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롯데마트 잠실점 지하 3층에 위치한 세미 다크스토어. 피커들이 온라인을 통해 주문된 상품을 바구니에 옮겨 담고 있다. 사진 롯데마트
3월 9일 롯데마트 잠실점 지하 3층에 위치한 세미 다크스토어. 피커들이 온라인을 통해 주문된 상품을 바구니에 옮겨 담고 있다. 사진 롯데마트

3월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 지하 3층. 380㎡(115평) 규모의 공간에서 고객 대신 피커(Picker·장보기 전문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피커들이 고객 대신 물건을 가져와 스캐너에 바코드를 찍으면 자동화 기능이 적용된 철제 분류대의 수많은 플라스틱 바구니 중 한 곳에 파란불이 켜진다. 상품을 담아야 할 고객 바구니를 알려주는 것이다.

당초 매장 창고로 활용된 공간이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온라인 배송을 위한 ‘세미 다크스토어’로 탈바꿈했다. 다크스토어(dark store)는 매장 없이 창고만 있는 소매점이다. 세미 다크스토어는 소비자가 오가지 않는 공간에 자동화한 시설을 마련해 미니 물류센터로 활용한다.

롯데마트는 기존에는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김포 온라인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보냈다. 하지만, 세미 다크스토어를 늘리면서 고객 가까이 있는 점포를 활용해 온라인 주문 상품의 배송 시간을 1~2시간 단축시켰다. 고객은 빠르면 온라인 주문 2시간 내 제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 물론 고객 방문 매출도 유지됐다. 잠실점 매출은 세미 다크스토어 도입 전과 비교해 40%가량 늘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세미 다크스토어는 자동화된 스마트 스토어보다 투자비를 5분의 1로 줄이면서 온·오프라인 고객을 모두 잡을 수 있다”며 “세미 다크스토어를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홈플러스도 앞서 수원 원천점, 안양점, 인천 계산점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각각 6600㎡(2000평) 규모의 다크스토어,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판매자 대신 제품 배송, 보관, 포장, 재고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를 조성했다. 지난해 이들 매장의 온라인 매출은 각각 전년보다 125%, 101%, 10% 늘었다.

오프라인 매장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소비 트렌드가 바뀌는 것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전통 유통사들은 기존 매장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사업 전략을 내놓고 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유통사인 롯데쇼핑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당기 순손실을 냈다. 결국 600여 개 오프라인 점포 중 200여 개를 폐점하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창립 이래 가장 큰 구조조정이다. 롯데쇼핑은 폐점이라는 축소지향 전략에 머물기보다는 일부 매장을 새롭게 활용하는 쪽으로 사업 전략을 바꿨다.


200년 유통사도 파산, 커지는 위기의식

유통사들의 매장 변신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은 전자상거래 성장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100년 이상 된 백화점 니만마커스·JC페니·로드앤드테일러, 200년 이상 된 의류 브랜드 브룩스브라더스는 지난해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지난해에만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유통기업은 이들을 포함해 50개를 웃돈다.

미국 금융 서비스 업체 S&P글로벌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38개 유통사가 파산한 것을 넘어서는 수치”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오프라인 중심의 전통 소매유통 업체들은 온라인 업체들의 공세로 위기를 겪었다. 2017년 세계 최대 장난감 유통 업체 토이저러스, 2018년 백화점 시어스, 2019년 의류 업체 포에버21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비대면 경제는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을 재정립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정KPMG는 오프라인 매장을 △고객 경험 강화 △소비자 행동 데이터 수집 △물류 거점을 위한 공간으로 재정립하라고 조언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융합되는 성공적인 O4O(Online for Offline, Offline for Online) 전략을 펼치라는 것. O4O 전략은 △오프라인 강점을 살린 온라인 플랫폼 구축 △소비자 행동 패턴 포착을 위한 온·오프라인 통합 구매 여정 관리 △온라인 주문량 증가를 감당할 수 있는 밸류체인 완성 △온·오프라인 병합 시너지를 말한다.

美 노드스트롬·中 허마셴성, 경험 극대화

전자상거래 시장의 급성장 속에서 이미 위기를 기회로 만든 기업들이 적지 않다. 미국 백화점 노드스트롬이 대표적이다. 노드스트롬은 매장을 소비자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탈바꿈했다. 2008년 온라인 구매 상품을 매장에서 수령하는 서비스(BOPIS·Buy Online Pickup in Store)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구입 제품을 반품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이어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 트렁크클럽을 3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며 온라인 스타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6년에는 모바일 앱으로 옷, 신발 등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고 피팅을 예약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2017년에는 온라인 소비자를 위한 오프라인 매장 ‘노드스트롬 로컬’ 문을 열었다. 일반 로드숍 규모의 노드스트롬 로컬은 재고 없이 피팅용 샘플 상품만 갖추고 있다. 오프라인 구매가 불가능한 매장이지만, 소비자는 이곳에서 백화점과 동일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모바일 앱을 통해 제품을 선택한 뒤 예약하면 가까운 매장에서 2시간 내에 입어볼 수 있다.

매장 크기를 줄이고, 재고 부담을 없애 노드스트롬 입장에서는 임대료 등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고객은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옷을 입어볼 수 있고, 매장 직원에게 스타일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와인, 맥주 등 음료를 즐기고 네일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노드스트롬 로컬 매장을 온라인 주문 상품을 수령하고, 반품·교환하는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매장 혁신 덕에 2015년 21%에 불과했던 노드스트롬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9년 33%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온·오프라인 채널 연계를 강화하고 고객 체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알리바바가 2017년 출범시킨 온·오프라인 쇼핑, 물류를 융합한 허마셴성(盒馬鮮生)도 중국에서 신유통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냉장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허마셴성은 매장 반경 3㎞ 지역에 30분 이내 배송을 약속한다. 현장의 요리 재료로 즉석에서 요리 주문을 할 수 있는 코너가 특히 인기다.

이곳에서는 현금·카드 결제는 되지 않고 알리페이로만 계산이 된다. 고객의 빅데이터를 확보해, 소비 취향은 물론 특정 상품 소진 추세를 파악할 수 있어 재고를 최소화한다. 허마셴셩에서 30분 안에 물건을 배달받을 수 있는 부동산이 뜨면서 ‘허취팡(盒區房)’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차윤지 KPMG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는 유통사 파산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디지털 인프라를 빠르게 도입하고 온·오프라인 채널과 고객 경험을 강화한 유통사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