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가장 싼 값에 부동산을 살 수 있을까.”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동산 경매다. 지방법원을 통해 일반에 매각되는 부동산을 잘만 잡으면 짭짤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함께 부동산 경매 현장 체험에 나섰다.
 난 3월4일 오전 9시,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지방법원 별관 211호실에는 20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출근했을 시각. 이들에게 법원 경매가 열리는 법정이 일터인 셈이다.

 경매 참가자 면면은 다양하다. 20대부터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비교적 고르게 보였고, 남녀 비율도 엇비슷했다. 경매가 진행되는 건물 앞 로비에는 경매 정보를 담은 소식지를 무료로 나눠 주는 업체 사람들, 채권 등록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경매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이어지자 절반 가량 차 있던 입찰장 자리가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들 중 실제 입찰에 참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지홍 부동산 007 소장은 “부동산 경매가 뜬다고 하니까 공부 삼아 분위기를 익히려는 사람들도 꽤 있어 보인다”고 귀띔한다.

 부동산 경매 입찰은 전국의 14개 지방법원에서 실시된다. 경매에 나올 매물들은 통상 1주일 전에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경매 물건을 주로 다루는 업체들은 이 정보를 토대로 각각의 물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경매 참여자들은 주로 이들 업체의 정보를 이용한다.

 “서울 인천 수원 의정부 등 수도권에만 4곳의 지방법원에서 경매가 진행됩니다. 서로 날짜가 겹치지 않으면 어제 인천법원 경매에 왔던 사람이 오늘은 서울법원 경매에 다니죠. 이들을 흔히 ‘꾼’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으로 경매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들이죠.”

 겉모습만 봐서는 누가 꾼이고 누가 초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전에 필요한 서류를 다 작 성한 다음 바로 입찰통에 넣는 사람도 있고, 입찰장 앞쪽에 비치된 경매 물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야 입찰소 안으로 들어가 기입하는 사람, 입찰장 좌석에 앉아 정보지를 들여다보는 사람 등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인터넷을 통해 공시된 물건 중에 이번 경매 대상이 되지 않는 물건이 있습니다. ‘2004 타 경 0000…’”

 경매 진행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자신이 입찰하려 했던 물건이 아닌지 확인하는 사람들이 경매 물건 리스트를 점검하느라 잠시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내 소란은 가라앉았고 입찰 참여자들은 속속 자신의 입찰표를 입찰통에 넣었다.

 “경매라고 하면 흔히 조직폭력배 등이 개입, 좋은 물건은 다른 사람이 입찰도 못하게 하는 사례가 실제 과거에는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 옛날 얘기죠. 물론 경매에 부쳐질 물건을 사전에 파악해서 경매로 넘어가기 전에 확보하는 일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간 거래이기 때문에 문제 삼을 건 없고, 지금은 좋은 물건을 보는 안목이 누가 더 높은가 하는 경쟁입니다.”



 경매 물건,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고

 경매 입찰에 참여하려면 경매에 참가하고자 하는 내역을 적은 기일 입찰표와 입찰 봉투, 입찰 보증금 봉투 등을 경매 진행자에게서 배포받아 투표소처럼 생긴 입찰소 안에서 기입해야 한다. 기입을 마친 이는 기입한 입찰표와 입찰 보증금이 담긴 입찰 보증금 봉투를 입찰 봉투 안에 담아 투명 플라스틱함에 넣어야 한다.

 입찰 보증금 제도는 자신이 사고자 하는 물건 최저 입찰 가격의 10%를 선납하는 제도. 2003년 이전에는 자신이 써내는 입찰 가격의 10%를 보증금으로 걸어야 했다. 규정된 보증금을 넣지 않았을 경우 낙찰이 됐다 하더라도 무효 처리된다(1시간 뒤 벌어진 입찰가 발표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

 “‘2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런 경매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가장 능력 있는 경매꾼은 좋은 물건을 가장 싸게 사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사실 경매에 부쳐지는 물건은 흔히 ‘지저분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채무·채권 관계가 해소되지 않아 법원 판결을 받는 물건 아닙니까? 해당 부동산의 가치, 권리 관계와 임대인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물건이 많습니다. 업계 용어로 ‘권리 분석’과 ‘명도’가 경매의 핵심이죠.”

 권리 분석이란 말 그대로 경매에 나온 물건의 권리 관계를 따져보는 일이다. 등기부등본을 조회해 보면 임대 관계, 가압류, 저당권 등이 기재돼 있다. 매물에 대한 권리 우선 순위가 있는데, 매물을 낙찰받을 경우 권리의 한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바로 권리 분석이다. 따라서 권리 분석은 해당 매물을 어느 가격에 낙찰받을 것인가를 판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명도는 법률 용어로 ‘인도’다. 법적으로 낙찰받은 사람이 낙찰 대금 전액을 납부한 후에는 채무자에 대해 직접 자기에게 낙찰된 부동산을 넘겨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채무자가 임의로 인도하지 않거나, 해당 부동산의 임대인이 이주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가를 낙찰받아 그곳에 자신의 가게를 내고 싶은데 기존 임대인이 권리금을 별개로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대금을 납부한 후 6개월 이내에 집행 법원에 대해 집행관으로 하여금 낙찰 부동산을 강제로 낙찰인에게 인도케 하는 내용의 인도 명령을 신청, 그 명령의 집행에 따라 부동산을 인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얘기이고, 실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낙찰받은 사람으로선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 내 물건이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인 셈이다.

 “권리 분석을 통한 적정 낙찰 가격 산정이 어려워 대개 경매 전문 부동산업체들은 권리 분석과 명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감정가 기준으로 통상 2% 정도지요. 물론 낙찰이 되고 인도까지 완전하게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거래가 됩니다. 경매 물건의 경우 감정 가격이 있긴 하지만 권리 관계가 복잡하고 인도 과정이 매끄럽지 못할 확률이 높아 전문 부동산업체와 상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통상 경매 물건은 감정평가사들이 감정 가격을 정한다. 감정 가격은 최저 입찰 가격으로 첫 경매에 부쳐지는데, 낙찰되지 않으면(유찰) 2차 경매 때에는 감정 가격의 20%가 깎인 가격에서 시작된다. 가치가 낮은 물건은 3, 4차까지 유찰되기도 한다. 감정 가격은 보통 시세보다 낮게 책정하므로 주변 시세와 비교할 때 절반 가격 이하에 낙찰받을 수도 있다.



 경매 ‘각본 없는 드라마’

 11시가 다가오자 ‘입찰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는 안내 방송이 두 차례 나왔다. 모두 80건의 매물이 등록되었지만 입찰함이 열리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물건에 입찰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예정 시간이 되자 입찰 중개인은 입찰함을 개봉, 물건별로 입찰 봉투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경매 물량, 낙찰률, 낙찰가율은 경매시장은 물론, 전체 부동산시장을 읽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물량이 많이 쏟아지면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담보로 맡긴 부동산 이 제 가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매물이 쏟아지는 거죠.”

 낙찰률은 전체 물량 가운데 낙찰된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경매 매물에 대한 낙찰률이 높다는 건 부동산에 대한 투자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경기 관련 지표들이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경매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는데,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낙찰률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낙찰 가격을 말한다. 투자 가치 측면에서 아파트나 토지는 낙찰가율이 높은 반면, 다가구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은 상대적으로 낮다. 투자 가치 측면에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구매하는지를 측정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입찰 봉투 분류가 마무리되자 입찰 중개인의 낙찰가 발표가 시작됐다. 중개인이 매물 고유번호를 부르면 입찰에 참여한 사람이 중개인 앞으로 나가 발표를 듣는 순서. 서울 도봉구 성북동의 다가구주택이 첫번째 매물이었다. 감정가 3억3000만원으로 한 차례 유찰되었던 이 물건의 최저 입찰가는 2억6000만원대. 그런데 결과적으로 한 사람 이름만 불려졌다. 단독 응찰을 한 것이다. 그가 써낸 금액은 2억9000만원선. 결과론이긴 하지만 단독 응찰이란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최저가를 써내도 당첨될 수 있었다. 낙찰받은 이로선 결과적으로 3000만원을 더 써낸 셈이 되고 말았다.

 두번째 물건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7층짜리 아파트. 감정가 4억5000만원인 이 아파트의 최저 입찰가는 1억8000만원대. 세 차례 유찰되자 감정가의 50%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꽤 몰릴 것”이라는 김지홍 소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홉명의 사람들이 중개인 앞으로 몰려들었다. 입찰인의 이름과 주소를 부르고 그가 써낸 응찰 가격이 불려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응찰 가격이 불려질수록 긴장감은 더해 갔다. 무작위로 이름과 가격을 부르니 마지막 사람이 써낸 가격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최종 낙찰 가격을 알 수 없다. 2억3000만원대, 2억4000만원대를 오가던 낙찰가는 최종적으로 2억4000만원 후반대를 써낸 사람에게 낙찰됐다. 단순히 지켜만 보는 입장인 데도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실제 응찰에 임한 사람의 마음은 이보다 더하리라.

 “오로지 1등만 존재하는 게임이죠. 그러나 최고가 응찰자가 정해진 기간 안에 나머지 금액을 입금하지 않으면 2순위자에게 기회가 돌아갑니다. 떨어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입찰 보증금을 받지만, 2순위자는 1순위자가 낙찰을 포기할 경우를 예상, 보증금 회수를 미룰 수도 있습니다.”

 세번째 경매 물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역시 아파트였고 입찰에 응한 사람은 모두 12명. 가격이 불려질 때마다 작은 탄성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응찰 가격대가 엇비슷해 박빙의 스포츠 경기를 지켜보는 듯한 스릴마저 있었다. 11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40대 초반의 남자가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순간, 중개인이 ‘응찰 무효’를 선언했다. 입찰 보증금의 금액을 기준보다 적게 냈다는 이유였다. 2003년 이전에 등록된 매물은 자신이 입찰한 가격의 10%를, 그 이후 매물은 최저 입찰 가격의 10%를 입찰 보증금으로 내도록 돼 있는데 매물 등록 시기를 착각한 1순위 당첨자가 입찰 보증금을 최저 입찰 가격의 10%만 낸 것이었다. 삽시간에 희비가 엇갈려 300만원 낮은 금액을 써낸 2등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이 이뤄졌다. 3억대의 부동산이 불과 300만원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그것도 순간 실수로 순위가 바뀌는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열번째 매물에는 7명이 응찰을 했다. 1억8000만원대에서 낙찰이 이뤄졌는데, 1위와 2위간의 격차가 불과 30만원 차이. “2위 응찰자는 오늘 집에서 잠을 못잘 것 같다”고 하자 김소장은 “이런 일을 몇번 겪어야 비로소 경매에 눈을 조금 뜨게 된다”고 했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를 얼마로 쓰느냐, 2위 당첨자와의 낙찰가 격차가 어느 정도냐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격을 산정하는 안목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욕심은 금물입니다. 스스로 책정한 낙찰가에 낙찰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마음을 접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현장 답사는 필수

 탄성과 긴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50여건의 물건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다. 경매 공부를 위해 견학(?)을 온 이들은 낙찰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면 낙찰 가격을 일일이 손으로 적기도 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1시간에 걸친 각본 없는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매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주택, 상가, 오피스텔, 토지 등의 부동산 중에서 자신이 가장 관심이 있는 부분을 하나 정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경매 공고를 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직접 현장에 가서 주변 시세를 확인하는 노력은 필수죠. 경매 물건은 다른 부동산 거래에 비해 싸다는 장점 때문에 욕심을 앞세우다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물건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고, 전문가의 조언도 받아가며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1년에 하나 정도 잡아도 어디냐’는 마음이면 적당합니다.”

 기본적으로 경매가 각광받는 이유는 감정가가 시세보다 싸다는 전제 때문이다. 그러나 싼 만큼 함정도 많다. 이와 반대로 안전하고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경매까지 오지 않고 일반 매매로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의 전형인 부동산 경매. 경기 회복 조짐과 더불어 부동산 경매장의 분위기도 봄을 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봄소식에 마냥 들떠 있다간 꽃샘추위에 기습을 당할 수 있다.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는 이치처럼 경매 투자도 느긋한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