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빈 대표 1973년생, 한림대 경제학,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 코스틸 대표이사 2015년 창업 박정용 대표 1968년생, 중앙대 경영학, 스피드뱅크 2012년 창업 조천희 대표 1976년생, 고려대 서어서문학, 대우인터내셔널 2017년 창업 (왼쪽부터)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정빈 대표 1973년생, 한림대 경제학,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 코스틸 대표이사 2015년 창업
박정용 대표 1968년생, 중앙대 경영학, 스피드뱅크 2012년 창업
조천희 대표 1976년생, 고려대 서어서문학, 대우인터내셔널 2017년 창업 (왼쪽부터)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스타트업 업계는 대표적인 ‘젊은’ 동네다. 아이디어와 패기로 똘똘 뭉친 20~30대 젊은이들이 주도한다. 2016년 한국스타트업생태계포럼 자료에 따르면 한국 창업가 평균 연령은 35.8세에 불과했다.

그런 스타트업 업계에서 중장년 파워를 뽐내는 사람들이 있다. 참기름 제조회사 ‘쿠엔즈버킷’ 박정용(51), 재활용 수거 자판기 회사 ‘수퍼빈’ 김정빈(46), 클럽형 피트니스 업체 ‘비스트플래닛’ 조천희(43) 대표다. 모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 ‘늦깎이’ 창업가들이다. 박 대표는 44세, 김 대표는 42세, 조 대표는 41세가 되던 해 창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세 회사 모두 IT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라기보다는 제조업·하드웨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쿠엔즈버킷은 참기름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참기름 제조 방식이 고온에서 깨를 볶아 기름을 짜내는 것이라면, 쿠엔즈버킷은 저온에서 볶아 추출한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독일에서 직접 기계를 들여와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수퍼빈은 ‘돈 되는’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자원 회수 로봇을 만든다. 이를 인식하는 과정에 인공지능(AI)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활용을 수거하는 기계다. 비스트플래닛은 사물인터넷(IoT)이 접목된 운동 기구가 배치된 헬스클럽이다. 클럽 조명에 DJ까지 갖추고 전문가들이 짜준 프로그램대로 운동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스타트업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아이템들이지만 모두 투자자들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쿠엔즈버킷은 최근 기술보증기금과 KDB인프라자산운용에서 받은 20억원을 포함해 총 21억원을 투자받았다. 수퍼빈은 벤처 1세대 변대규 회장이 운영하는 휴맥스로부터 20억원을, 비스트플래닛은 지난해 스파크랩으로부터 초기 투자금을 유치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인생 2막을 연 중장년 스타트업 대표 세 명을 4월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쿠엔즈버킷 쇼룸에서 만났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 시간 내내 호탕한 웃음과 여유가 넘쳤다.


스타트업 창업 계기는.

박정용 식품 업계에 종사하던 직장인이었다. 그때 참기름 관련 상품 기획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분야가 기술 발달 없이 정체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참기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아쉬운 부분들을 개선하고 싶었다.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는 저온 생산 방식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사회적으로도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욕심 없이 남들보다 건강하게 참기름을 짜내면 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조천희 대기업 상사맨으로 15년간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진 내 모습을 발견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 엔터를 누르는 사람과 누르지 못하는 사람. 어느 순간 나를 위해, 밤잠도 못 자고 미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업의 엔터키를 누르게 됐다. 창업 아이템의 경우에는 직장에서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다. 현지 트렌드, 새로운 현상 등을 늘 조사해 리스트를 만들어뒀다. 헬스클럽은 가장 마지막에 올려둔 아이템이었다. 런던에 있는 클럽형 피트니스센터에서 착안했다. 원래 운동을 무척 좋아한다. 브라질 주재원으로 있을 때에는 주짓수, 무아이타이도 배웠다.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된 케이스다.

김정빈 좋아하던 운동을 창업 아이템으로 삼은 조 대표는 아주 행복한 케이스다. 나는 철강 회사 대표로 월급쟁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지만, 사정상 회사를 나와야 했다. 모두 그렇겠지만, 모든 것이 안정적일 때엔 ‘플랜 B’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 앞길을 모색해야 했고, 그래서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아이템은 젊은 시절 관심을 갖고 구상해봤던 재활용 처리 사업으로 잡았다.


스타트업 아이템으로는 좀 특이해 보이는데, 투자받을 때 어렵지 않았나.

김정빈 어려웠다. 하드웨어 쪽인 데다, 공공 영역으로 간주되는 환경 사업이라는 점에서 투자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환경 사업은 돈이 안 된다’ ‘정부 대상 사업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번번이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지인들에게 받은 급전으로 월급을 주는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던 차에 휴맥스로부터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자금을 지원받았다. 지난해 전국에 재활용 자판기 35대를 설치했는데, 투자 이후 올해만 60대를 주문받았다.

박정용 2012년에 창업했다. 준비 과정도 길었고 투자도 늦게 받은 편이다. 스타트업들에 가장 중요한 투자 시기를 놓쳤달까. 하이테크 기업이 아닌 데다, 생활 밀착형 아이템이고, 진입 장벽도 낮아 보이고. 투자사들이 투자 가치 평가에 인색했다. 하지만 이 분야는 노하우를 쉽게 따라하기 어렵고, 투자가 일어나면 가치를 크게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조천희 솔직히 내 사업체가 스타트업으로 분류되는지도 몰랐다. 돌이켜 봐도 스타트업이란 게 AI·핀테크 같은 하이테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중장년층 스타트업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조천희 초기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사람’인 것 같다. 대표, 팀원, 이들의 역량에 주목한다고 느꼈다. 특히 경험과 인맥 등을 평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을 체득한다. 스타트업이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인사 문제인데,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동안 쌓은 인맥을 통해 마케팅, 사업 방향에 대한 조언을 많이 얻었다.

김정빈 동의한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하는 말이 ‘아이템이 좋아 젊은 창업가에게 투자했지만, 회사 운영에 불안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그런 부분에서 중장년 스타트업은 강하다. 또 나이가 있다 보니, 평생 끌고 갈 회사를 꿈꾼다는 점이 젊은 창업가들과 다른 점 같다. 물론 청년 창업가들 모두가 엑시트(exit·창업가가 회사를 비싼 값에 팔고 나가는 것)를 꿈꾸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

박정용 오늘 처음 만났지만, 같이 지냈나 싶을 정도로 모든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고비를 하나 넘기면 또 다른 차원의 고비가 온다. 초창기 1년 동안 기술 부족으로 참기름을 짜내지 못했다. 지금도 어려움의 연속이다. 그런 순간들을 계속 넘겨가고 있다.

조천희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창업 지원 센터에 들어가려고 해도 쉽지 않다. 대부분 나이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조건이 들어맞는데 입주 조건이 ‘대표자 39세 이하’ 같은 걸림돌이 있다. 스타트업 지원이 많지만, 중장년층 진입은 제한하는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