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모노리스 대표가 2월 3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모노리스 서울 오피스에서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김종석
모노리스 대표가 2월 3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모노리스 서울 오피스에서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2014년 12월 서울 장사동 아세아 전자상가. 김종석 모노리스 대표는 1968년 준공된 이 허름한 건물에서 이동석 석전자 회장을 처음 만났다. 신개념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제주도 부지를 알아보던 중 이 회장이 애월읍에 땅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땅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그를 찾아간 것이다. 제주 바다가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14만㎡ 규모의 임야. 이 땅은 중력가속도(g = 9.81㎨)만으로 달리는 ‘무동력 레이싱(Gravity Racing)’의 짜릿한 경험을 극대화할 최적의 장소였다.

“‘땅이 정말 훌륭한데, 우리 사업도 세계 최고다. 회장님 땅 위에 우리 사업을 올리면 명품이 될 거다’라고 다짜고짜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좋은 조건에 땅을 달라는 당돌한 요구였죠. 황당해하셨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개월간 끊임없이 이 회장님을 찾아가 설득했더니 결국 저희 팀을 믿어주셨고, 이듬해 4월 부지 계약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테마파크 ‘9.81파크’는 이렇게 탄생했다. 김 대표는 2014년 10월 김나영 공동 창업자와 함께 모노리스를 설립한 이래 인허가, 대규모 토지 매입, 무동력 레이싱 차량·파크 운영 시스템 개발, 건축 공사 등 수많은 난제를 돌파했다. 소규모 스타트업은 자본 집약적인 테마파크 사업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지난해 5월 9.81파크를 개장, ‘즐거움의 새로운 시대(New Era of Fun)를 연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회장은 모노리스의 2대 주주이자 든든한 멘토가 됐다.

9.81파크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ICT 기술을 접목해 기존 테마파크와 다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자동 회차를 위해 차량에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라이다(lidar)’ 센서를 장착했고, 실시간 주행 데이터를 수집해 스마트폰 앱으로 다른 이들과 기록 경쟁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실내에서 가상현실(VR) 레이싱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게임존 ‘랩(LAB) 981’도 운영 중이다. 4월엔 4종의 신규 콘텐츠를 추가, 총 6종의 어트랙션(놀이기구)을 갖춘 종합 테마파크 상품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모노리스가 모집한 자금은 총 700억원. UTC인베스트먼트·DSC인베스트먼트·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뮤렉스파트너스·이수창업투자·보광창업투자·SJ투자파트너스 등 많은 국내 벤처캐피털(VC)이 투자에 참여했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340억원을 조달했다. ‘한국의 디즈니월드’를 꿈꾸며 제주를 넘어 세계 무대에 진출하겠다는 김 대표를 2월 3일 서울 역삼동 모노리스 오피스에서 만났다.


9.81파크 앱 스크린샷. 사진 모노리스
9.81파크 앱 스크린샷. 사진 모노리스
제주 애월읍에 있는 9.81파크 전경. 사진 모노리스
제주 애월읍에 있는 9.81파크 전경. 사진 모노리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창업하기 전 금융투자 업계에서 일했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 등을 기반으로 인수·합병(M&A) 업무를 했다. 닷컴버블 이후 인터넷 산업이 성숙기로 들어가고 모바일 시대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수백 개의 인터넷 기업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다 보니 직접 스타트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바로 시작하진 않았다. 사업을 하려면 경영 이론도 배우고 인맥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2010년에 서울대 최고경영자 경영학석사(Executive MBA)에 지원했고, 거기서 나와 비슷한 관점으로 미래를 바라보던 김나영 모노리스 공동 창업자를 만났다. 공동 창업 경험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에서 착시 미술 뮤지엄 사업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왔다. 당시 투자 업계 사람들은 미쳤다며 모두 뜯어말렸지만, 이 경험이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다행히 그 회사가 잘 성장했고, 3년 만에 지분을 매각(엑시트)했다. 시드머니(종잣돈)와 작은 성공 경험을 확보하고 나니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업 모델이 독특하다.
“인간은 노는 것을 좋아한다. 모노리스는 오프라인 경험에 주목했다. 오감으로 느끼는 아날로그 경험에 집중하면서 기술을 통해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고, 이를 잘 연결하면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동력 레이싱 자체도 재미있지만, 놀이 경험을 랩타임·랭킹·영상 등의 콘텐츠로 바꾸고, 이를 연결해 마치 카트라이더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해외에 9.81 파크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무동력 레이싱은 유럽에서 100년 전 시작된 동네 놀이 문화다. 사과 궤짝에 바퀴와 핸들을 부착해 동네 언덕에서 타고 놀았다. 해외에선 ‘레드불 소프박스 더비(Red Bull Soapbox)’ 등 다양한 이벤트성 대회도 열린다. 전용 차량과 이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전용 경주장을 만들어 테마파크 상품으로 서비스하는 건 우리가 최초다.”

모노리스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상상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실행력인 것 같다. 모노리스에는 열정 가득한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있다. 구체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상상하고 일정을 짜면서, 누가 어떻게 실행할지를 떠올린다. 우리가 계획한 일은 결국 해낸다.”

적용된 자율주행 기술에 관해 소개해 달라.
“무동력 다운힐 레이싱이 끝나면 사람과 차량을 다시 출발점으로 올려보내야 하는데, 이때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했다. 오픈된 환경의 상용차에 적용되는 고도의 기술은 아니다. 주행 중 필요한 이동 제어 기술, 배차 분배 기술, 충돌 회피 기술, 적응 제어 기술 크게 네 가지 기능이다. 네 가지 기술 모두 자체 개발했다.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고 라이다 등 센서를 기반으로 구동하는 카트라고 보면 된다.”

후속 투자 유치 계획은.
“지난해 공개한 9.81파크는 모노리스가 출시한 최소기능제품(MVP)이었다. 이 MVP를 통해 이용자들의 호응을 확인했고, 초기 안정화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4월에 총 6종의 어트랙션으로 구성된 종합 테마파크 상품을 출시할 예정인데, 이와 관련해 신규 콘텐츠 투자, 마케팅 비용으로 50억원 정도의 소규모 ‘시리즈 C2 투자 라운드’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 다른 지역이나 해외 진출 계획은.
“국내 2호점은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경기도 지역을 검토 중이다. 현재 여러 곳의 후보지와 협의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중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베트남 등 아시아에 1단계로 진출하고 2단계로 미국·유럽에 진출할 계획이다. 국내 2호점과 해외 1호점은 올해 여름 본계약 체결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상장 주관사로 미래에셋대우를 선정해 내년 말을 목표로 코스닥 시장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목표나 꿈이 있다면.
“자본 집약적 산업이란 특성 때문에 테마파크는 대기업 혹은 글로벌 공룡이 오랜 시간 점유해왔다. 그만큼 변화나 혁신이 부족했던 산업이다. 모노리스는 테마파크 산업 혁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다.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독특한 테마파크를 계속 건설해 디즈니월드 같은 글로벌 테마파크 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