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어트의 럭셔리 공유숙소인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의 고성(古城) 내부. 숙박 요금이 1박에 1100만원이나 된다. 사진 메리어트
메리어트의 럭셔리 공유숙소인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의 고성(古城) 내부. 숙박 요금이 1박에 1100만원이나 된다. 사진 메리어트

“(공유숙박 사업의 매력을 보여주는) 엄청난 증거다. 우리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공유숙박 업체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 공동창업자가 4월 29일(현지시각) 미국 CBS 방송 인터뷰 중 세계 1위 호텔 기업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하 메리어트)의 공유숙박 사업 진출 결정에 대해 한 말이다.

메리어트는 빠르면 이달 중으로 미국과 유럽, 카리브해 연안 등에서 최고급 주택 2000곳을 공유숙소로 임대하는 ‘홈스 앤드 빌라 바이 메리어트 인터내셔널(Homes & Villas by Marriott International·이하 홈스 앤드 빌라)’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우선 유럽에 시범 진출한 뒤 미국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숙박 요금이 1박에 1만달러(약 1100만원)에 달하는 18세기 아일랜드 성(城)도 있고, 6개 방에 실내 암벽등반 시설까지 갖춘 런던의 초호화 빌라도 있다. 에어비앤비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중저가 시장에서는 이미 보유 객실 수를 따라잡기 힘든 만큼, 특급 호텔을 이용할 여유가 있는 고객만을 상대로 고가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에어비앤비는 미국을 중심으로 ‘5성 호텔급 공유숙박 서비스’를 표방한 ‘플러스’와 ‘비욘드’ 브랜드를 선보이며 호텔 업계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여기에 호텔 업계의 ‘맏형’ 격인 메리어트가 호텔만이 선보일 수 있는, 차원이 다른 공유숙박 서비스를 선보이며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에어비앤비 플러스’ 브랜드는 예술품과 가구, 편의용품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숙소에 부여된다. 100개가 넘는 평가 항목에서 5점 만점에 4.8점 이상을 받아야 할 만큼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숙박 요금은 1박에 200달러부터 시작한다. 셀프체크인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에어비앤비는 로스앤젤레스(LA)와 시카고, 런던, 시드니 등 13개 도시에 2000개가 넘는 ‘에어비앤비 플러스’ 숙소를 운영 중이다. ‘비욘드 바이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축물이나 유명인의 고급 주택 등을 숙소로 운영한다.

하지만 ‘홈스 앤드 빌라’ 브랜드로 제공되는 메리어트의 공유숙소는 시설과 서비스에서 에어비앤비의 고급 브랜드와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스테파니 리너츠 메리어트 최고홍보책임자는 “주택 소유주가 열쇠를 주거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에어비앤비 종전 방식과 달리 자산운용사가 철저히 관리하는 고급 주택만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리어트 계열의 다른 호텔을 이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포인트 적립 등 멤버십 혜택이 제공되며, 현지에서 요리 수업을 듣거나 콘서트를 관람하는 등 각종 체험 서비스와 연계가 가능한 점도 에어비앤비의 고급 주택 공유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언바운드 컬렉션 바이 하얏트(The Unbound Collection by Hyatt)’ 호텔 중 하나인 중국 리장의 진마오 호텔. 사진 하얏트
‘언바운드 컬렉션 바이 하얏트(The Unbound Collection by Hyatt)’ 호텔 중 하나인 중국 리장의 진마오 호텔. 사진 하얏트

에어비앤비, ‘5성 호텔급’ 공유숙박 서비스로 선공

호텔 업계는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에어비앤비에 맞서 왔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과 회원 관리 서비스를 강화했고, 업체 간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도 키웠다. 메리어트가 2016년 136억달러(약 16조원)에 스타우드 호텔&리조트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거래로 130개국에 6700여 개 호텔과 리조트(2018년 연말 기준)를 거느리게 된 메리어트는 힐튼(109개국에 5500여 개 호텔과 리조트 보유)을 제치고 세계 1위 호텔 기업으로 도약했다.

메리어트, 힐튼과 함께 글로벌 ‘빅 3’ 호텔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하얏트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호텔과 하와이의 코코 팜스 리조트 등 개성 넘치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특색 있는 호텔을 인수해 ‘언바운드 컬렉션 바이 하얏트(The Unbound Collection by Hyatt)’라는 별도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숙소마다 차별화한 콘셉트로 새로운 경험에 목마른 젊은 여행자에게 어필한 것이 에어비앤비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호텔 기업이 공유숙박 사업에 진출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 호텔 대기업 아코르가 2016년 호화 주택 전문 공유숙박 업체 원파인스테이를 인수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얏트호텔은 2017년 공유숙박 스타트업 오아시스에 약 3500만달러를 투자했으나 큰 재미를 못 보고 지난해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하지만 메리어트는 지난해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리스본 등 유럽 내 500개 숙소에서 시범 서비스를 운영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 진출을 확정한 만큼,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JW메리어트와 리츠칼튼, W호텔, 웨스틴, 르메르디앙 등 메리어트가 거느린 30개 브랜드의 충성도 높은 고객도 성공을 자신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36조원 기업 가치에 190개국 8만1000개 도시에 450만 숙소를 운영하는 에어비앤비가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에어비앤비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중저가 시장에 비중을 두지만,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고가 럭셔리 서비스 비중을 늘리는 ‘투트랙’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지난 3월 호텔 예약 애플리케이션 ‘호텔투나잇’을 4억6300만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최근 인도 최대 호텔 기업 오요룸스(Oyo Rooms) 지분을 2억달러에 사들였다. 2013년 창업한 오요룸스는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 투자사인 세콰이어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운용하는 ‘비전펀드’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총 10억달러를 투자받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인도와 중국, 인도네시아 등 12개국에서 51만 개가 넘는 객실를 운영 중이다.

에어비앤비는 이와 함께 뉴욕의 랜드마크인 록펠러센터를 소유한 부동산 개발 업체 RXR리얼리티와 손잡고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75록펠러 플라자 32개 층 중 10개 층에 풀서비스 호텔을 오픈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처럼 이용할 수 있지만, 손님을 안내하는 직원이 별도 배치된다.

메리어트의 공유숙박 사업 진출과 에어비앤비의 호텔 사업 진출로 이제 호텔 업계와 에어비앤비 간의 경쟁은 ‘시계 제로’의 혼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여행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나니 손해 볼 것은 없다.

카리나 코렌겔 하얏트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부사장은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공유숙박 업체의 등장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고객 입장에서 좋은 일”이라며 “호텔 산업에서도 독특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