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앞줄 오른쪽)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해외 유통 시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유통 채널과 서비스를 신세계, 이마트에 어떻게 적용하고 구성할지 고민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정용진(앞줄 오른쪽)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해외 유통 시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유통 채널과 서비스를 신세계, 이마트에 어떻게 적용하고 구성할지 고민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 부회장은 늘 새로운 유통 채널과 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특히 정 부회장이 그룹 내에서 맡고 있는 대형마트(이마트)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그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마트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1535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8.4% 줄었다. 지난해에는 566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국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정체기라고 여겨지는 2013년(7351억원)과 비교해 무려 23%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색다른 방안을 내놨다. 바로 이마트의 할인 잡화점 ‘삐에로쑈핑’이다. 이곳에선 식품·화장품·패션·명품잡화·가전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7월 2일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있는 삐에로쑈핑을 찾았다. 매장에 들어서자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초특가에 판매하고 있는 식품들이 눈에 띄었다. 온라인 최저가 그대로 가져온 중소기업 제품과 캐주얼 의류, 여름 휴가철을 맞아 다양한 바캉스 상품도 혼잡하게 진열돼 있었다. 길이가 사람 키를 넘는 서핑 보드도 있었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성인용품 코너도 인상적이었고, 병행 수입해 최대 50%가량 싸게 판매하는 프라다·발렌티노 등 명품 피혁 잡화도 있었다.

일반 매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제품이 다양했고, 매장 구성은 복잡했다. 이마트 측은 ‘B급 감성의 만물상’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일반 매장은 상품 분류가 깔끔하게 돼 있다. 바쁜 현대인이 쇼핑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은 달랐다.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찾으면서 매장 곳곳에 숨겨진, 저렴하고 재밌는 제품을 고르면서 매장에 더 머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오프라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고객이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필요한 상품을 편리하게 찾을 수 있도록 진열해 쇼핑 편의를 추구하는 대신 ‘보물찾기’ 하듯 매장 구석구석을 경험하며 ‘득템(아이템 획득)’의 재미를 주려고 한다”고 했다.

이마트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 강자다. 하지만 소비자가 제품을 비교·검색해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모바일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이마트는 2014년 신세계·이마트 등 그룹 내 온라인 사이트를 통합한 쇼핑몰 ‘SSG닷컴’을 구축했고, 올해는 아예 각 회사에 있는 온라인 사업부를 떼어내 통합한 신설 법인 설립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이마트의 강점은 오프라인 매장에 있다. 이마트는 전국에 143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기존 매장에 변화를 주면서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고객의 발길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 포화, 정부 규제로 인해 과거 매장 확대 전략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정 부회장을 중심으로 이마트 경영진은 매장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 답을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에서 찾은 것이다.

이마트는 삐에로쑈핑이라는 새로운 매장을 구현하기 위해 수십 년간 이어온 내부 관행도 바꿨다.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던 상품 선정·매입·진열 등의 권한을 소비자 접점에 있는 매장 관리자에게 부여한 것이다. 상품 구매처도 다양하다. 동대문에서 패션 상품을 사오는 것은 물론 이마트와 거래하지 않는 일반 대리점과 전통시장, 온라인몰 등 품질과 가격이 뒷받침된다면 어디서든 물건을 매입해 판매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호텔 사업에서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대형마트(이마트)는 물론 복합쇼핑몰(스타필드)과 호텔 부문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이마트는 서울과 부산의 웨스틴조선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는 그룹 호텔 계열사인 신세계조선호텔의 지분 98.8%를 보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어머니인 이명희(최대주주 18.2%) 신세계그룹 회장 다음으로 많은 이마트 지분(9.8%)을 가지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은 그동안 웨스틴호텔 등 글로벌 호텔 체인과 제휴하는 형태로 호텔 사업을 했다. 브랜드 계약은 물론 그들의 시스템과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글로벌 브랜드를 사용하면 해외 고객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지만, 해당 브랜드의 매뉴얼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정 부회장은 그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신세계조선호텔은 독자 호텔 브랜드 ‘레스케이프’를 7월 19일 서울 중구 퇴계로에 선보일 예정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기존의 호텔 브랜드가 아닌 독자 브랜드를 통해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에게 맞는 공간을 선보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아마존고’와 같은 무인 매장 준비하나

레스케이프는 프랑스 파리를 콘셉트로 한 부티크 호텔이다. 기존 호텔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 붉은색을 위주로 한 화려한 패턴, 꽃문양의 캐노피 장식 등을 사용해 강렬하고 로맨틱한 프랑스 파리의 분위기를 낸 것이 특징이다. 모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티 살롱, 최상층의 바 등도 갖췄다. 특히 호텔이 지닌 고급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문턱을 낮춘 식음료 매장을 꾸준히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신세계 특유의 서비스도 도입했다. 호텔 9층을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펫프렌들리 공간으로 꾸몄고, 향수 등 호텔 자체상품(PB)을 판매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레스케이프의 총지배인을 맡은 김범수 신세계조선호텔 상무는 “레스케이프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호텔”이라며 “1년 내내 새로운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가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에 선보인 할인 잡화점 ‘삐에로쑈핑’. 사진 조선일보 DB
이마트가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에 선보인 할인 잡화점 ‘삐에로쑈핑’. 사진 조선일보 DB

정 부회장은 삐에로쑈핑, 레스케이프 외에도 새로운 비즈니스와 아이템을 구상 중이다. 특히 정 부회장은 해외 유통 시장을 둘러보며, 신세계와 이마트에 어떻게 적용하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정 부회장은 해외 유통 시스템을 한국 시장에 들여와 좋은 성과를 냈다. 2010년 선보인 창고형 할인매장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미국 코스트코를, 2015년 론칭한 이마트 PB ‘노브랜드’는 캐나다의 노네임을 벤치마킹했다. 이번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돈키호테에서 영감을 얻었다.

돈키호테는 덤핑, 반품 상품과 PB를 늘려 가격을 낮추고, 다양한 제품을 복잡하게 진열하는 ‘압축 진열’과 젊은층과 여행객을 타깃으로 한 야간 영업 등을 핵심 전략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침체된 일본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최근 정 부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무인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사진을 게재하고, ‘매의 눈으로 계산하는 법 배움’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유통 채널이 미국 아마존의 무인 매장 ‘아마존고’와 같은 형태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마존고는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로봇 등의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가 아마존고 매장에서 상품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나와도 저절로 계산되는 미래형 매장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아마존고와 같은 무인 매장을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다”면서도 “정용진 부회장이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