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지긋지긋한 이 생활도 올해면 끝이겠죠?”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정 모 사장. IMF 때 부도를 맞고 간신히 시작한 사업마저 계속되는 경제 불황으로 힘들어지자 영업사원 시절에도 대지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을 많이 써 몸이 상할 때로 상했을 터인데, 술로 찌든 그 속은 오죽할까. 좀처럼 나아질 줄 모르는 경제 때문에 정 사장처럼 술독에 빠져 사는 CEO들이 널려 있다.

 술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매우 깊이 자리잡고 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대부분 인간관계를 술자리에서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업을 이끌어야 하는 우리 CEO들의 입장에서 보면, 음주는 아주 중요한 업무이자 사업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술은 적당히만 마시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평소 하지 못한 말도 하게 만들고,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 줘 삶의 활력을 가져다준다. 특히 도수 낮은 술 한두 잔은 혈행(血行)을 좋게 해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했던 프랑스의 ‘잔 칼망’이란 할머니가 포도주를 매일 한두 잔씩 마셨다는 사실만 봐도 한 잔 정도의 술은 어느 정도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도 처방한 약재를 술에 담가 우려낸 ‘약술’은 사람에 따라 큰 약효를 나타낸다고 본다. <본초강목>에도 약술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는데, 오가피나 구기자 등을 달여 낸 물에 누룩을 발효시켜 만든 약술을 환자들에게 권했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 건강이나 사업상 필요에 따라 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문제는 술을 과하게 마시는 데 있다.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말, 아마 지겹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너무 지나친 욕심을 내면 그 결과가 좋지 못하듯, 술 역시 과하게 마시면 오히려 건강에 적이 될 수 있다.

 적정량을 넘어 몸이 이기지 못할 만큼 술을 과하게 마셨거나, 쉬지 않고 매일 계속되는 음주는 알코올 산화의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로 우리 몸속에서 분해가 되지 못한 채 쌓여 숙취를 불러일으킨다. 간장이 이를 미처 분해하지 못해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나 속이 메스껍고 설사를 동반한 복통으로 이어지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과음을 하면 탈수가 와서 갈증이 나고, 미네랄 같은 여러 가지 전해질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몽롱하고 무기력해지면서 저혈당 상태가 된다. 한의학에서 술은 물과 불의 극단적인 성질이 합쳐진 것으로 보는데, 술이 지나치면 수승화강(水昇火降), 즉 불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물의 기운이 밑으로 내려가서 서로 잘 돌지 않아 몸에 무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술 좋아하고 숙취에 시달리기는 옛날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동의보감>에도 숙취 해소법이 곳곳에 나와 있는데, 그 중 숙취해소에 발한, 즉 땀을 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한의학에서는 ‘발한 후 리소변’(發汗後 利小便)이라고 해서, 먼저 땀을 낸 뒤에 소변을 통해 숙취를 배출하라고 했는데, 미지근한 물로 땀을 내는 반신욕이나 샤워는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술에 취해 너무 정신이 없는 상태이거나 아주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경우, 또한 장시간 하는 사우나는 좋지 않으므로 피해야 한다. 적당히 취기가 돌 정도라면 솔잎을 넣어 하는 반신욕이 혈액순환을 도와 알코올 대사를 촉진시켜 숙취해소에 도움을 준다.

 격하지 않은 적당한 운동으로 땀을 내는 것도 노폐물과 함께 알코올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충분한 수분섭취로 수분배출을 원활하게 하는 것도 좋다. 토하는 것 역시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숙취해소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단, 자주 토하거나 일부러 토하는 것은 위장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좋지 않다.

 술을 마신 뒤 속이 좋지 않은 것은 위장의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위통이 있을 때는 혈자리 합곡과 족삼리를 지압해 주면 도움이 된다. 합곡은 손등을 위로 하고 손가락을 펼쳤을 때 엄지와 검지의 뿌리뼈가 겹치는 부분 중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말한다. 이 부위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자극해 주면 위통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 족삼리는 위를 다스리는 경락의 기운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그만큼 위장에 관련된 질환에 작용하는 기운이 강한 혈자리인데, 족삼리는 무릎뼈에서 네 손가락 폭만큼 내려간 부위에서 바깥쪽으로 위치한다. 기운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작용, 즉 하기 작용이 있어 족삼리를 자극해 주면 술을 마시고 나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상열감이 심한 경우에도 도움이 된다.

 숙취로 인한 갈증에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칡이다. 갈근이라고 불리는 칡은 <동의보감>에 숙취에 가장 좋다고 나와 있는데, 경련을 진정시키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설사를 낫게 하고 갈증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특히 지나치게 과음을 해서 급성중독이 되면 얼굴이 파래지고 이를 악물게 되며 혼수상태나 인사불성이 되는데, 이때 칡뿌리를 짓찧어서 나온 즙을 입에 부어 넣으면 점차 술이 깨어 낫는다고 했다. 칡을 차나 탕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은데, 음주 뒤 생기는 갈증이나 구토, 설사 등에 도움이 되며,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도 그만이다. 만약 해독이 어느 정도 된 뒤에도 머리가 상쾌하지 못하면 서너 번 정도 더 마시면 좋다. 숙취에는 칡 외에 마도 좋다. 마는 피로한 사람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식욕을 북돋워 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수술받은 뒤에 피로가 많은 사람이나 극도의 위장장애 혹은 피곤을 느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술 마신 다음날 꼭 찾는 것이 있다면 지친 속을 달래 주는 해장국일 텐데, 해장에 좋은 식품으로는 콩나물이 있다. 콩나물에 많이 함유돼 있는 아스파라긴산은 간에서 알코올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을 돕는다. 특히 꼬리 부분에 많아 숙취 해소가 목적일 때는 꼬리를 떼지 않고 요리하도록 한다. 이 밖에도 간을 보호하는 아미노산이 많은 북어나 간 해독에 효과가 있는 단백질을 함유한 재첩을 넣고 끓인 국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숙취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을 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음주 전에는 반드시 음식물을 섭취해 공복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위 속에 지방질 음식이 있으면 알코올 흡수를 더디게 만드는데, 음주 전 우유 한 잔을 마시면 위를 보호하고 숙취도 막을 수 있다. 또한 단백질이 풍부한 안주는 알코올 흡수도 덜 되게 하고 속도도 늦추도록 한다. 술은 섞어 마시지 말고 속도는 천천히 음미하듯이 길게 마시도록 한다. 술과 함께 탄산음료나 약을 먹는 것은 절대 금물. 무엇보다 자신의 주량을 넘어서지 않게 술을 마시는 게 가장 중요하다. 또한 간이 알코올을 분해한 뒤에는 3~4일의 휴식기간을 갖는 게 좋으므로 매일 술을 먹지 않도록 한다. 물을 많이 마셔 주는 것도 좋은데, 따뜻한 물에 꿀이나 차를 타서 마시면 갈증을 해소하고 탈수현상도 예방할 수 있다.

 CEO들의 일상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술. 이제 연말이 다가오면서 술자리가 더 늘어나 여간 고민이 아닐 텐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잘 이용해 건강에도, 사업에도 좋은 결과를 낳아 보자.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CEO들의 어깨가 결코 가볍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한 가정을, 한 기업을 그리고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기에 일년 내내 무겁게 지고 있던 짐, 연말에 툴툴 털어 버리고 가벼운 새해를 시작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