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인재 전쟁(War for talent)이니, 국내 모기업 총수들이 이야기했던 ‘천재론’, ‘인재론’이니 해서 기업에서 핵심인재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한두 사람의 탁월한 인재가 수 천, 수 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는 다소 구시대 엘리트주의적 냄새를 풍기는 말도 이제는 그다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핵심인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에서 흔히 통용되고 있는 핵심인재의 개념에는 몇 가지 잘못된 인식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수 학력의 고급 인력=핵심인재’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항상 맞는 말도 아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베스트셀러 소설 <떠오르는 태양>(The Rising Sun)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향후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국으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울이 전 세계에서 인구 1,000명당 박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인천 국제공항에는 지금도 1시간당 한 명꼴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학생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다는 농담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이어진 높은 향학열에 의해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가진 소위 ‘고급 인력’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여전히 ‘핵심인재 부재’를 호소하고 있다.

 일례로 채용전문기업 코리아리쿠르트(2004.8)에 따르면 116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에 이르는 79.3%(92개사)가 ‘핵심인재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반면 ‘핵심인재가 충분하다’는 8.6%에 그쳤다.     

 둘째, 핵심인재에 대한 정의가 불명확하다 보니 대부분의 일반 직원들까지도 자신이 핵심인재 집단에 포함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한 취업사이트(HRKorea)에서 실시한 경력 3년 이상의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77%가 자신을 핵심인재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핵심인재를 자처함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핵심인재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들은 핵심인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공유되지 않았기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가치 설정 전제

 흔히 핵심인재라고 하면 “전문적 과업 능력과 열정을 겸비하고 조직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정의에 앞서 개별 기업이 바라는 가치 설정(value  proposition)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정 기업의 핵심인재가 다른 기업에서도 언제나 핵심인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즉 특정 기업의 핵심인재라면 그 기업이 종업원들에게 기대하는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이를 실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을 강조하는 기업 가치 아래서 지나치게 신중하고 위험 회피적인 인물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의 핵심인력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선진 기업들은 그들의 가치를 반영한 인재상을 설정하고 핵심인재의 선별을 위한 기본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 핵심인재에 대한 중요성을 부쩍 강조하는 우리 기업들은 기업의 가치를 분명히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핵심인력을 선발, 관리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개별 기업에 맞는 핵심인재의 선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의 특성과 그들이 수행하는 직무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인재 부족보다 유출이 문제

 핵심인재가 일시적으로 부족한 현상은 조직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소해 나갈 수 있지만 보다 큰 문제는 그동안 발굴, 육성해 오던 핵심인재가 갑자기 이탈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조직의 핵심역량이 소실될 우려가 있으며, 특히 남아 있는 다른 직원들에 대한 사기 저하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해질 수 있다.

 일례로 이건희 삼성회장의 글로벌 핵심인력 유치 지시에 따라 지난 2002년부터 삼성증권에 입사한 해외 MBA들이 최근 대거 퇴사한 사례가 있다. 채용 비용이나 사내 훈련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조기 퇴직은 조직의 큰 손실로 여겨지지만, 무엇보다도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큰 문제라는 내부의 이야기이다.

 2002년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소재 기업 중 58.1% 정도가 핵심인력 유출에 따른 손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지수는 IMD에서 선정한 50개국 중 40위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CEO의 관심 절실

 앞선 삼성증권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기업에서 많은 지원을 제공하며 육성한 핵심인재가 조직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탈하는 경우는 사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조직에서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이유보다는 핵심인재가 개발되고 육성되며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조직적 토양이 미흡한 데 있다. 우리 기업에서 주로 활용하고 있는 핵심인재 관리 제도는 주로 금전적 보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수 성과자에 대한 유지 보너스(Retention Bonus) 혹은 파격적 인센티브 등이 대표적인 제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 보상제도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하려는 학습 욕구가 강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성취감을 느끼는 특성이 있는 핵심인재에게 충분한 동기 부여 요소로 작용하지 못한다. 즉 선별된 핵심인재에게는 크고 새로운 도전 기회를 제공하여 ‘일’ 속에서 단련시키도록 경력 경로를 설계해야 하며 주위의 견제나 적응상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직 내에서 고립되지 않고 조직과 융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즉 스타를 인정하고 키워 주는 분위기를 조직에 정착시켜 궁극적으로 사람의 역량을 발휘하는 문화를 개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인재 육성·개발의 성공 열쇠는 조직 전체의 성과주의 문화와 시스템, 즉 조직적 토양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핵심인재 관리의 가장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GE의 경우에는 핵심인재 관리를 주요 기능으로 하는 Session C를 운영하면서 이를 승진, 평가·보상 및 교육 훈련 등 전체 인사 시스템의 근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조직 전체의 시스템 및 문화가 핵심인재 관리와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핵심인재 관리에서 CEO의 지원이 가지는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도전 기회를 헤쳐 가는 핵심인재에게는 CEO 등 기업의 최고 경영층에서 직접적인 피드백과 코칭을 통해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보다 더 큰 동기 부여의 원천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