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다윗 꺾고 자존심 세울 수 있을까?



 MP3플레이어는 디지털 블랙홀로 불린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총아란 의미다. 삼성전자가 자사 매출 부문에서 1%도 안되는 MP3시장에 주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 중소기업 레인콤에 1등 자리를 내주었다는 자존심 문제까지 겹쳤다. ‘골리앗’ 삼성전자가 국내 MP3시장 선두인 ‘다윗’ 레인콤을 쉽게 꺾을 수 있을까.





 난 3월초 삼성전자 홍보실은 MP3플레이어 관련 홍보에 진력하는 이상 징후를 보였다. 삼성전자 매출에서 MP3플레이어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1%도 안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주일에 한대 꼴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그와 함께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분명히 이례적이었다.

 실제로 홍보실 관계자는 “MP3에 ‘올인’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삼성전자가 지극히 미미한 분야를 차지하는 MP3플레이어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매출 비율 1% 시장 집착 이유

 우선 삼성측의 공식적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MP3플레이어시장이 신흥 시장, 즉 그 성장 가능성을 본다는 측면이다. MP3플레이어의 국내 시장은 2003년 80만대에서 2004년엔 180만대로 늘었고, 올해의 경우 250만대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 시장 또한 지난해 2천만대에서 올해 3천500만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삼성전자의 전망이다.

 여기에 MP3플레이어가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화)의 핵심 기기로 떠오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단순한 음원 재생기기에 그치지 않고 동영상, 게임 등이 결합된 또다른 기기로 급속히 전환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MP3플레이어에서 진화한 동영상 재생기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두번째 이유는 MP3플레이어 소비층이 청소년, 즉 미래의 주요 소비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잡아야 한다는 측면이다. 기업 이미지 고양에 도움이 된다는 간접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들의 취향이 다른 제품의 소비로 직결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MP3플레이어에 대한 ‘올인’에는 자존심이란 단어에 기인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윤종용 부회장은 올 초 열린 고위 경영진 회의에서 삼성전자의 MP3플레이어 브랜드인 ‘옙(YEPP)’을 적시하며 “‘옙’은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디지털 제품에서 앞서가려고 우리가 가장 먼저 시작한 제품인 데도 잘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부회장은 “200~300달러 하는 제품인데 장난감 같아선 안된다. MP3도 귀중품처럼 고급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내부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상무 또한 MP3플레이어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연말 “CRM을 주목해야 한다”는 이상무의 멘트에 사업 부문마다 사업계획서에 이를 담기 위해 노력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상무의 MP3플레이어에 대한 관심은 결국 MP3플레이어에 대한 집중이란 결과를 나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특히 삼성전자 경영진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이 레인콤의 MP3플레이어인 ‘아이리버’를 들고 나와 시연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 디지털산업에서 국내 1위를 넘어 이젠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삼성전자가 MP3플레이어시장에서만 유독 2위로, 그것도 큰 격차로 뒤처져 있는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형 MP3플레이어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세계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다.

 현재 MP3플레이어의 선두 주자는 레인콤이다. 레인콤을 삼성전자 출신의 양덕준 사장이 세웠다는 점도 이야깃거리인데, 레인콤은 ‘아이리버’란 브랜드로 국내 MP3플레이어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60%로 추정된다. MP3플레이어 한 품목으로 2004년 4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57조6000억원의 삼성전자에 비하면 골리앗과 다윗으로 비견될 수 있지만, 여하튼 국내 MP3플레이어시장에선 확고부동한 1위다. 삼성전자는 20%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점유율 60%대 20%. 삼성전자의 자존심이 상할 만한 수치다. 더구나 레인콤이 아이리버란 브랜드로 2002년 MP3플레이어시장에 뛰어들기 이전에는 삼성전자가 업계 1위였다.



 애니콜 성공을 벤치마크하라

 그렇다면 골리앗 삼성전자는 어떤 전략으로 1위 탈환을 노리고 있을까.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니콜 성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가 전략으로 휴대전화시장에서 성공한 경험을 MP3플레이어에서도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노키아·모토롤라 등의 경쟁 업체에 비해 뒤늦게 휴대폰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고가 전략과 적기 출시, 그리고 1년에 100여개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휴대폰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가 MP3플레이어 신제품을 일주일 간격으로 출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격도 고가로 책정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은 중국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MP3플레이어 평균 판매가는 1500위안(약 22만5000원)으로 현지 업체보다 두배 이상 비싸다. 지난달 한정판으로 다이아몬드가 박힌 90만원대의 MP3플레이어(모델명 YP-W3)를 내놓은 것도 고급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다.



 삼성전자 ‘규모·자본·판매망’

 레인콤 ‘스피드·유연성·승부욕’싸움

 삼성전자는 올해 세계 시장에서 MP3플레이어 500만대를 판매, 14.3%의 시장점유율로 애플에 이어 2위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내수 시장에선 레인콤에 빼앗긴 1위 자리를 탈환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오디오 사업 부문의 김서겸 상무는 “MP3플레이어는 하드디스크(HDD) 타입과 플래시 메모리 타입으로 나뉜다. 시장 규모는 하드디스크 타입이 플래시 메모리 타입에 비해 6대 4의 비율로 더 크다. 올해는 7대 3의 비율로 하드디스크 타입 시장의 규모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북미 시장에서 그동안 애플의 독주가 이어져 온 하드디스크 타입 시장에 주력할 것이다. 지난해 말 하드디스크 타입의 MP3플레이어 모델을 출시, 플래쉬 메모리 타입에서부터 대용량 HDD 타입에 이르는 완벽한 MP3플레이어 라인업을 구축하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미국 MP3플레이어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0%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발은 좋다고 한다. 베스트바이, 쌤스클럽에 하드디스크 타입 MP3플레이어인 YH-820 모델을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서킷시티 같은 전략 유통망으로부터 호응이 좋아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전세계적인 지법인망도 든든한 기반이다. 다른 업체들이 판매망을 닦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등지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한 데는 삼성전자 판매망의 힘이 컸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서겸 상무는 “MP3플레이어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중화권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시장에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 시장점유율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이런 전략과 목표에 대한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국내 1위 탈환에 대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대증권의 이시훈 애널리스트는 “삼성의 급격한 시장 확보가 이뤄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등 추가되는 파이에서 유리할 수는 있지만, MP3플레이어만 놓고 볼 때는 시장이 포화 상태다. 기존의 틀을 깨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여기에 애플과 레인콤이 이뤄 놓은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가 탄탄하다. 이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수많은 제품 라인업의 하나로 MP3플레이어를 생각하고 있지만, 애플이나 레인콤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승부욕이란 심리적인 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기기의 특성상 업체의 스피드와 유연성이 중요하다. 중소기업 규모인 레인콤이 이 점에서도 더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레인콤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자신들의 경쟁 상대는 애플이지, 레인콤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내 시장에서 2위란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애니콜, 파브, 반도체, TFT-LCD 등 시장이 큰 다른 제품군에 집중한 데 따른 결과라고만 이야기한다. 자존심 문제란 것이다. 올 연말 과연 삼성전자가 MP3플레이어시장에서 어떤 성적표를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