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MS)가 각종 악재에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그동안 MS의 텃밭이었던 대기업 사무용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 국산 솔루션이 채택되면서 한국MS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에 이은 불공정 거래 시비도 MS에겐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최고의 S/W업체라는 명성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MS와 극한 대립을 보였던 하나은행이 지난 7월 사무용 소프트웨어로 국산 S/W인 ‘한컴오피스’를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도입했다. 이로써 ‘IT업계의 공룡’ MS가 사실상 독식하다시피 했던 사무용 S/W시장에서 사실상 ‘첫 번째 패배’를 기록하게 됐다.

 세계 최대의 S/W업체, 윈도란 PC 운영체제로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가진 MS의 명성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국내외 IT기업 등으로부터 불공정 행위로 비난받으며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던 MS로선 불의의 일격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 대표적인 토종 S/W업체 한글과컴퓨터는 꾸준히 사업 영역을 확대, 조만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반 기업들도 MS 제품 구매와 관련, MS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들이 선택하는 일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MS의 제품 판매정책과 사후 서비스 정책 등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가진 MS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국내 기업들은 토종 S/W의 성능이 우수한 데다 기존 업무시스템 적용에 문제가 없다면 MS 제품 대신 채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번 하나은행의 한컴오피스 도입은 한국MS와의 갈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MS와의 불편한 관계를 MS오피스의 경쟁제품인 한컴오피스를 일부 도입함으로써 더 이상 MS의 독점적인 지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하나은행의 이번 결정에 따라 다른 대기업들도 MS오피스와 한컴오피스를 함께 구입해 사용하는 이른바 ‘듀얼 스탠더드’ 방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글과컴퓨터 관계자는 “하나은행 외에도 2~3개 대기업에서 MS오피스와 한컴오피스를 함께 사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MS의 라이선싱 정책 두고 갈등

 하나은행과 한국MS의 갈등은 MS의 라이선싱 정책에서 비롯됐다. 한국MS가 지난 3월 하나은행을 S/W 불법복제 혐의로 고소하면서 국내 최대 SW업체와 대형 은행이 법적 공방을 벌이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한국MS의 기업일괄구매(EA) 라이선스 제도와 관련, 국내 첫 법적 다툼이었다. 마침 EA 계약을 체결한 주요 기업들이 갱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EA 계약은 윈도·오피스 등 MS의 주요 제품에 대해 3년 단위로 사용자 수만큼 라이선스를 주고, 해당기간 동안 제품을 무상 업그레이드해주는 계약방식을 말한다. 단품 구매보다 저렴하고 계약기간내 무상 업그레이드가 장점이긴 하지만 기업내 PC 사용자 수를 판단하는 데 있어 MS와 이용기업 간 입장차이가 큰 문제가 있었다.

 한국MS는 EA 계약분을 제외한 나머지 PC 설치분은 모두 불법복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EA 계약 중 늘어난 PC의 경우 먼저 설치해 사용하고 추후 상호 협의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EA 계약 중 늘어난 PC에 대해 추후 정산하는 절차를 밟는다. 다시 말해 추가계약을 하기보다는 계약 종료 후 연장계약을 하면서 다시 협상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인 것.

 물론 EA 계약대상인 사용자 수도 논란거리였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MS와 하나은행은 EA  재계약 협상을 하면서 사용자 수에서 큰 의견차를 보였다. 한국MS는 총 6500대의 PC에 EA 계약을 해야 한다며 53억원을 요구했고, 하나은행은 본점과 점포의 실제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4500대에 EA 계약이 아닌 오피스 제품 하나만을 구매하겠다고 맞섰다. 금액으로만 20억원 가량 차이가 있었다. 하나은행은 직원 8000명가운데 정규직은 6000여명이며 이중에서도 MS 제품을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직원은 45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국MS는 계속해서 6500개의 EA 라이선스를 요구했다.

 그러다 지난 6월 결국 MS가 손을 들었다. 한국MS는 국내 금융기관과의 관계 및 재계약 불성사 시 시장 점유율 하락 등을 우려해 어떠한 불법복제 행위도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하나은행의 요구조건을 수용, 소를 취하했다.

 한국MS와 갈등을 빚은 뒤 하나은행은 단일 IT 솔루션 공급자에 대한 종속성을 탈피, 복수의 솔루션을 적용하는 이른바 ‘이중(듀얼) 스탠더드’ 정책을 공식화했다.

 전문가들은 MS의 라이선스 정책이 끼워팔기와 중복구매, 단일계약 강요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MS의 기업용 라이선싱 방식인 볼륨 라이선스는 OL(Open License), SL(Select License), EA(Enterprise Agreement), ESA(Enterprise Subscription Agreement) 등 4가지로 나뉜다. 이중에서 기업들은 EA 계약을 체결하는데, MS측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한다는 선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믿는 기업은 거의 드물다.

 EA는 운영체제, 오피스, 클라이언트 제품으로 구성돼 있는데 중복구매 가능성이 높다. 운영체제는 PC를 살 때 번들로 구매한다. 클라이언트 제품도 유사한 기능의 자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MS는 따로따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비용만 높이는 ‘끼워팔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또 단일계약 방식의 강요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기업들은 필요한 제품만을 선택해 단품으로 구매할 수도 있고(Select License), 패키지로 묶어서 구입(EA 계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MS가 이러한 구매방식을 기업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MS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MS의 윈도XP 프로 등이 미국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한국MS측은 S/W 가격이 총판 등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자신들은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MS측이 책임을 유통망에 떠넘긴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공정위 결론에 미국·유럽도 관심

 지난 5월 수백억원 규모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물적 기반 구축사업’에서 한컴의 서버용 운영체제(OS) ‘한소프트리눅스 2005서버 아시아눅스’가 채택된 것도 MS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국가들이 향후 공공 IT사업에서 공개 S/W인 리눅스를 사용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MS의 향후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8월 말로 예정된 공정위의 ‘MS의 끼워팔기 불공정 거래 여부’에 대한 판단에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6월과 7월 MS의 위법행위에 대해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MS측의 요청에 따라 8월 말로 연기했다. 공정위는 내부적으로 ‘MS의 제품 끼워팔기’에 대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공정위가 내놓는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 진행 중인 MS의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리얼네트웍스 관련 소송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우리나라 공정위의 판단결과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메신저 끼워팔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제가 된 것이어서 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은 지난 2001년 9월, MS가 윈도XP에 윈도 메신저를 탑재한 것이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한다는 내용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다음은 다시 2004년 4월 MS 본사와 한국MS를 상대로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그동안 공정위가 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이와는 별개로 미국 리얼네트웍스도 지난해 11월 MS가 공정경쟁을 저해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해 새로운 관심거리로 부각됐다. 리얼네트웍스는 한국 시장에서 MS가 미디어서버와 미디어플레이어를 운영체제에 부당하게 끼워 팔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건은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운영체제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경쟁사와의 공정거래를 막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윈도미디어와 미디어플레이어와 관련한 소송은 미국과 유럽을 제외하고 전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제기됐다.

 공정위와 MS의 ‘제품 끼워팔기’에 대한 신경전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공정위는 윈도 운영체제와 메신저가 별개의 상품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MS는 메신저가 운영체제에 기능적으로 통합된 제품이라는 입장이다.

 또 공정위는 윈도는 운영체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메신저 끼워팔기는 MS의 메신저 선택을 강제하는 거래강제 행위로 보고 있다. 그러나 MS는 메신저는 누구나 언제든지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측은 별개의 상품인 메신저를 윈도 판매를 통해 강제하는 행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다른 메신저 경쟁업체의 공정한 사업기회를 침해하는 공정거래 저해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MS는 메신저를 윈도에 기능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기술혁신행위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의 기술추세에 따라 MS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일단 다음이 제기한 메신저 관련 소송의 경우 약간 성격이 다르다. 다음은 MS의 ‘끼워팔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SK커뮤니케이션스의 메신저인 ‘네이트온’의 급성장과 비교되면서 전략적인 사업 실패를 MS에 전가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번 소송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기술 통합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지에 대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장 지배적 위치 여부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통합화하는 것이 최근의 기술추세이기 때문이다.

 한편 MS는 공정위가 MS의 끼워팔기를 불공정 행위로 판단할 경우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유재성 한국MS 사장은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에서 메신저·미디어플레이어 끼워 팔기 사건과 관련해 불리한 결정이 나온다면 즉각 법정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끼워팔기 사건에 대해 “공정위 결정이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MS가 추구하는 혁신의 방향과 어긋난다면 EU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MS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의 공개 S/W 활성화 정책에 대해서도 “리눅스가 가격이나 성능 측면에서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도 이를 산업화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NEIS의 경우 13억원 가량이 리눅스 플랫폼 구축에 들어갔다. 하지만 윈도 플랫폼으로는 10억원 미만으로도 충분히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낭비”라고 비난했다.

 한국MS가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상당하다. MS는 지난 1999년과 2001년 KTF와 KT에 각각 2억달러와 5억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MS=한국기업’이라는 노력에도 한국MS는 ‘반독점 다국적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하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더욱 많다. 한국MS가 각종 곤혹스러운 악재를 어떻게 뚫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