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전 영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인수합병팀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원자들 중에는 해외 유명대학 MBA 과정을 마치고 온 인재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정작 채용된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나 국내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내 금융회사에서 7년간 근무한 순수 한국 토종 김재선씨였다.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누구보다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면접관들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는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는 없었지만, 중학교 시절 필리핀에서 진행되었던 한 청소년 단체 행사에 참석한 후로 꼭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도 외국문화원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그들 문화를 익혔다. 또 회사에서 시행되는 해외연수 기회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주말마다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 교회 활동에도 참가했다.

 영국계 금융회사로 옮긴 이후 김재선씨는 실력을 인정받아 홍콩과 일본지사를 거쳐 현재는 영국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해외에서 몇 년을 지내다 와도 글로벌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김재선씨처럼 순수 국내파이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얼마든지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해외 학위나 어학 실력이 있다고 해서 글로벌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는 적응력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실력이다.



 언어는 기본, 문화 이해해야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 80년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발생한 일이든 실시간으로 방송을 통해 알게 돼 전 세계가 하나의 국가나 사회가 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이제 미래의 인재는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국내 사정에만 밝아서 일을 계획하거나 처리해서는 안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다른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여러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점점 더 중국이나 일본, 미국 등으로부터 정치, 경제, 문화적인 영향을 심각하게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글로벌 사고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대기업에서 글로벌 사업추진 실장을 하면서 이리듐 사업과 몽골, 러시아, 베트남, 중앙아시아 국가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해외 사업을 하게 된 주요한 동기와 이유는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과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와 통제로 인해 이익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아가 우리나라 기술을 현지 기술표준으로 사용케 함으로서 한국의 발전 가능성을 넓혀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

 덕분에 해외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갈 기회를 가졌는데, 이때 가장 힘들었던 점이 현지의 문화와 특징을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부분이었다. 이는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현지인의 생활 문화와 마인드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해외에서의 모든 활동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외국 생활과 외국인 접촉에 대해서 즐거움을 가지는지, 김치나 고추장 없이도 식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지, 외국인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등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개방적이어야 하며, 어느 나라 사람이건 만나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국제 사업일수록 개인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 적으므로 정직하고 진실한 대화와 행동이 밑받침돼야 한다. 자기 입장에 너무 빠져 자기 이익만을 주장하다 보면 전체적으로 합의를 이루어나가기가 어렵다.

 필자는 베트남에서 컨소시엄을 진행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을 막론하고 진실을 바탕으로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 장사의 지름길임을 깨달은 적이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지만, 진실하고 공정한 업무처리가 해외 현지인들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즉 비즈니스는 언어를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역 ‘현지통’ 수요 급증

 무엇보다 이제는 현지 경제상황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지역 전문가는 서로 다른 문화끼리 만났을 때 느끼는 문화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인재를 말한다.

 최근 기업의 인재채용 현황을 살펴보면 싱가포르, 중국, 인도 등 특정 지역 진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그 지역의 전문가를 찾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특정 지역의 시장상황을 잘 알고 있는 지역 전문가는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선두를 달리는 정보통신기업 중 하나인 A기업에서는 6개월째 지역 전문가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이 원하는 인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해외 시장을 개척하면서 단순히 언어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을 선호했다. 하지만 현지 시장을 전혀 몰랐던 사람이 시장을 연구 검토, 경험해 가면서 그 지역에서 사업을 추진하다가 결국엔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만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무런 수익을 거두지 못한 채 해당 지역에서 철수하고 만 일이 비일비재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생각한다면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경험한 내용을 잘 분석하고 보전해 계속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그 투자가 그저 손실로 남지 않게 된다.

 다른 나라 문화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황당한 경험들은 비단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 때문에 상호 인간관계가 깨지고 사업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옛 말에 서울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에 대해 더 많이 말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잘 모를 때는 마치 다 아는 것같이 함부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를 조금씩 알아갈수록 자기가 아직도 잘 모르는 사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오히려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겸손을 배우게 된다. 평생을 살아온 한국에서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 많은데 어떻게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다 이야기하면서 잘 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해외 시장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신문의 국제면을 매일 검토하거나 해외 신문이나 전문지 등을 구독, 평소 현지 시장 흐름을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글로벌 커뮤니티를 활용해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두고 주한 외국계 기업협회나 상공회의소가 개최하는 모임에도 자주 참여해보는 것이 좋다.

 글로벌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지금, 국내적인 시야와 소견만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좁은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과감하게 밖으로 시야를 돌려 많은 것을 한국 밖에서 이루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확한 목표를 세워 지역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누구든 한 지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년씩 걸리게 마련이다. 글로벌화 하겠다고 미주, 유럽, 동남아를 모두 섭렵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을 갖기보다는 한 지역을 타깃으로 삼고, 꾸준히 노력해 그 지역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