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리 막국수 김윤정 대표. 사진 다산북스
고기리 막국수 김윤정 대표. 사진 다산북스

11월 29일 오후 신분당선 미금역 앞에서 20분에 한 번씩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넘었다. 도착한 곳은 경기 용인시에 있는 ‘고기리 막국수’. 외진 마을에 있어 쉽게 찾기 힘든 작은 가게였지만, 식당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오후 2시에도 대기 인원만 29팀이었다. 모두 가족,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차례를 기다렸다.

식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보인 건 미소를 띤 사장님이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을 따뜻하게 배웅하고, 들어올 손님의 이름을 불렀다. 문이 열릴 때마다 퍼지는 고소한 들기름 향과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이 기다림에 설렘을 더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쉽지 않은 시기, 이 작은 국숫집에 하루 1000명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코노미조선’이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낸 김윤정 고기리 막국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기리 막국수 대표 메뉴인 막국수와 수육. 사진 안소영 기자
고기리 막국수 대표 메뉴인 막국수와 수육. 사진 안소영 기자

막국숫집을 열기 전, 식당을 하면서 실패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압구정에서 운영하던 이자카야가 잘됐을 때, 3만원짜리를 시키는 단골보다 한 번에 10만원씩 쓰는 손님이 더 반가웠고, 다음 손님을 빨리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매출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소주 가격을 5000원으로 인상했다. 서서히 손님은 줄었고 가게는 문을 닫게 됐다. 나중에 돌아보니 손님 얼굴이 기억이 안 났다. 우리가 손님을 기억하지 않는데 손님이 우릴 기억해 줄 리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고기리 막국숫집을 연 뒤에는 하루하루 손님의 행동과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손님을 기억하고 마음을 얻으려는 태도가 몸에 배자 손님은 자연스레 늘었다. 손님의 취향이나 주문 상황을 파악해 대응하니 운영 시스템이 생기고 손님 만족도가 올라갔다.”

메뉴판에 막국수와 수육이 전부다. 이유가 있나.
“이자카야를 운영할 당시 80가지 음식을 팔았다. 누가 뭘 시키든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문을 닫고 난 뒤에야 메뉴가 많다는 건 ‘특징이 없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 다양한 재료를 조금씩 사다 보니 원가는 높고 재료는 신선하지 않았다. 진입장벽이 낮아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생기면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막국숫집을 열 때 메뉴를 막국수와 수육으로 줄였다. 초반에는 아이들을 위한 돈가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따뜻한 떡국을 팔라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요리를 담당하는 남편이 식당의 정체성을 위해 막국수에만 집중해보자고 했다. 매일 막국수만 만드니 신선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고, 맛도 점점 좋아졌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막국수 전문점이 되니 막국수가 너무 좋아서 찾아주는 단골이 생기고, 그분들이 취향이 비슷한 분들을 데려오며 이름이 알려졌다. 메뉴를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훨씬 어렵지만, 메뉴를 빼다 보면 본질이 보인다. 우리가 운영하는 가게가 어떤 가게인지, 정체성부터 찾아야 한다.”

요식업도 트렌드를 타지 않나.
“유행하는 음식은 계속 바뀐다. 인기가 많을 때는 장사가 잘되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식으면 이 자리는 다른 아이템이 대체하게 된다.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없지만 유행만 좇는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을 따라잡기 어렵다. 오랜 기간 쌓아야 빛나는 것이 있다. 진심을 전하며 오래가는 생명력을 지닌 식당을 하고 싶다.”

오래되면 다 좋을까.
“물론 아니다. 낡은 것과 깊이가 있는 것은 다르다. 70년 된 노포(老鋪·오래된 식당)라도 위생적이지 않고, 불친절하고, 맛도 별로면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대에는 손님들이 청결하지 않은 식당을 피할 수밖에 없다. 테이블, 냅킨, 젓가락, 휴지, 화장실만 봐도 식당의 청결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소한 것부터 완벽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기리 막국수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있나.
“매일 손님들의 후기를 읽는다. 많은 사람이 빅데이터만 있으면 손님들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다. 빅데이터도 개인의 취향이 묻어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들여다볼 때만 의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맛에서 타협하지 않으려 한다 . 식당은 매번 100점짜리 음식을 내는 곳이 아니다. 85~95점짜리 맛을 꾸준히 오래도록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무리 손맛이 좋은 주방장이 있더라도 맛이 들쭉날쭉하면 오래갈 수 없다. 지금도 365일 중에 280일은 좋아하는 막국수를 먹으면서 손님 입장에서 미세한 맛의 변화를 살핀다.”

단체예약을 받지 않고, 테이블 수도 적은 편이다. 손님을 더 받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지 않나.
“식당을 이전할 때 손님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맛과 서비스를 고려해 테이블을 30% 정도만 늘렸다. 손님을 더 받자고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직원들의 피로도는 음식에서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체인점을 내지 않는 이유도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같은 맛을 유지할 수 없다면 손님들이 찾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식당을 운영하나.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식사를 하기 전부터 무엇을 먹을지, 어디가 좋을지 찾아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맛과 공간에 대한 여운을 나누지 않나. 혼자  배가 고파 하는 식사라면 아무거나 먹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에는 먹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경우가 많다. 손님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맛있는 음식을 편안하게 드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식당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손님들에게는 불안과 허기가 사라지는 곳이자 설렘과 여유가 생기는 곳, 우리에게는 자부심이 되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은 없었나.
“크지 않았다. 코로나19 전처럼 새로운 곳을 다니기보다는 아는 가게를 방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 덕분이다.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집중하는 게 식당의 존재 이유라는 걸 되새겼다. 사람들은 사회가 불안할수록 편안한 공간을 찾고 좋은 대면 경험을 원하게 된다.”

요식업 종사자분들께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소문난 맛집이라도 한번 경험했다 싶으면 다른 곳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찾고 싶고, 알리고 싶은 매력적인 가게가 돼야 한다. 손님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 누가 더 많이 고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생각과 철학을 담은 가게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음식을 잘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맛을 잘 몰라서’라는 식으로 운영하면 손님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목표는.
“오랫동안 단골들과 막국수를 먹는 게 목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그게 행복 아니겠나.”

용인=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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