수(金寅洙) 부사장은 “그는 지난 15년간 꾸준하게 업계 최고의 성공 스토리를 만든 사람으로, 소비자 밀착형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소비자 니즈와 제품 트렌드 등을 조기에 파악하여 현장에 연결시켜 주는 그런 인재가 필요하다”며 “한 명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데, 바로 그 한 명에게 차별화된 대우를 해주는 것은 오히려 시장 원리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에서는 이 밖에 삼성증권의 CM (캐피털마켓)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는 최희문 상무, 오라클 출신인 삼성SDS 이철환 상무,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해상에서 스카우트한 마케팅 전문가인 삼성화재의 가와사키 상무 등도 S급 인재로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선발된 S급, A급, H급 등의 우수 인력은 보통 3~5년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일단 3년 정도 계약한 뒤 성과를 보고 나서 재계약을 맺는다.



 다양한 내부 인재 육성 프로그램

 현재 삼성그룹이 우수 인재를 선발할 때는 학벌, 성별, 나이, 국적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그동안 그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성공시켰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성공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전 세계 핵심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데는 CEO들이 직접 뛰는 이외에 실무적으로 인력 스카우트를 전담하는 IRO들이 있다. 이들은 좋은 의미의 ‘인간 사냥꾼’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인도의 김현수 차장을 비롯해 모두 16명이 전문 IRO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비메모리 반도체인 시스템 LSI의 마케팅 부장급 인물을 찾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평소 알고 있는 인맥을 통해 순식간에 해당 인물과 접촉을 시작한다. 평소 재미과학자협회나 스탠포드대학동문회 등을 통해 완벽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업무의 중요성과 어려움 때문에 이들의 활동비는 무제한에 가깝다고 한다.

 이 회장은 “우수 인력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유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헬프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에서 건너온 우수 인재의 가족을 위해 교육이나 병원 문제 등을 원스톱 해결해 주는 인력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업무에서는 ‘mentor’라는 제도를 두어서 우수 인재들이 새로운 회사에서 애로를 겪을 때마다 옆에서 이를 도와주고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S급 인재가 만일 한국에서 근무하기 싫다고 하면 댈러스·런던·산호세 등에 있는 연구소에서 근무하도록 해준다. 부인들이 한국에 대해 거부감을 보일 경우 비행기 일등석으로 모셔와 제주 신라호텔을 비롯하여 국내 곳곳을 구경시켜 주고 타워팰리스 같은 곳도 보여 주며 마음을 잡기 위한 노력을 펼친다.

 물론 삼성이 외부 인재 스카우트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만 해도 재무분야 MBA를 매년 20명 이상 보내는 등 기존 사원들을 위한 다양한 인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역시 외부 인재이며, 그 중에서도 S급 인물들이다.



 전직 고려한 인재 관리

 하지만 S급 중에는 삼성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루슨트테크놀로지 부사장에서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센터장으로 영입됐던 전명표 부사장은 지난해 6월 3년간의 계약 기간을 마치고 회사를 떠났다. 또 TI의 최고기술담당자(CTO)에서 삼성전자의 초대 디지털미디어연구소장으로 영입됐던 오영환 부사장도 2003년 회사를 그만뒀다. 글로벌 마케팅을 담당하던 김병국 부사장도 최근 인텔로 떠났다.

 이들이 삼성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외부 인사가 적응하기 힘든 삼성 특유의 조직문화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삼성측은 “당초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삼성측에서 재계약을 맺지 않거나, 건강이나 가족 문제 등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전명표 부사장의 경우 미국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금도 삼성측과 긴밀한 업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측은 앞으로 S급 인재들이 더 나은 조건이나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전직(轉職)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삼성 붙박이화’ 전략 이외에 ‘3~5년 필요한 기간만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도 병행할 방침이다.

최홍섭 조선일보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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