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바(wa-bar.co.kr)’를 세계 맥주 전문점 분야 국내 1위 브랜드로 키워낸 이효복(38) 인토외식산업 사장. 학생 시절의 그는 그야말로 ‘청개구리’였던 모양이다. 대학 졸업반 때도 그는 취업에 매달린 친구들과 달리 휴학계를 내고 장사에 정신이 팔렸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공부보다 ‘돈 버는 일’이 재미있어서였다. 누가 뒷돈을 대준 것도 아니다. 그는 용돈으로 모은 돈 100만원으로 행상부터 시작했다. 현재 와바 브랜드로 425억원 매출액(2004년·가맹점 기준)을 올린 비결도 밑바닥부터 경험한 ‘잡초 근성’ 덕분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취업 대신 창업을, 특히 점포서 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젊은 예비 창업자라면 귀기울여 들어볼 만한 얘기다.



 23세 때 남대문서 생수 판 ‘학생 장사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이 사장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첫 눈에 그의 꽁지머리가 들어왔다. 1998년부터 길렀으니 벌써 7년이나 됐다. 이 사장은 “명함 한 장만 줘도 100% 기억하기 때문에 길렀다”고 말했다.

 한때는 회색 머리도 했고 수염을 기른 적도 있다고 했다. 자기 몸까지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그는 장사꾼 끼가 넘쳤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사업경력만 벌써 15년이다. 점포 사업자로 출발, 이제는 프랜차이저로 성공자 반열에 올라섰다.

 “제가 송추방위 출신이거든요. 제대할 때 선배가 남대문서 ‘알바’(아르바이트) 좀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새벽 2시부터 아침까지 먼지 뒤집어쓰고 ‘골라골라’를 외쳐댔죠.”

 그때가 장사에 처음 손을 댄 1989년 10월께다. 그는 남대문시장 페인트타운 91호 판매점원 알바 100일째 되는 날 ‘사표’를 냈다. 직접 내 사업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첫 사업 아이템은 생수. 요즘처럼 ‘진로석수’가 나오기도 전이었지만 지하 매장 특성상 1시간만 지나도 목이 칼칼해지는 경험에 착안,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물장사’에 나선 것이다. 현장에서 사업 아이템을 포착한 셈이다.

 말이 사업이지 변변한 점포도 있을 리 없었다. 용돈 100만원을 모아 냉장고 하나 달랑 사들고 생수업을 시작한 그는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뛰어다녔다. 그때 그의 나이가 만 23세.

 “할아버지가 양조장을 하셨고 부친께선 명문대 출신에 제약업체 사장을 하신 분이죠. 이렇게 ‘거친’ 사업은 제가 처음 한 셈이에요.”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1992년 복학한 그는 아예 모든 수업을 야간으로 신청했다. 낮엔 상가분양 부동산 회사에 다니기 위해서였다. 정식 직원이 아니라 영업에 따른 인센티브 조건의 전문 브로커였다. 당시 분당과 목동 등 신도시를 훑으며 ‘영업’에 눈을 떴다. 이 사장은 “그때 3년간 부동산 현장을 돌아다녔던 게 현재 입지를 보는 시야를 키웠다”고 회고한다.

 1994년 8월 졸업 후 그는 처음으로 점포를 얻고 자영업자로 나섰다. 부동산 브로커로 번 21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서울 정릉1동 주택가에서 ‘책대여점’을 시작했다. 이후 비디오방, 포켓볼장, 노래방, 소주방 등 당시 ‘떴다’ 하는 아이템은 죄다 건드렸다.

 “한 업종을 1년도 채 안 했어요. 권리금 없이 들어가 매출 좀 올려놓으면 몇 배씩 뻥튀기를 해서 넘길 수 있었거든요. 그때는 그게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장사한 셈이죠.”



 실패 맛본 ‘웨스턴바’로 재기

 소위 권리금 장사로 2년 새 자본금을 10배로 늘린 그는 1996년 돈암동 태극당 뒤편 65평 매장에 ‘웨스턴바’를 차렸다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2억원을 한방에 날린 것이다.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그가 다시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던 건 모든 사업장을 자신의 손으로 꾸민 독특한 인테리어 개발능력 덕분이었다. 비디오방을 운영하던 당시 돈암동 일대에만 경쟁점포가 18개 있었는데, 남들은 손님을 더 끌 욕심에 방 갯수를 늘렸지만 자신은 로비를 키워 ‘만남의 장소’로 배려한 덕에 단골이 넘쳐났던 것. 이를 눈여겨본 인근 점주들이 이 사장에게 ‘인테리어 주문’을 청탁해온 것이다. 그는 “뭐든 한 가지만 제대로 전문성을 갖춰도 사업은 쉽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이 사장은 전문 인테리어 사업자로 나섰다. 번듯한 간판도 없이 실력이 있다는 소문에 힘입어 비디오방은 물론이고 노래방, 예식장까지 설계해줬다. 당대 최고 인기 사업이었던 ‘콜라텍’까지 손길을 뻗쳤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 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콜라텍 인테리어를 시작하면서 서울, 부산, 부천, 인천 등 여기저기 벌여놨던 공사가 죄다 부도를 맞은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모든 공사가 올스톱됐고 정확히 빚만 1억2000만원을 지게 됐다.”

 떼인 돈을 받으려 부산 밤거리를 전전하다 자살 충동도 느껴봤다는 그는 자신을 ‘망가뜨린’ 웨스턴바 사업으로 재기에 나섰다. 1999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웨스턴바 ‘텍사스’ 1호점을 개업해준 후 2000년까지 1년 새에 16개 점포 인테리어를 해줬던 것.

 “인테리어 업자가 점포 선정, 메뉴판 작성, 식자재 유통까지 도맡아 컨설팅을 해준 것이죠. 그랬더니 주위에서 아예 프랜차이즈를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40평 이상 점포만 매년 30~40개씩 개업 

 ‘한번 와서 보라’는 뜻의 브랜드 ‘와바’를 서울 신문로 1호점에 냈던 게 4년6개월 전인 2001년 2월. 탁 트인 실내에 눈 내리는 ‘스노우바’와 얼음이 채워져 있는 ‘아이스바’를 꾸민게 직장인 기호에 딱 들어맞았다. 그해 5월까지 3개월간 직영점도 없이 10호점을 개설한 그는 2001년 8월 ‘인토외식산업’이란 법인을 설립, 프랜차이저로 나서게 됐다.

 현재 와바는 국내 173개, 중국내 5개 점포로 성장했다. 이 사장이 꺼내놓은 매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54개 점포서 올린 매출액만 425억원(가맹점 기준)에 달한다. 1개 점포당 2억8000만원 매출을 올렸다는 계산이다. 월평균 2300만원 안팎이다.

 “173개 점포 평균을 내보면 요즘 같은 여름철엔 월 2400만원이구요, 겨울철엔 2100만원 정도 나옵니다. 총 투자비 2억5000만~3억원 들여 40평 점포를 내면 월 750만원 정도는 벌어들이는 셈이죠.”

 그렇다면 와바는 뭐가 다를까. 일단 세계 맥주 전문점답게 맥주 종류가 많다는 게 경쟁력이다. 세계 30개국의 맥주 120여 종류가 있다. 보통 20~30종이 고작인 타점포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이 가운데 하이네켄과 밀러, 코로나가 가장 많이 팔린다. 매출액 비중을 들여다보면 외국 맥주 45%, 국산 맥주 40%, 양주 10%, 와인 5% 등이다.

 특히 성·비수기 구분이 따로 없다는 게 이 사장이 가장 강조한 대목. 일반 호프집들이 겨울 장사가 여름의 절반도 안 되는 것과는 딴판이다. 매출액 차이가 많아봐야 20~30% 수준에 그친다. 스노우바와 아이스바 등 튀는 인테리어는 물론 실내 카지노를 두어 음주에 놀이를 접목, 단골층을 확보해놓은 게 비결이다.

 특히 밤 9시부터 11시30분까지 2시간30분 동안에 하루 매출액의 70%가 팔리는 구조다. 주변에 사무실이 많아 직장인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고객층은 30~40대가 가장 많다.

 그는 돈 버는 재주가 남다르다. 포켓볼장 시절엔 ‘20분 무료 서비스’를 했고 비디오방 경영땐 ‘무료 음료’로 손님을 끌었다. 현재는 병맥주 뚜껑을 가득 채우면 평생 무료 안주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펼친다.

 그의 마케팅 가운데 재미있는 대목이 메뉴판 장사다. 보통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메뉴판 하나를 새로 만들면 1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5000만원씩 남는 장사를 한다. 메뉴판에 맥주 브랜드 광고를 삽입, 업체에서 광고비조로 돈을 받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체인모집 광고를 내본 적이 없다. 창업 박람회도 나간 적이 없다. 순전히 입소문에 의지해왔다.



 불황 탓하는 사람은 안 돼

 그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불황 탓하지 말라”고 말한다. 불황 때 통하면 호황 땐 더 잘나간다는 게 ‘이효복식 사고’다. 실제 와바의 역사를 보면 2001년 30개→2002년 73개→2003년 124개→2004년 154개→올해 8월말 현재 173개로 매년 30~40개씩 점포망을 확장해왔다. 173개 가맹점 중 폐점한 곳은 딱 9개 점포다. 폐점률 5.2%면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를 통틀어도 상위권에 속한다.

 “사실 국내에서 웨스턴바라는 업종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고작 10~20개의 가맹점을 둔 브랜드들이 고작이죠. 그런 데 비하면 와바는 괜찮은 편이에요. 한 달 평균 10여건씩 상담이 진행 중이니까요.”

 그는 “2003년 10월 카드한도 축소 발표 전까지는 월 평균 매출액이 3100만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면서 “와바도 불황을 비켜가지 못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즘 고깃집 프랜차이즈 ‘화로연’ 확장에 한창이다. 현재 직영점 2곳에 가맹점이 3곳이다. 법인명 인토외식산업이란 이름에 걸맞게 외식업으로 제2의 도전에 나서고 있는 셈. 와바는 총 35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는 “예비 창업자라면 최소한 6개월 이상 그 업종에서 밑바닥부터 배우고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 자신이 산전수전 다 겪은 자영업자 출신이다. 그는 “반짝 하는 유행 아이템은 내가 다 해봤는데, 별로 남는 게 없다”면서 “본인이 자신 있는 업종이라면 그게 유망사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