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게 장사하는 맛이구나!’
21년 전인 1984년 5월 어느 날 저녁. 철강 대기업 삼미 전산실에 근무하던 27세 새 신랑 박천희씨는‘턱’ 하고 무릎을 쳤다.
그저 고생하는 장모 일손 좀 돕겠다는 마음으로 퇴근길에 청계천 8가 보쌈집에 들르길 두어달째. 그는 우연히 하루 매출 전표를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루 매출액이 제 한달 월급보다 많았던 겁니다.”
그 순간 모든 게 달라 보였다. 허름한 30평짜리 식당에 왜 그리 사람들이 넘쳐나는 걸까.
이곳 한 달 매출액이면 월급쟁이 3년을 해도 만져 보지 못할 거금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원할머니 보쌈 박천희 원앤원 사장



 
평소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던 대기업 배지가 하찮게 느껴졌다. 회사 점심시간 때도 전화를 걸어 손님 상황을 체크해 봤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그해 6월이다. 대기업 주임에서 보쌈집 사장으로 명함을 바꾼 셈이다. 이때가 바로 박천희 사장이 보쌈과의 첫 만남이다.



 91년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당시 상호는 할머니보쌈. 88서울올림픽 때 박사장 점포는 외국인들로 미어터졌다. 보쌈이 ‘한국의 맛’으로 여겨진 덕분이다. 특히 일본인들의 여행 단골 코스로 명소가 됐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입소문이 나자 상호 모방이 뒤따랐다. 1989년 3월 상호를 ‘원할머니’로 바꿨다. 장사가 되자 가게를 내달라는 요구가 들끓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일관되게 “노(No)”였다. 가게 하나도 운영하기 벅찼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생각을 바꾼 건 2년 뒤였다. 1991년 8월 ‘원유통’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왜 그랬을까.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프랜차이즈 사업의 전망을 꿰뚫어본 것이었을까. 

 아니다. 이유는 뜻밖에도 차량 증가였다. 자꾸 교통이 막히자 안양, 의정부, 수원 등지서 찾던 단골들 발길이 뚝 떨어진 탓이다. 어림잡아 매출 30%는 떨어졌다는 게 박사장의 회고다. 이럴 바엔 ‘차라리 그쪽에 점포를 내주자’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렇게 프랜차이즈 사업에 손을 댄 박천희 사장(48)의 원할머니보쌈은 현재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직영점 2개, 직원 수 103명, 연매출 251억원(지난해 법인 매출), 가맹점 188개.’

 가맹 사업 15년차 박사장이 손에 쥔 성적표다. 190개 점포망은 사실 화려한 전과는 아니다. 10년만에 2500개 치킨점을 세운 윤홍근(50) BBQ 회장이나 5년만에 600여개의 생맥주 점포를 만든 김서기(47) 쪼끼쪼끼 사장에 비하면 외관상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업계에서 원할머니보쌈은 A급 업체로 통한다. 창업 컨설턴트인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자영업계 최악의 해였던 지난해 원할머니보쌈은 32개 가맹 계약과 매출액 25% 성장을 이룬 회사”라고 평가한다. 이인호 창업e닷컴 소장도 “톡톡 튀는 맛은 없지만 안정적 사업 궤도를 그리고 있는 국내 외식업계의 ‘진국’ 같은 회사”라고 귀띔한다.

 실제 2004년은 프랜차이즈업체엔 ‘악몽’ 같은 한 해였다. 가맹 계약은 개점 휴업 상태였고, 음식점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밥솥을 내던졌다. 가맹점 매출이 죽을 쑤자 본사들도 죽을 맛이었다. 이런 와중에 거둔 원할머니보쌈의 성장세는 단박에 눈에 띄었다.

 원할머니보쌈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특히 프랜차이즈 사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라면 박천희 사장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놀부와 함께 국내 보쌈 브랜드의 양대 산맥으로 올라선 원할머니보쌈의 장수 비결을 분석해 봤다.



 비결1  음식 장사는 ‘맛’

 식자재를 하루 단위로 배송하라

 91년 8월 ‘원유통’ 설립 후 3개월만인 그 해 11월 박사장은 가맹 1호점을 낸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상록수점이다. 그러나 지방 점포는 단 한 곳도 내주지 않았다. 물류 미비 탓도 있지만 보쌈 맛의 비결은 발효 식품인 김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해물이 첨가된 보쌈김치는 하루만 지나도 그 맛이 변질된다는 것.

 무려 10년여의 연구 끝에 2002년 김치 숙성 지연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로써 3일 보관이 가능해진 셈이다. 원할머니보쌈이 2003년까지 지방 점포가 전무했던 이유다. 그는 “이때부터 식자재 1일 배송시스템을 가동했다”고 말한다. 매일 아침 생고기와 김칫속 등 원부재료 80%를 배송해 준다. 배송 주기는 수도권은 주6회, 지방은 주3회다. 박사장은 “공장에서는 섭씨 15도, 물류 차량 안에서는 3~4도, 점포에선 1~2도를 유지하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들려준다.

 선도 관리에 있어선 칼 같다. 협력업체 25개사에 대해선 ‘삼진아웃제’를 적용중이다. 품질 불량 판정을 세 차례만 받으면 거래를 끊는다. 원할머니보쌈은 납품 대금을 100% 현금 결제해 주는 조건이라 거래 업체 입장에서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비결2  전문성을 키워라

 14년간 보쌈만 고집, 4월말에야 제2 브랜드

 국내 보쌈 브랜드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양대 산맥은 놀부와 원할머니보쌈이다. 장사 시작은 원할머니가 빨랐지만 가맹 사업은 놀부가 선배다. 87년 5월 서울 신림동에서 시작한 놀부는 89년부터 가맹 사업에 나섰다. 원할머니가 뛰어든 91년, 이미 놀부는 100여개의 점포망을 깔아놨다. 현재 가맹점 수는 놀부가 220개로 30개나 많다. 보쌈 분야의 본사 매출액은 270억원대 251억원으로 엇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놀부가 보쌈 이외에 부대찌개 등 다(多)브랜드 전략이었다면 원할머니는 보쌈만 고집했다는 것. 그 이유에 대해 박사장은 “보쌈시장도 석권치 못했는데 무슨 다른 일을 하느냐”고 되묻는다. 남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지금 박사장은 “외국 진출도 몇년 뒤 얘기”라며 말을 막았다.

 그런 그가 4월말 제2 브랜드를 내놓는다. 가장 큰 이유는 끊이지 않는 가맹 문의를 살리기 위해서다. 실제 원할머니는 요즘 한달에 40~50건씩 가맹 문의가 들어온다. 그러나 수도권엔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이를 제2 브랜드로 흡수할 계획이다. 현재 업계에는 박사장이 ‘등갈비 전문점’을 낼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비결3  가맹점 매출 확대가 경영 1순위

 가맹비는 점주에 재투자하라

 박사장이 내세우는 자존심은 “원할머니는 폐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민이나 개인 사정 때문에 그만둔 경우는 있어도 장사가 안돼 포기한 사례는 없다고 주장한다.

 인구 4만~5만명당 1개씩 내주는 깐깐한 가맹 계약 덕분이다. 특히 가맹비로 받는 1000만원 중 80% 이상은 점주에 재투자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지난해 지방 공략차 대구, 청주, 대전 지역 케이블TV에 광고를 집행했을 때도 100% 본사 부담으로 수행했다.

 가맹점 개업시 이벤트 행사는 물론 메뉴 홍보물과 유니폼, 전단지 등 판촉 용품도 무상 지원한다. 박사장은 “프랜차이즈 본사는 식재료 유통에서 마진을 올리는 수익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가맹점 경영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어 103명 전직원이 모두 정규직이다. 직원의 안정적 생활이 보장돼야 가맹점 관리도 잘된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4월8일 오후 2시 서울 성수동 본사에서 만난 박천희 사장은 말이 짧았다. 좀처럼 긴 설명이 없다. 대신 2001년 11월 대지 400여평에 연면적 1000여평 4층짜리 건물은 회사에 대한 신뢰를 높여줬다.

 1층 돼지고기 가공 공장의 위생 시설은 이 회사의 품질 중시 원칙을 보여준다. 고기를 이동시키는 천장의 호이스트는 청정이 생명인 반도체공장에서 이용하는 시설. 2층의 김치공장도 매우 엄격하다. 매일 새벽 시장에서 물건을 떼온 아침 7시부터 분주히 돌아간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하루에 고기 4500kg, 배추가 2500kg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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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희 사장은…

말, 행동 느긋한 ‘충청도 양반’ 



 그를 처음 만난 건 2000년께다. 당시 청계8가 본점에서 우연히 맞닥뜨렸다. 이 집 보쌈 맛이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짬을 낸 방문이었다. 지금은 서울 성수동 본사로 옮겼지만 그때는 본점에 사무실을 함께 썼던 시절이다. 창업 컨설턴트라고 소개하자 그는 어색한 듯 “아 그러세요”라며 악수를 청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수줍음을 잘 탄다. 현재 190여 가맹점을 둔 프랜차이즈 CEO이면서도 옆집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말투는 충북 청원 출신답게 충청도 어투가 배어 있다. 행동도 그렇다. 항상 느긋해 보인다. 대신 속내도 쉽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에게 인상 깊었던 건 남들 눈치 안보고 자기 길을 걷는 모습이었다. IMF 쇼크 직후 창업 열풍이 불었을 때다. 남들이 가맹점 모집에 한창이던 그때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가맹점 확장보다는 내실을 기한다며 매출이 떨어지는 점포를 리모델링 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프랜차이즈 호시절이던 2001~2003년까지 ‘방어’ 전략을 편 셈이다.

 그 결과가 빛을 발한 건 지난해였다. 대부분 본사가 고생하던 작년 원할머니보쌈은 32개 가맹 계약은 물론 매출액 25%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



 Plus hINT_1

원할머니보쌈 개요

브랜드 원할머니보쌈

회사명 원앤원

창립 1984년

매출액 251억원(2004년 본사)

직원 수 103명

가맹 사업 시작 1991년 8월

가맹점 190개(직영점 2개 포함)

2005년 매출 목표 350억원(본사)

 

Plus CASE  서울 망원점주 손주석씨



 중기 사장 때 잊고 무릎 꿇고 주문받아

 5년간 월 평균 3600만원 매출액 올려



 서울 지하철 6호선 망원역 5번 출구 쪽에 자리 잡은 원할머니보쌈 망원점. 이곳은 ‘가맹 점포는 길어야 3년’이란 통념을 깨고 벌써 5년 넘게 사업중인 장수 점포다.

 롱런 비결은 점주 손주석씨(54)의 한결같은 경영 마인드에서 찾을 수 있다. 5년 넘게 새벽시장에 나가 배추를 구입하는 정성부터 주문시 무릎을 꿇고 받는 친절은 몸에 배었다.

 완벽한 ‘장사꾼’ 기질을 갖췄지만 그도 알고 보면 잘 나가던 중소기업 오너 출신이다. 개인 비서까지 뒀던 그가 180도 체질을 바꿀 수 있었던 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현실 인식 덕분이었다.

 5년 전 나이 마흔아홉에 납품업체 도산으로 연쇄 파산 아픔을 겪은 그에게 원할머니보쌈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사촌 누님이 일산 마두점과 탄현점, 서울 등촌점을 운영해 (원할머니보쌈을) 잘 알고 있었다”며 “빚더미에서 빚을 떠안고 시작한 장사라 사업 1년간 하루 평균 4시간 이상을 자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때가 2001년 5월. 15평에서 출발한 그의 점포 입지는 B급 상권이었다. 그러나 개업 초부터 일평균 100만원에 육박하며 현재는 인근 사람들은 ‘대박집’으로 부를 정도다. 현재 25평으로 덩치를 키운 망원점의 하루 매출은 120만원 수준. 한달 매출액 3600만원에서 재료비, 인건비, 월세 등 제반 경비를 빼면 약 700만~900만원대 순익이 남는다는 계산이다. 이 때문인지 현재 호가로 형성된 권리금은 입주 당시인 5년 전에 비해 2~3배를 오르내릴 정도다.

 손씨는 “한번 망해본 경험이 있어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이를 악문 게 비결”이라며 “요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면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때 그는 컴퓨터를 통해 주문을 하고 눈을 붙인다. 본사 홈페이지(bossam.co.kr)에 들어가 식자재 주문창에 주문 내용을 입력하면 모든 일과가 끝나는 강행군이다.

 사업 전엔 보쌈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는 손주석 점주. 그는 “보쌈은 한국인 입맛에 꼭 맞는 웰빙 식품”이라며 “가족 단위 고객이 많아 맛과 청결,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주석씨는 ‘잘 나가던 왕년의 명함을 잊어버려라’는 창업 격언을 몸으로 실천중인 케이스로 꼽힌다.



Plus hINT_2

가맹점 창업 포인트

점포 평수
30~40평

입지 주택가 상가 밀집지

식재 배송 주 6회(수도권)

평균 월 매출 3000만~4000만원



Plus hINT_3

가맹점 투자 내역<30평형>

가맹비
1000만원

보증금 300만원(해지시 환급)

인테리어 4200만원(평당 140만원)

주방집기 900만원

간판 및 의탁자 500만원

광고홍보 메뉴판 등 기타 800만원

총 7700만원(점포비 제외)

박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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