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사들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국내 통신 기술이 동남아를 거점으로 미국과 유럽으로 퍼지고 있다. 97년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해외 진출’ 씨앗이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해외 진출은 포화 상태에 이른 통신업계의 탈출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임에 틀림없다.



 변하는 세계 통신산업 환경 속에서도 국운을 걸고 CDMA를 선택, 우리나라는 완전히 CDMA 종주국으로 자리잡았다. 이뿐 아니라 범국가적인 통신인프라 확충을 통해 세계 최고의 통신인프라를 갖춘 데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정보통신 테스트베드로 호평을 받았다.

 이제는 통신산업의 꾸준한 발전으로 수출 기지가 되고 있다.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통신업체들이 해외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네트워크 기술을 전수하는 컨설팅이나 무선인터넷 플랫폼 수출이 해외 사업의 주력이었다면 앞으로는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서비스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선 한류 열풍도 기대된다.

 SK텔레콤이 미국 3대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 어스링크와 합작사를 설립키로 하고 KTF가 ‘글로벌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통신업계의 해외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KT도 동남아 시장을 넘어 이란 등지에서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있다. LG전자는 캐나다의 최대 통신장비업체 노텔네트웍스와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KTF의 단말기  자회사 KTFT가 중견 업체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미국 시장에 수출키로 했다.

 SKT와 KTF의 해외 시장 진출 움직임은 음성과 데이터 등 각 부문에서 이미 포화 상태에 진입한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다. 더 이상 국내에서 새로운 금맥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안태효 KTF 전략기획부문 글로벌사업실장은 “이미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로 통신업계의 해외 진출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는 역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해외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SKT는 1999년 5월 몽골 제2이동통신 스카이텔 지분 인수를 통해 이동전화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출발했다. 이어 2003년 7월 베트남 제3이동통신사에 지분을 투자해 에스폰(S-Fone)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개시하는 한편, 이스라엘·대만·싱가포르·필리핀·인도네시아 등지에 무선 인터넷 플랫폼과 부가서비스를 수출했다.



 국내 이동통신시장 포화… 해외 진출 필수

 2004년 2월엔 중국의 제2 이동통신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과 중국 최초 해외 합작 통신서비스업체인 유니에스케이(UNISK)를 설립, 세계 최대인 중국 무선 인터넷 서비스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SK텔레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과 비교해 보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SKT는 2004년 3월 미국의 최대 CDMA 이동전화사업자인 베리존 와이어리스사와 EV-DO 분야에서 제휴를 체결하고 진출 속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인터넷 제공 업체인 어스링크사와 조인트벤처 설립을 통해 아시아 네트워크 운용사업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이동통신서비스시장에 진출했다.

 SKT는 2억2000만달러(총 4억4000만달러 규모)를 투입해 어스링크와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한 것이다. 이번 합작법인 설립은 미국 시장은 물론 향후 캐나다, 중남미 시장까지 겨냥한 전략적 포석이다.

 SK-어스링크는 전국 네트워크운용사업자의 네트워크를 임대하는 부분 가상이동통신사업자(MVNO) 방식으로 올 3·4분기 안에 미국 전역에 음성과 데이터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SKT측은 다양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특화된 마케팅을 전개, 2009년까지 330만명의 가입자와 24억달러 수준의 연간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그동안 중국과 몽골,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 국한됐던 진출 지역이 선진 핵심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KTF는 현재 네트워크, 마케팅 등 이동통신 사업 전반에 대한 컨설팅 및 무선 인터넷 플랫폼 등 솔루션 제공을 통해 7개국 8개 사업자와 사업을 진행중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보기술(IT) 업체 ‘인포콤’과 함께 현지에 모두 220만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 발신자 정보 전달 등 휴대전화 부가 서비스에 들어갔다.

 KTF는 향후 고도 성장이 예상되는 무선 데이터시장 선점을 위해 조인트벤처 등을 활용한 해외 시장 직접 진출도 추진중이다.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에 집중돼 있는 지역도 확대한다. 사업 영역도 장기적으로는 직접 투자 또는 전략적 제휴로 바꿔 나간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 수익 창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KTF측은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직면한 만큼 올해가 국내의 인적, 물적 인프라를 해외로 돌려 ‘글로벌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매우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KTF 자회사 KTFT가 2년간 미국 시장에 400만대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수출키로 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국내 중견 업체의 해외 시장 수출로는 사상 최대인 데다 이동통신업체 자회사의 단말기 수출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유선업체인 KT도 베트남과 태국, 이란, 중국, 러시아, 몽골, 방글라데시에 이어 올해도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키로 하고 현재 다각적인 진출 전략을 검토중이다. KT는 이들 지역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초고속 인터넷망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KT는 베트남과 태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한 데 이어 동아시아를 넘어 이란과 사하라사막을 정보의 바다로 바꾸고 있다. KT는 올해 말까지 이란의 테헤란 등 주요 도시에 10만회선 구축과 망관리시스템 등 솔루션까지 구축하게 된다. 이 사업은 초고속 인터넷을 해외에 수출한 최대 규모다. 또 알제리에도 진출 교두보를 확보, 초고속 인터넷시장에서의 우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KT는 오는 2007년까지 해외 사업 매출 규모를 7000억원선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LG전자가 북미 최대 통신장비업체 노텔 네트웍스와 통신장비·네트워킹 솔루션 분야에서 공동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합작법인 ‘LG-노텔 네트웍스(가칭)’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점도 주목받고 있다.

 양사는 지분을 절반씩 보유하는 합작법인을 국내에 설립키로 하고 MOU 협상 마감 시한인 오는 6월말까지 합작사의 구체적인 부문들을 마무리한 뒤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무선 인터넷·부가서비스 시장에 군침

 이동통신업체들은 무엇보다 무선 인터넷과 솔루션, 컬러링과 같은 부가서비스 수출 등으로 해외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002년 4월 이스라엘에 1000만달러 규모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을 수출했다. 2003년에는 대만·태국·카자흐스탄 등에도 50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가장 성공적인 부가서비스 모델로 평가받는 착신음 변경 서비스인 ‘컬러링’은 불과 2년만에 수출 규모 1000만달러를 달성하는 개가를 올렸다. 작년에는 미국 최대 CDMA 이동전화사업자인 베리존와이어리스사와 데이터로밍 및 컬러링 서비스 등에서 상호 협력키로 했다.

 KTF는 지난달 대만 CDMA 신규 사업자인 비보텔레콤과 CDMA2000 1x와 EV-DO 무선 인터넷 기술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또 인도네시아에 부가서비스 및 무선 인터넷 서비스 제공을 위해 조인트벤처 형태로 설립한 프리콤스는 최근 서비스를 개시, 2007년까지 1000만달러 규모의 부가서비스 수출이 예상된다.

 KT는 온라인게임을 연이어 해외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KT가 판권을 투자한 3D 온라인 게임인 ‘헤르콧’은 6월부터 미국 전역에 서비스된다. 헤르콧은 지난 2월에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헤르콧과 마찬가지로 KT가 판권 투자한 온라인 탱크대전 게임 ‘팡팡캐논’도 5월부터 완마 게임 포털을 통해 중국 전역에 서비스될 예정이다.

 김한석 KT 글로벌사업단 단장은 “베트남·태국 등 KT의 초고속 인터넷이 진출한 국가는 물론, 일본·중국 등 더 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온라인 게임의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도 동반 진출 기대

 특히 시범 서비스중인 DMB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 진출을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위성DMB 시험방송을 시작한 TU미디어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통신·방송 업체 및 정부 관계자들이 13차례나 방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미 일본 NHK, 프랑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 유럽방송광고공사 회장단과 영국의 라디오스케이프, 싱가포르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TU미디어를 다녀갔다. 세계 DMB시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형성(3억2500만달러)돼 2012년에는 연 3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선인터넷 솔루션 등 부가서비스 분야가 수출의 주종을 이루면서 중소기업의 동반 진출 효과도 커지고 있다. 이통사들은 기술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해외 진출 노하우 및 네트워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망 중소기업과의 공동 진출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KTF는 보유중인 특허권을 중소기업에 제공, 이를 기반으로 중소기업이 해외에 이동통신 서비스 및 장비 등을 수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미 KTF는 중계기 감시 장치 특허권을 MTI에 넘겨 인도에 수출하도록 성사시켰다. MTI는 2006년까지 1만여대를 수출하게 됐다. KT도 태국의 초고속망 구축 사업에서 망 구축과 콘텐츠를 동시에 공급하게 돼 초고속 관련 사업체와 공동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진출은 국내 솔루션 중소기업의 수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Interview



안태효 KTF 글로벌사업실장



“우리가 세계 통신

트렌드 만들 것”



  “이동통신사의 해외 진출이 ‘정보기술(IT) 한류(韓流)’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KTF의 글로벌 사업을 담당하는 안태효(43) 전략기획부문 상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동통신 데이터서비스의 강점이 해외에서 충분히 통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처럼 휴대폰으로 TV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이동통신 환경을 갖춘 나라는 없다며 일본보다 2~3년은 앞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항공산업처럼 진출 지역들과 제휴 블록을 구축하게 되면 새로운 이동통신 트렌드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국내 통신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하고 우리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되면 ‘한국적’ 이동통신 문화가 세계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기술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세계 최고’의 위상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에선 이러한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는 KTF에만 해도 해외 업체가 연간 100회 이상 방문한다고 소개했다. 1주일에 거의 2회에 이르는 수치다.

 해외에서 국내 이동통신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이젠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해외 진출이 불가피하다. 안상무는 “97년부터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했지만 국내 시장에 몰두하는 바람에 해외 사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이제는 국내 시장 포화로 인해 해외에서 성장 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SK텔레콤 등이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성공 사례는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KTF도 해외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를 늘리는 데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글로벌 사업을 담당하는 안상무는 지난해 8월 선임돼 해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수조원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에 선뜻 나설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며 “직접적인 통신서비스 제공보다는 무선 인터넷과 같은 부가서비스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KTF는 실제 서비스 운용을 위한 투자까지는 여력이 없다고 판단, 무선인터넷 사업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무선인터넷과 같은 부가서비스가 투자 대비 수익성이 좋아 효율성이 더 높다는 설명이다.

 KTF로선 중국·인도를 비롯,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이 중점 공략 대상이다. 이는 최근 중국과 인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의 가입자당매출(ARPU)은 10달러 이하지만 시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특히 휴대전화의 경우 한 번 쓰게 되면 서비스업체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KTF는 이들 지역에서 무선 인터넷과 모바일콘텐츠를 중심으로 부가서비스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해외 사업에 대한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 호주· 미국·유럽 등 선진국으로 진출 지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사업 영역도 컨설팅이나 솔루션 수출 중심에서 직접 투자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적극적으로 수익 창출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으로 안상무는 해외 진출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냈다. 빨리 진출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등 떠오르고 있는 시장에 대한 정보는 아직 부족하며 문화적 장벽도 넘어야 한다. 또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우리 이동통신 기술에 대한 국제 표준화도 시급하다. 안상무는 “이를 위해 이동통신사업자들의 역할이 크다”며 “해외 시장 공략과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위해선 SK텔레콤과도 협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끼리 서로 싸우기보다는 호흡을 맞춰야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