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왼쪽에서 세 번째) LG 대표이사 회장이 2019년 8월 29일 대전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전기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구광모(왼쪽에서 세 번째) LG 대표이사 회장이 2019년 8월 29일 대전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전기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최근 유가증권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을 꼽으라면 많은 투자자가 망설임 없이 ‘LG화학’을 언급할 것이다. 올해 3월 중순 20만원대에 거래되던 LG화학 주가는 8월 11일 종가 기준 75만8000원까지 올랐다. 5개월 만에 세 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주가 급등에 힘입어 LG화학의 시가총액은 53조5090억원(8월 11일)으로 불어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유가증권 시장 시총 순위 3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가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건 5716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올해 2분기 실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호실적 중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부문의 흑자 달성 소식에 주식시장이 크게 열광했다. 오랜 기간 돈 먹는 하마 취급을 받아온 미운 오리 새끼가 드디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했다는 소식에 증시 참여자들이 앞다퉈 주식 매수에 나선 것이다. LG화학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여전히 석유화학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이 회사의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에 거는 시장의 기대감이 크다는 의미다.

LG화학은 전기차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에 대비해 20여 년 동안 전기차 동력원인 배터리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만년 적자라는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올해 2분기에 드디어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앞서 2018년 4분기에 ‘반짝 흑자’를 낸 적이 있긴 하나 당시 흑자와 이번 흑자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차동석 부사장은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구조적인’ 이익 창출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매년 30% 이상의 성장세를 나타내며 순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일까.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경쟁력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매력 1│태생이 화학 기업

LG화학은 전 세계 배터리 제조사 가운데 유일한 화학 기반 회사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각종 화학 소재 개발 과정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전기차를 움직이는 ‘리튬이온배터리’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LG화학은 오랜 시간 축적해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상당수의 배터리 구성 소재를 내재화해 원가 경쟁력과 성능, 안전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분리막 표면을 세라믹 소재로 얇게 코팅해 안전성과 성능을 대폭 향상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배터리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해 최고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해낸 ‘라미&스택(Lamination & Stacking)’ 제조 공법, 차량 디자인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고 수명도 긴 ‘파우치(pouch) 타입’ 등이 LG화학의 뛰어난 소재 기술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중 라미&스택 방식은 양극재·음극재·분리막이 합쳐진 셀(Mono-Cell) 수십 개를 쌓아 올린 다음 꼭대기 층에 분리막과 음극으로 구성된 셀(Half-Cell)을 붙여 하나의 배터리를 완성하는 제조법이다. 경쟁사 중엔 하나의 거대한 셀을 둥글게 말아 배터리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방법은 낭비되는 공간이 많아 에너지 밀도가 낮아진다. 에너지 밀도가 낮으면 장시간 충·방전 시 뒤틀림 현상이 발생하거나 배터리가 부풀어 오를 수 있다. 반면 라미&스택 방식으로 셀을 켜켜이 쌓은 LG화학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자랑한다.

자잘하게 보일 수 있는 ‘폼 스페이서(Foam Spacer)’와 ‘양면테이프’ 등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LG화학 배터리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조력자다. 폼 스페이서는 충·방전 시 수축·팽창에 따른 셀의 변형을 막고, 셀의 충격을 흡수해 배터리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셀과 셀 또는 셀과 모듈을 연결할 때 쓰는 양면테이프는 접착력이 매우 뛰어나고 고온에서도 높은 내구성을 유지한다. 셀과 셀을 테이프로 직접 붙여 고정하는 방식은 셀을 고정하기 위해 별도의 부품을 준비할 필요성을 없애준다. 또 무게가 거의 없는 접착 소재여서 전기차 경량화와 주행 거리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매력 2│경영진의 든든한 지원

LG그룹의 2차 전지 개발은 1995년 시작됐다. 당시 그룹 부회장이던 고(故) 구본무 회장이 1992년 영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여러 번 반복해서 쓸 수 있는 2차 전지를 접한 것이 사업 추진의 계기였다. 구본무 회장은 귀국 후 럭키금속(현 LS일렉트릭)에 2차 전지 연구를 지시했다. 1년 후인 1996년에 럭키금속의 전지 연구 조직이 LG화학으로 옮겨와 관련 연구를 지속했다.

하지만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수년간의 막대한 투자에도 일본의 선발 업체들을 따라잡기 버거웠다. 조직 내부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구본무 회장은 되레 연구 강행을 독려했다. 2005년 2차 전지 사업이 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구본무 회장은 “끈질기게 하면 반드시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연구자들의 기를 살려줬다.

말로만 힘을 실어준 게 아니다. LG화학은 국내 화학 기업 중 유일하게 매년 매출액의 3~4%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201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R&D 비용이 1조원을 돌파했는데, 그중 30% 이상을 배터리 분야에 투자했다. 최근 5년간 배터리 R&D에 쏟아부은 돈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관련 특허도 1만6600건 이상 확보했다.

LG화학은 2024년 총매출 목표치를 59조원으로 잡아둔 상태다. 이 중 50% 이상인 32조원을 배터리 사업에서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올해의 경우 배터리 사업에서 15조원 이상 버는 걸 목표로 세웠는데, 전기차 배터리에서만 10조원을 벌어들인다는 목표다. 또 LG화학 경영진은 현재 매출 비중의 약 60%를 차지하는 석유화학 의존도를 2040년까지 30%대로 낮추고,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전지 사업을 매출의 5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매력 3│날로 크는 전기차 시장

LG화학이 아무리 뛰어난 배터리를 만들어도 그 제품을 탑재할 전기차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다행히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성장 추세에 있는 시장 환경 자체가 LG화학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판매량을 기준으로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는 220만 대다. 자동차 업계는 2025년이면 1200만 대 이상으로 5배가량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38조원 규모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2025년 180조원으로 4.7배 커질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25년 170조원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먹거리 장터가 열리는 셈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6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42.6(기가와트아워·1=10억)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0% 감소했지만, LG화학 배터리의 사용량은 82.8% 급증하면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