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 ‘헤이그라운드’의 서울숲점. 키즈라운지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루트임팩트는 10개 기업과 함께 5월에 공동 직장 어린이집을 개원할 예정이다. 사진 루트임팩트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 ‘헤이그라운드’의 서울숲점. 키즈라운지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루트임팩트는 10개 기업과 함께 5월에 공동 직장 어린이집을 개원할 예정이다. 사진 루트임팩트

개발자 박모(30)씨는 지난해 창업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지만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연봉은 2억원대로 대기업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근무 강도를 견디기 어려웠다. 하루 10시간 이상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감이 쏟아졌다. 불안 증세와 몸살 기운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대기업 퇴사 이후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스타트업 근무를 접어야만 했다.

‘스타트업에 들어가려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꿈꾸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실제 스타트업은 밑바닥부터 사업 체계를 다져야 하므로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다. 이는 잦은 인력 이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스타트업 경영진들은 “초기 기업은 하루하루 생존의 길목에 서 있어서 직원의 워라밸을 지켜주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스타트업과 워라밸은 병행될 수 없는 것일까. 장기간 살아남은 스타트업에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비결이 있었다. ‘이코노미조선’은 스타트업의 워라밸 트렌드를 살펴봤다.


트렌드 1│이직률 낮추려 자율성·보상 체계 마련

스타트업 업계에선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을 중심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2015년 우아한형제들은 월요일엔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주 4.5일제를 시행했다. 2년 후부터는 주 35시간제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30분 연장하고 퇴근 시간을 30분 앞당긴 결과였다.

안연주 우아한형제들 피플팀장은 지난해 한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다 보니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면서 “당장 야근을 없앨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이런 노력을 오랜 기간 하나하나 시도하면서 근무시간이 단축됐다”고 했다.

당장 근무시간을 줄일 수 없어 근무 자율성을 부여하는 기업도 많다.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와 기업 정보 서비스 제공 업체 ‘잡플래닛’이 공동으로 추진한 ‘2019년 일·생활 균형 우수 중소기업’에 꼽힌 24개 기업을 살펴보면, 33%(8개) 기업이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유연근무제 또는 원하는 업무 환경에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원격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교육 플랫폼 스터디파이는 100% 원격근무제로 유명하다. 사무실 운영에 들어가는 기본 비용을 절약해서 1년에 2회 전 직원이 해외 워크숍을 다녀온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다 보니 업무 전달 내용이 꼼꼼하게 기록되기도 한다.

장기 근속자에게 주는 특별 휴가 기간도 인기 있는 복지 제도로 자리 잡았다. 가상현실(VR) 음향 기업 가우디오랩은 5년 근속하면 유급 휴가 3개월을 준다. 장기 근속자에게 확실한 보상을 하면서 퇴사하지 않을 유인을 높이는 것이다. 리서치 플랫폼 기업 오픈서베이는 3년 이상 장기 근속자에게 3일, 6년 이상 근속자에게 5일의 휴가를 쓸 수 있게 한다. 50만원의 휴가비도 준다.


스마트스터디 사내 부부가 주인공인 ‘웰컴백(Welcome Back)’ 이벤트 영상. 육아 휴직에서 복귀하는 아내와 육아 휴직을 시작하는 남편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 스마트스터디
스마트스터디 사내 부부가 주인공인 ‘웰컴백(Welcome Back)’ 이벤트 영상. 육아 휴직에서 복귀하는 아내와 육아 휴직을 시작하는 남편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 스마트스터디

트렌드 2│다음 과제는 ‘육아’ 워라밸

최근 스타트업 경영진의 고민은 가족 친화적 워라밸 제도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직원의 연령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창업 4년의 스타트업 직원 A씨는 “젊은 미혼 직원이 많은 스타트업 특성상 개인의 근무 편의성, 자기 계발 관련 복지가 많다”면서 “기업 규모가 성장하면서 그간 후순위로 밀려났던 임신·출산·육아 복지 지원도 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오픈서베이는 2012년 창업 초기 대학을 막 졸업한 직원이 대다수였지만 최근 첫 육아 휴직자가 나왔다.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육아 휴직 제도를 신설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박세영 오픈서베이 경영관리팀장은 “경영관리부서에서 육아 휴직 혜택을 받아본 직원이 없으니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스타트업을 위한 육아 휴직 제도 지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기혼자가 많은 스타트업에선 좀 더 능숙한 시도가 이뤄진다. ‘핑크퐁’을 만든 육아 콘텐츠 기업 스마트스터디는 2018년 말부터 육아 휴직 복귀자에게 ‘웰컴백(Welcome Back)’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벤트는 육아 휴직 복귀자에게 다른 직원들이 자사 장난감 제품을 선물하고 파티를 열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 과정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기록도 남긴다. 이벤트 이전에는 복직 비율이 50%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직장 어린이집을 만드는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다.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은 3월 서울 역삼동 본사 맞은편에 직장 어린이집을 연다. 자녀가 있는 기혼 직장인의 복지를 위해서 남대광 블랭크코퍼레이션 대표가 직접 사재를 털었다. 다만 복지 대상자 수가 적은 만큼 원아 모집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이런 고민을 협업 모델로 해결하기도 한다. 여러 기업이 공동 직장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입주사가 1000개가 넘는 공유 오피스 기업 패스트파이브도 3월 서울 역삼동에 공동 직장 어린이집 ‘다람 패스트파이브 공동직장어린이집’을 개원한다. 만 1~4세 영유아 대상의 시설로, 협약에 참여한 입주사 직원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 성수동 인근 11개 소셜벤처와 투자사(루트임팩트, 마리몬드, 스페이스워크, 쏘카, 어썸스쿨, 에누마코리아, 엠와이소셜컴퍼니, 크레비스파트너스, 프렌트립, 씨프로그램, 하나금융지주)도 오는 5월 공동 직장 어린이집 ‘성수소셜벤처밸리 하나금융 공동직장 어린이집 모두의 숲’을 개원할 예정이다.

컨소시엄 회원사는 한 아동당 연간 운영비 180만원을 부담하고, 회원사 직원은 어린이집에 무상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다. 현재 회원사 직원 49명이 아이를 맡길 예정이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총 12시간 동안 운영된다.

어린이집 이용 예정인 신혜미(35) 씨프로그램 매니저는 “스타트업 업계에 젊은 인력이 주류이다 보니, 회사에서 아이가 있는 직원은 나 혼자뿐이다”라며 “공동 어린이집을 통해 커리어와 육아 고민을 공유하는 부모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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