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들뜨는 최고의 명절이다.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는 만큼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하니 아무튼 두둑한 떡값을 기대하게 마련인 시기다. 하지만 떡값을 쥐어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이 떡값이지 여간 고민되는 것이 아니다.

 석과 설을 앞두고는 거래하는 사람들끼리 ‘명절 전에는 얼마라도 생각해주세요’, ‘네, 얼마까지는 해드려야죠’라는 말이 흔히 오갈 만큼 명절을 앞두고는 해묵은 빚을 정리해주는 것이 전통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명절을 넘기는 빚은 사소한 것이거나 악성채무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명절은 자금이 필요한 때이다.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 이 시기를 노려라’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일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반은 맞는 얘기다. 그러나 떡값을 준비하기 위해 혹은 묵은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금쪽 같은 부동산을 처분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성인군자(?)일 것이다. 그만큼 현실적이지 못한 얘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 망했소. 그러니 얼른 사가시오’라고 하기보다는 ‘자금 사정이 딱해 급히 내놓게 됐습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자존심 상하지 않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못이기는 체하며 상대방의 사정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듯 급매물을 구할 수도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분은 평상시 부동산에는 눈도 돌리지 않다가 연말연시가 되면 언제든지 계약할 수 있도록 몇 억원의 실탄(?)을 준비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주식을 좀 한다”고 하는데 사무실까지 있고 몇 억씩 동원할 능력이 있는 것을 보면 채권 장사나 사채업 전주(錢主)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채업자가 받는 담보라는 것이 일반 금융권에서는 담보로 쳐주지 않는 부동산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담보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떼일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시 말해 사채업자가 잡는 담보란 그 물건이 가지는 마지막 가치일 수 있으며 가치를 조금이라도 과대평가하게 되면 그만큼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사채업자의 감정이 가장 예리한 감정일 수 있다. 



 명절 앞둔 급매물을 노려라

 아무튼 이분은 충분한 실탄과 예리한 시각으로 보통 거래가격의 절반 이하로 물건을 잡는 데 일가견이 있다.  “요즈음 사업하기 힘드시죠? 연말에 들어갈 곳이 어디 한두 군뎁니까?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요긴할 때 쓰시고 사업 잘 되시기 바랍니다”라며 거래와는 별로 상관없는 말을 하곤 한다. 매매라는 것이 이론상으로야 ‘얼마에 판다’와 ‘얼마면 산다’고 합의할 때 이뤄지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분이 상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기분’ 때문에 대강이 맞춰진 상태에서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정곡을 찔리면 아프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감정이 상하는 법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부채 문제로 고생하는 농민들이 많을 것이다. 큰 재해를 입어 굉장히 급하게 나온 매물이 있었다. 시세의 절반 정도 되는 가격이었고 풍경이 수려해 전원주택 부지로 손색이 없었다. 계약금이 건네지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이었는데 매수인이 무심코 ‘돈 자랑’을 하게 됐다. 남편 직업이 무엇이고 전에 샀던 상가건물의 세입자들이 속을 썩이고 있다는 둥…. 자신의 몸과도 같은 땅을 파는 사람 입장에선 염장을 지르는 소리가 되었고 결국 “내가 당장 굶어 죽을지언정 당신한테만은 못 판다”며 계약이 깨지고 말았다.

 부동산을 파는 사람은 시세보다 더 받으려 하고 사는 사람은 더 싸게 사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급하게 내놓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고 대개 그 사정이란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일 것이다. 만일 경매로 나오게 될 물건이지만 부채가 적어 급매로도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급매로 팔면 경매가격보다는 좋은 가격을 쳐줄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말을 꺼낸다면 ‘얼씨구나 좋다’ 하고 받아들일까? 아니다. 접근 방식이 틀렸다. ‘경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 금방 해결될 문제니 당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응답이 올 것이다. 아무리 경매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도 집주인 입장에서 ‘경매’라는 단어는 죽기보다 꺼내기 싫은 말이다. ‘이 부동산을 탐내고 있는 손님이 계신데 어떻게 파실 의향은 없으신가요?’라고 접근하면 ‘글쎄 가격만 맞는다면 안 팔 것도 없지요’라는 응답이 올 것이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시작했다가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까지 진행되면 ‘에누리 없는 장사 없다고 싼 맛이 있어야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라며 가격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끝까지 ‘경매’라는 단어는 사용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상호 ‘경매’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사정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투자 시기에 관한 얘기를 한다면서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라는 것이 물건 위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완벽한 물건도 없고 완전히 쓸모없는 부동산도 없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결정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성적으로 결정한 일이라도 감정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감정은 거래에서 미묘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지만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따라 몇 천만원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거래이기도 하다. 



 ‘물건’을 보는 안목 필요

 지난번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필자에게는 ‘지금이 과연 부동산을 구입할 적기인가?’라는 질문이 자주 들어온다. 주택의 경우 실수요자라면 언제든지 능력이 닿는 한 빠르면 빠를수록 내 집 마련은 서두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부동산의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주택이 아니라면 투자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부동산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왜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가?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는 것은 이득이 있다는 것이고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비싸게 팔거나 싸게 사는 것 둘 중의 하나이다.  비싸게 판다는 것은 지가상승의 기대가 높은 지역이거나 부동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일 것이며 어떻게 하면 비싸게 팔 수 있는지는 딱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용도와 구역에 따라 땅값은 천양지차다. 주거지역이냐 상업지역이냐에 따라, 같은 주거지역이라도 일반주거냐 전용주거냐 1종, 2종, 3종이냐에 따라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난다. 용적률이나 건폐율, 건물의 층수 제한에 대한 차이도 있거니와 어떤 용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지도 다르기 때문이다. 룸살롱은 주거지역에서 허가가 나지 않고 상업지역이라야 가능하다는 식의 차이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또 같은 농지라고 하더라도 농업진흥구역, 보호구역, 관리지역에 따라 1:2:3 정도의 가격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용도지역이나 구역은 개인이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만일 농지를 대지 등으로 바꿀 수 있다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임야의 형질변경이나 농지 전용허가를 받은 것만으로도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 이것이 일반인으로서 할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중개인은 곧 ‘정보’다

 그런데 농지, 그것도 절대농지라 불리는 진흥구역내 농지만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흥구역 농지라도 전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원두막 수준을 지을 수 있는 정도여서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농지전용을 생각할 수 없다. 진흥구역은 오로지 농사만 지을 수 있는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농사를 지을 사람도 아닌데 절대농지를 찾는다?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어떤 특허 기술-상용화되면 엄청난 국가경제적 이익은 물론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을 보유하고 있는데 절대농지에도 연구실이나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가상승이 예상되는 개발예정지라도 진흥구역이라면 가격은 낮은 편이다. 이런 절대농지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게 된다면 돈을 버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은 아주 특수한 사례가 되겠지만 부동산을 비싸게 파는 일은 그만큼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영역임을 말하고 싶다.

 이제 이득을 보기 위해 남은 한 가지 방법은 싸게 사는 일이다. 싸게 산다면 공경매나 급매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물론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경제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매도, 매수 시점을 잡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연륜과 경험 내지는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투자는 정보 싸움일 수밖에 없는데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는 대부분 개인이 쌓아온 인간관계에서 나오게 된다. 개발계획이랄지 대기업 공장의 대규모 신설, 증설 계획 등은 비밀 유지를 하며 수립되지만 어떠한 경로건 미리 확보할 수만 있다면 굉장한 투자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겠지만 그만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부동산을 거래함에 있어 직거래보다는 중개인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직거래를 하면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지만 다양한 물건을 접하기 어렵고 가격 조정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개인을 브로커라며 백안시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해서 의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해 중개인을 선택하는 것인 만큼 충분히 그들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어떻게 하면 중개인이 내 입장에서 일을 하도록 만드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중개인은 물건을 보여주고 정보를 제공한다 하여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계약서를 써야만 수수료라는 수입이 생긴다. 따라서 내 편에서 일하게 한다는 것은 내가 계약을 한다는 신뢰를 중개인에게 심어주는 일이다. 중개인은 많은 물건을 확보하고 있지만 모든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팔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물건을 추천하게 된다. 이런 중개인을 많이 확보하고 있을수록 가만히 앉아서 싸고 좋은 물건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싸게 사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란 말도 있듯이 부동산 거래에 있어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매수인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계약이 이뤄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은 살 필요가 없고 다른 물건을 고르면 그뿐이다.  필자가 부동산과 관계된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어디 좋은 물건이 없느냐고 의뢰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면 내게 물어보기에 앞서 당신이 직접 그 지역 중개업소를 방문하여 있는 그대로 얘기를 나눠보라고 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물건을 보고 나면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만큼 부동산을 경험하는 것이고 자신의 인맥을 쌓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도 ‘가치투자’로 접근

 부동산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때 샀다면…’ 하는 후회를 많이 듣게 된다. 한 가지 재밌는 일은 ‘너무 비싸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가격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말을 그때도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매수 적기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후회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동산 기사를 읽다 종종 ‘부동산’이란 단어를 빼면 주식에 관한 내용인지 부동산에 관한 기사인지 헷갈리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증시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차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주식과 부동산은 서로 접근하는 방향이 다른데 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올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매수 타이밍도 그중 한 가지일 것이다. 주식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증권맨들은 하루 종일 모니터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데이트레이더라는 말도 있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 거래가 가능하지만 부동산 투자는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수익을 얻기까지도 몇 년 이상이 걸린다.

 언젠가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1억원을 맡기는 손님이 10억짜리 손님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증권회사 입장에서는 10억을 갖고 1년에 1번 거래하는 손님보다 1억원으로 10번 거래하는 손님이 낫다. 증권사의 관심은 투자자가 이익을 보느냐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잦은 거래를 하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치투자가 유행하고부터는 이런 태도가 많이 바뀌고 있는 중이란다. 주식투자를 통해 손실을 입고 결국 투자자가 증시를 떠나게 되면 장기적으로 수입원이 없어지기 때문에 증권사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잦은 거래를 유도하기보다는 신중하게 투자수익이 기대되는 종목 위주로 장기적 안목으로 상담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도 잦은 거래를 유도하면 수수료만 챙긴다며 싫어해 다른 증권사로 옮기는 경우도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투자타이밍은 ‘없다’?

 이는 부동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동산은 주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래비용이 많이 든다. 매입 가격에서 10% 가량 오른 정도로는 비용 정도 건진 것으로 이익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주식도 가치투자가 유행하는데 부동산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선 장기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이 살 때’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그렇다기보다는 장사꾼의 사탕발림일 수 있다. 오히려 신중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보다 솔직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의 주제가 투자 타이밍이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식은 투자 시점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지만 부동산은 그 정도가 덜하다. 아니 오히려 ‘인플레이션 헤지’라는 표현도 있을 만큼 명목상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일은 예외적이고 물가상승률만큼 가격이 오르지 못할 경우 떨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될 뿐이다.

 지금이 살 때냐고 묻는다면 거의 대부분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싸게 살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