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자금 지원은 오히려 제조업의 공동화를 불러왔다. 정작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금이 아니라 정부의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이다.”

 첫마디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중소기업들이 정부에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운영자금 지원을 유완영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회장은 단호히 거부했다. 단발성 자금 지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그래서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을 통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단기적인 자금만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과거 벤처기업에 대한 접근 방식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고 유 회장은 강조했다.

 이 때문일까. 한때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키워드였던 벤처라는 단어는 지금 퇴색해 있다. 대신 그 자리를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이 차지했다.



 무차별적 자금 지원은 오히려 ‘독’

 Inno-Biz라 불리는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은 Innovation(혁신)과 Business(사업)의 합성어로 기술력과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갖춘 중소기업을 일컫는다. 지난 2001년부터 중소기업청이 해당 기업을 선정해 기술·자금·판로 등을 연계 지원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이 있는 우수 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은 연구 개발을 통한 기술 경쟁력 및 내실을 기준으로 선정하고 있어 과거의 실적보다는 미래의 성장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유 회장이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기술혁신을 통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뉴 패러다임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미국, 독일 등 OECD 선진국들이 중소 벤처기업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1995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 정책을 시행해 왔으며, 각 국가간의 기술 경쟁력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척도로 비교되고 있음도 유럽과의 무역을 통해 알았다. 

 이에 유 회장은 지난 2002년 11월 사단법인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에 취임했다. 정부의 육성 정책에 따라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들의 자금, 기술, 판로 개척 등을 공동 지원하고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 및 대학 등 연구기관과도 연계함으로써 국제 경쟁력 강화에 공동 노력하자는 의미에서다.

 협회 설립 2년째를 맞이한 올해 유 회장의 활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성과물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선정에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부족했던 평가 시스템을 협회의 자가 진단 시스템 제공으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은 과거 무분별한 벤처기업 선정 과정에서 나타났던 오류와 폐단을 극복케 하고 있다. 협회 설립 이전에는 1년여 만에 1500개의 중소기업이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됐지만 협회 설립 이후 2년 동안에는 불과 100여 개 기업만이 선정 기준을 통과한 것은 대표적인 성과다.



 산학협력 모델 개발에 주력

 또 고려대학교와의 협약을 시작으로 ‘패밀리 닥터’ 제도를 시행해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과 경영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대학교수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산학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중소기업과 대학이 1교수 1사 전담 지원 체제를 갖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정보를 대학이 분석해 공급하는 한편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기업으로 이전하자는 것이다.

 이미 고려대·순천대와의 협약을 체결한 패밀리 닥터 제도는 향후 지방의 12개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확대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중소기업청이 주관해 오던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을 올해부터 협회가 전담한 것도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 9월 성황리에 개최됐던 이 행사는, 내년에는 대구에서 개최 예정인 APEC 중소기업장관 회의와 동시 개최될 예정이다. 

 특히 유 회장은 10월6일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의 미국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LA 소재 한미신용정보와 업무 협약을 맺고 다운타운에 ‘이노비즈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이노비즈지원센터는 미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각종 법률, 금융, 회계, 자산 관리 및 마케팅 등 미국 현지 사정에 적합한 One-Stop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LA 한미은행도 독점적으로 제반 금융 서비스를 지원하게 된다.

 협회 설립 2년 동안 보여주었던 유 회장의 개척자 정신은 그의 경영 활동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주)IMRI 회장직을 맡고 있는 유 회장의 창업 및 성장 과정은 ‘패기, 도전, 창조’라는 사훈에 걸맞은 길을 걸어왔다.



 유일한 소아마비 보이스카우트

 유 회장은 1990년대 초 미국 LA에서 북한투자 전문 컨설팅을 시작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관리와 북한의 외교관들을 초청하여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사업을 이끌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 들어와 제조업에 기반을 둔 경협사업의 일환으로 아이엠알아이를 설립했다.

 지금은 유니코텍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아이엠알아이에서 운영하던 북한 관련 부분만을 분리하여 북한에 대한 투자 컨설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등 본연의 분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국의 유니코텍은 현재 일본에 있는 유니코텍을 통해서 북한의 S/W 개발 및 판매를 수행하고 있으며, 북한 현지 공장을 통한 임가공 사업 및 북한 투자 시찰단, 북한 기업설명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상표 및 특허등록과 관련된 업무로 업무영역을 넓혀 가고 있으며, 10여 년 넘게 진행했던 북한 분야의 전문성과 북한 네트워크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사업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감히 북한에 대한 투자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당시 유 회장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신개척지에 대한 컨설팅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경영 성과 외에 유 회장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외모에 한 번 더 놀란다. 유소년을 연상케 하는 얼굴과 피부, 그리고 어릴 적 심한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용불량자라는, 기업인으로서는 최악의 조건을 안고 있다.

 그러나 유 회장은 신체적 핸디캡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한다. 오히려 남들과 나란히 서고 같이 뛰고 함께 뒹굴며 생활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마  소아마비를 앓은 전력의 보이스카우트로는 제가 유일할 겁니다”고 유 회장은 말한다.

 물론 좌절의 시기도 있었다. 또 그 여파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 회장은 대학 졸업 이듬해 처음으로 사업에 손을 댔다. 옛소련에서 보드카를 수입해 팔았던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인지 부도를 냈다. 이후 기술복덕방, 번역, 관광 가이드, 잡지사 통신원, 모스크바 한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쌀장사 등을 전전하다 미국에서는 반년 동안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그는 지금도 첫 사업의 부도가 안겨준 금융 거래에서 붙게 된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표이사 사장이 아닌 회장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100년 살아남는 중소기업

 인터뷰 초기 정부의 단기 처방이 아닌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을 강조했던 유 회장은 말미를 중소기업인들의 모럴 헤저드로 이었다. 중소기업 발전에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되는 만큼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도 함께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3년 이상 동일 사업을 지속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전제한 유 회장은 그 이유로 “돈을 챙기고 매각하느냐, 아니면 계속 사업을 영위하느냐를 고민했던 게 지금까지의 벤처기업인들이었다”고 말한다.

 이에 유 회장은 IMRI를 ‘1년은 살아남는 기업으로 가꾸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기술력으로 살아남는 중소기업의 꿈이 유 회장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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